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5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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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사회연구회 제2회 심포지움 분단시대의 국가와 민족문제 초청장
등록번호 : 00902871
날짜 : 1987.10.2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이종오 교수
요약설명 : 국가와 민족문제라는 주제로 열리게 될 지방사회연구회 제2회 심포지움의 초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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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와 민족민주운동-지방사회연구회 제3회 심포지움
등록번호 : 00095389
날짜 : 1988.10.2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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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사회연구회 워크샵 발제문-사회변혁론 논쟁과 박현채의 민족운동론
등록번호 : 00201802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사료 콘텐츠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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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성사를 풍미한 재야 경제학자 박현채
요약설명 : 평생 ‘보따리장사’의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갔다. 이즈음 서울 상대 학생 서클인 후진경제연구회가 박현채를 초청했는데, 그는 이 모임에 나가 젊은 후배들과 열정적으로 토론하며 연구 활동을 계속했다. 1964년 들어 중앙정보부가 인혁당사건을 조작 발표했을 때, 박현채는 중앙정보부와 검찰에서 각각 20여 일 동안 취조를 받으면서 잔인한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 이듬해 1월에 무죄 선고를 받은 박현채는 도예종에 대한 은닉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서울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출옥 후 그는 또다시 서울대, 홍익대, 국민대, 경희대, 충남대, 한신대 등의 시간강사로 밥벌이를 했다. 1970년대에 ‘민족경제론’의 포문을 열었던 박현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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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
요약설명 : 미국 내에 민족학교와 한청련 지부를 만들어나가는 동안 그는 탁월한 조직가요 운동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윤한봉은 이들 연합조직을 통해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견인했고 반전반핵 세계평화운동과 제3세계 연대운동을 일구어 나갔다. 조국의 민주화에 몸을 바친 합수(合水) 윤한봉은 1948년 2월 1일 전남 강진군 칠량면 동백리에서 태어나, 광주일고를 거쳐 1971년 늦은 나이에 전남대학교 축산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그해 12월 30일 교련반대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무기정학을 받았다. 이때부터 그에게 끝없는 고난이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이제 공부는 끝이다. 나는 앞으로 목숨 걸고 저놈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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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을 위한 교사들의 외침 - 교육민주화선언
요약설명 : 항의하는 연좌농성을 벌였고, 신일고 전체 교사 55명은 이수호 교사에 대한 사표종용을 중대한 교권침해로 보고 대책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의 응원이 이어졌다 신민당은 선언 교사에 대한 문교부의 징계방침의 즉각적인 철회를 요구했다.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은 선언 교사들에 대한 징계를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여성의 전화, 여성사회연구회, 주부아카데미연합회, 한국교회여성연합회 등 4개 여성단체는 '교육민주화를 위한 우리의 제언'이란 성명을 내고 선언 교사에 대한 징계철회와 교사들의 자주적인 활동 보장 등을 요구했다. 선언 이후 이 선언 이후 교사들은 학교라는 울타리를...
구술 컬렉션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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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민족통일연맹 결성, “정부에 대한 양심적 압력단체 역할 하겠다”
일자 : 1960.11.18
분류 : 통일운동과 혁신계활동 > 통일운동
요약설명 : ‘민족통일연맹(이하 민통련)’이 결성되었다. 이날 결성대회에서 학생들은 자신들의 의욕과 순수한 의도를 정치인이나 일부 사회인들이 의심한다고 말하고, 국민들과 북한학도들 및 남한학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채택하였다. 민통련은 ①대내적으로 조직을 정비해서 학술연구 활동을 원활히 하고, ②모든 통일방안을 검토·분석하여 실현성 있는 방안을 모색하며, ③동일의 여건을 검토하여 학회를 통해서 분석하고, ④이러한 연구결과를 사회에 발표할 것 등을 결의하였다. 대외적 문제에 대해서는 ①통일에 대한 문제의식을 고취하여 통일 분위기를 성숙하게 하는데 애쓴다, ②정부에 대해서 통일방안을 건의한다, ③학술연구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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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한미경제협정 반대 투쟁위원회(학생), 호소문 발표
일자 : 1961.2.15
분류 : 2.8한미경제협정 및 2대악법 반대운동
요약설명 : 분할되고 전 민족이 암흑에서 신음하는 채로 치욕적 협약을 이대로 감수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어느 시대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한 민족의 자유와 통일독립 그리고 빛나는 문화적 전통이 전 민족의 과감한 자기희생적 투쟁 없이 부여되지 않았음을 상기하는 것입니다. 정의에 불타는 청년학도, 그리고 양심적 애국의원 여러분 이제 우리는 치욕적 협약의 비준을 앞에 두고 엄숙하게 자손 만대의 장래를 정시하어 그 비준을 거부하고 이를 즉시 폐기케 하기 위한 전체 학생·노동자와 지식인 그리고 애국적인 사회단체와 정당인들이 투쟁전선에 과감하게 총궐기할 것을 호소하는 바입니다.단기 4294년 2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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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결성대회 거행, 통일방안 등 결의
일자 : 1961.2.25
분류 : 통일운동과 혁신계활동 > 통일운동
요약설명 : 25일 오전, 시내 천도교 대교당에서 약 1천명의 대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결성대회가 거행되었다. 사회당·혁신당·사회대중당·천도교·통일민주청년동맹1950년대 중반 이후 청년·학생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서클이 조직되었다. 대표적으로 서울대 문리대의 신진회·고려대의 협진회·부산지역의 암장·진보당과 연관된 여명회 등이 있었고, 청년조직으로 성민학회·통일청년회 등이 있었다. 4.19 이후 성민학회와 통일청년회의 중심인물들이 결성한 통민청은 민민청과 함께 민자통을 실질적으로 운영하였다(김민희, 『쓰여 지지 않은 역사』, 대동, 1993, 185-186쪽). 등의 정당 및 사회단체민자통 중앙협의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