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5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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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경북대 민주구국 선언
등록번호 : 00067181
날짜 : 1978.11.0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성원
요약설명 : 78년 경북대에서 생산된 민주구국선언서 -미궁에 쌓인 학보사 사건을 공개 해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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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관계 법령 개정 건의안 송부[수신:외부대학교수협의회및외부기관, 발신:경북대학교교수협의회...
등록번호 : 00071241
날짜 : 1988.02.0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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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소식-누가 폭력을 휘두르는가. 9.24 경북대 사건의 진상과 경위
등록번호 : 00113218
날짜 : 198*.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사진사료 10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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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장소, 대구지역 6.10민주항쟁
요약설명 : 경북대사대부속 초등학교, 경북대사대부속 고등학교가 위치했다. 경북대학교 일청담 경북대학교는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거점 국립대학이다. 인혁당사건에 의해 희생된 열사들 중 몇몇도 이 학교 출신이었다. 6.10민주항쟁을 촉발시키는 집회가 1987년 1월부터 학교 안팎에서 진행되었다. 일청담은 경북대 중심에 위치한 연못으로, 대강당 앞의 민주광장과 함께 교내집회가 자주 일어나는 곳이었다. 약령시 전주, 원주와 함께 조선시대 3대 약령시인 대구 약령시는 현재 약전골목으로 불리고 있다. 근처에 제일교회, 계산성당 등이 위치해 6.10민주항쟁 당시 종교인들이 행동했던 곳이기도 하다. 명덕네거리 2.28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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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련과 분신정국 - 죽음의 굿판이었나, 희망의 몸부림이었나
요약설명 : 통치 분쇄,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쳤을 때도 그가 누구인지 가늠하지 못했다 한다. 김영균은 이튿날 경북대 부속병원 화상병동에서 숨을 거두었다. 만 19세 6개월, 그는 스무 살을 채우지 못하고 짧았던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했다. 그의 부친은 서울시의 고위 공무원이었다. 유족은 김영균을 화장해 유골을 금강에 뿌렸고, 학생들과 재야는 안동대 뒷산에 그의 영혼을 묻었다. 그러나 사태는 장례로 끝나지 않았다. 당국은 '분신 배후'를 조작하려다 여의치 않자, 조직 사건으로 엮어 선배인 박명배를 비롯한 10여 명의 학생을 구속했던 것이다. 이들은 이후 여러 달 동안 수감되었다가 대부분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희망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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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청학련사건 - “사형선고를 받아 영광입니다!”
요약설명 : 연세대 등에서 산발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지방에서는 대구의 경북대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전국적인 시위는 4월 3일로 정해졌다. 최대한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시위를 하기로 했지만 유인물 아래 이름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라는 이름을 달기로 하고 일부 유인물에 이를 명시했다. 군사정권도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서강대 시위가 실패한 3월 하순부터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어 최초 주동자였던 서중석 등 수백 명이 끌려갔다. 중앙정보부는 이들을 고문해 전국적인 공산주의자 조직을 조작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약속한 4월 3일, 서울의 주요대학에서 산발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서울대 의대생 5백...
구술 컬렉션 2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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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원
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일자/장소: 2023.7.21./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상강원지부 사무실
요약설명 : 경북대 시위, 즉 1차 민주구국선언을 전개하여 당일 연행되고 11월 7일 긴급조치 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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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규
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일자/장소: 2023.7.3./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상강원지부 사무실
요약설명 : 날 경북대에서 시위가 발생했다. 박명규는 이 일로 인해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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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주
면담자 : 이영재, 정호기
일자/장소: 2020.7.9. / 민주인권기념관 회의실
요약설명 : 분위기, 경북대학교의 학생운동, 학생운동에 참여한 배경과 계기, 학생운동 관련 주요...
일지사료 21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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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학원의 자유 외치며 시위
일자 : 1960.2.28
분류 : 시위 상황 > 대구
요약설명 : 경북대학교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이하 경북사대부고)는 1951년 대구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로 설립되었으나 1952년 경북대 개교에 의해 학교 명칭을 경북사대부고로 개칭하였다(경북사대부고 홈페이지 참조. http://www.knu.hs.kr). 하지만 1960년 당시 언론과 단행본들은 경북사대부고와 대구사 대부고를 혼용해서 표기하고 있다. 이글에서는 경북사대부고로 통일한다.경북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는 28일 이전에 이미 노래가사 바꿔 부르기 사건으로 교내외를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었다. 경북사대부고 2학년 학생 오석수, 이영길, 유효길은 2월 16일 당시 유행하던‘유정천리(有情千里)’노래에 그 전날 서거한 조병옥 박사를 애도하는 내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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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민주당 측의 소규모 시위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대구
요약설명 : 오후 3시 40분 경, 변호사 홍정표, 무(戊)구당 부위원장 윤중호 등 15-16명의 민주당원들은 경북도청 앞에서 경북대 학생시위에 합류하려다가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이들은 “학생데모는 합법적이다”, “우리 데모도 합법적이다”, “이승만 정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역전·미창·북성로를 거쳐 종로출장소를 지나 오후 4시 15분 경 민주당 도당 당사로 들어갔다. 그러나 30여 명의 정·사복경찰들은 당사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오후 5시 30분 경, 귀가하기 위해 나오는 무구당 무소속 간부 7명을 백차에 실어 연행하였다.조화영 편, 241-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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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 학생들, 서울 시위 소식 듣고 시위전개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대구
요약설명 : 거쳐 남문시장으로 향하였다.경북대학교 학생들의 결의문일부 기록에는 경북대 학생들의 결의문을 ①구속 중인 우리의 학도 동지를 즉시 석방할 것, ②마산사건에 대한 상세한 해명과 동족 살해에 대한 엄중한 책임 소재를 밝힐 것, ③악독한 고문과 구타를 감행한 경찰로 공인된 자를 속히 구속 처단할 것, ④헌법이 보장하는국민의 기본 권리를 장해하는 법률을무효화 시킬 것으로 기록하였다(조화영 편, 239-241쪽).1. 마산사건으로 구속된 학생을 석방하라 2. 부정선거 다시 하라 3. 합법적 데모에 간섭 말라 구호 一. 부정선거 다시 하자 一. 마산학생 사건 규명하라 一. 폭행경찰관 물러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