문서사료 5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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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고구마사건에 대한 논의및 전국농민인권대책 준비위원회 결성 토의]
등록번호 : 00213461
날짜 : 1978.04.2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가톨릭농민회
요약설명 : -함평고구마사건에 대해 논의하며 전국농민인권대책위원회 결성키로 함 -첨부:농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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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고구마사건 대책문제[수신:한가농제9차대의원총회,발신:전남연합회대의원일동]
등록번호 : 00222245
날짜 : 1978.01.0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가톨릭농민회
요약설명 : 함평고구마사건에 대해 전국 대의원총회에서 다시 한번 논의하자는 안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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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문[함평고구마사건]
등록번호 : 00837293
날짜 : 1977.04.2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고구마를 길거리에서 눈 비를 맞혀 썩히거나 중간상인들에게 헐값으로 내팔지 않을 수...
사진사료 1건
더 보기영상사료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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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원
등록번호 : 00900089
날짜 : 2003.00.00
구분 : 문서류 > 음성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면담자] 유영훈, 정재돈; [과제명] 함평고구마사건,긴조9호와 춘천가톨릭 농민회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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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선
등록번호 : 00900090
날짜 : 2003.00.00
구분 : 문서류 > 음성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면담자] 유영훈, 정재돈; [과제명] 함평고구마사건,긴조9호와 춘천가톨릭 농민회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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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헌
등록번호 : 00900091
날짜 : 2003.00.00
구분 : 문서류 > 음성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면담자] 유영훈, 정재돈; [과제명] 함평고구마사건,긴조9호와 춘천가톨릭 농민회사건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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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대_농민운동사의 험로를 개척한 작은 거인
요약설명 : 24일, 권종대는 광주 북동 천주교회에서 함평고구마사건의 주역인 7백여 농민들과 더불어 집회에 참석해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긴급조치 9호가 발령된 엄혹한 시절이었지만 가열찬 투쟁 끝에 이 사건은 농민들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4개월 뒤 권종대는 안동교구협의회 회장직을 맡아 첫 임무인 ‘전국 쌀 생산자 대회 및 추수감사제 영남대회’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으며 그해 12월 27일 한국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 창립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86년, 권종대는 안동지역 소값피해보상 소몰이투쟁을 주도함으로써 농민운동의 지도자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1990년 전국농민총연맹(전농) 초대 상임의장에 취임한 권종대는 전국 7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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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민주화운동의 선봉 - 가톨릭농민회
요약설명 : 땀 흘려 키운 고구마가 길거리에서 썩어가자 초조해진 농민들은 농협으로 몰려갔다. “고구마를 사가라” “농민이 봉이냐, 약속한대로 고구마를 사가라!” 1966년 가톨릭노동청년회 농촌청년부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래, 함평고구마사건은 특기할 만한 일이었다. 한국사회는 1960년대부터 군부독재정권의 개발논리에 의해 저임금정책이 시행되었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저가 농산물정책이 정당화되고 있었다. 농협이 농민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해 농민 문제가 심각해졌다. 그러자 농민들은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농민조직을 만들었다. 가톨릭농민회이다. 1970~80년대에 일어난 거의 모든 농민문제의 해결과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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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농민회총연맹_ 개발독재의 희생양에서 농민운동의 구심점으로
요약설명 : 의해 줄곧 억눌려 왔던 농민들이 민주운동 세력들과 연합해 비로소 떨쳐 일어난 획기적인 사건이다. 고도산업 성장정책을 추구하느라 농촌의 피폐한 현실을 도외시한 독재정권의 관성이 1980년대 들어와 개선되기는커녕 농축산물 수입개방조치로 이어지면서 더 악화되자,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농민들이 함께 힘을 뭉친 처절한 생존권 투쟁이다. 수많은 투쟁 끝에 전국 단일 농민조직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농민들은 1989년 3월 1일 ‘전국농민운동연합(전농련)’을 결성했다. 가톨릭농민회와 기독교농민회, 개별적인 군 농민회를 비롯한 전국의 90여 개 농민운동 조직, 그리고 1980년대 후반기부터 속속 만들어져 활동하기 시작한 자주적인...
구술 컬렉션 2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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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병기
면담자 : 정호기, 이명진
일자/장소: 2021.7.5. / 전북 익산시 생활문화예술동호회
요약설명 : 함평고구마사건으로 연행, 전북 익산에서의 가톨릭농민회 활동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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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순
면담자 : 정호기, 이명진
일자/장소: 2021.6.28. / 경북 김천시 덕천포도원
요약설명 : 1978년 함평고구마사건과 단식농성 참여와 해단식, 기독교농민회, 오원춘사건으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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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영
면담자 : 정호기, 김경자
일자/장소: 2019.6.30/광주 5.18민중항쟁39주년기념행사위원회 사무실
요약설명 : 농민운동, 함평고구마사건 참가, 민주농정 실현을 위한 전남농민대회(1980. 5....
일지사료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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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농민회 전남지구연합회, 함평고구마 사건의 내막을 폭로
일자 : 1977.3.10
분류 : 민주화운동 > 농민
요약설명 : 가톨릭농민회 전남지구연합회가 광주에서 함평고구마 사건의 내막을 폭로하는 경과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소, 『암흑속의 횃불 – 7·80년대 민주화운동의 증언』 제2권, 가톨릭출판사, 1996, 4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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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농민회 회원 700여 명, 함평 고구마 피해보상과 농민회 탄압 중지, 구속 회원 석방 ...
일자 : 1978.4.24
분류 : 민주화운동 > 농민
요약설명 : 고구마를 썰어 가공하지 않고 수매에 응했다. 그러나 막상 수매시기가 되자 전량 수매를 약속했던 농협은 실제로는 농민들 생산량의 40%만을 수매했다. “걱정 말라”는 농협의 말을 믿었던 농민들은 시장에 고구마를 내다 팔 기회도 잃었다. 달라진 수매정책을 믿고 썰어서 가공하지 않은 데다 수매 시기도 지나치게 늑장을 부려 대부분의 고구마가 상해버렸기 때문이다. “피해 신고자는 빨갱이”라는 정보기관의 협박 때문에 일반 농가의 농민들이 신고를 기피한 까닭에 손해 신고액은 가톨릭 농민회원 중심의 160개 농가 309만 원에 불과했으나, 전체 손해액은 1억4,000여만 원으로 추산되었다. 이에 함평 농민들은 가톨릭 농민연합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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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생 대규모 반정부 시위
일자 : 1979.9.11
분류 : 민주화운동 > 학생
요약설명 : 청계피복 노조사건, 동일방직사건, 그리고 지금의 YH무역 여공농성사건, 해태제과사태는 노동자 자신들의 힘의 자각이며, 함평고구마사건, 감자피해 보상운동 및 오원춘 납치폭행사건 등은 농민 스스로의 세력 신장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박정희 독재정권은 환각적이고 허구적인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를 언론탄압을 통해 강요하고 있으며, 경제난국을 소비절약운동으로, 공해산업을 자연보호운동으로 은폐하고 있다. 더욱이 새마을 운동과 ‘충효사상"은 민중의 참상을 우롱하는- 이데올로기적 최후발악이다. 우리는 현금 YH무역 여공 농성에 대한 현 정권의 폭력 만행과 오원춘 납치 폭행사건에서 유신체제의 본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