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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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주역 윤한봉 미국 망명기
등록번호 : 00434345
날짜 : 1988.05.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이학인
요약설명 : 사건과 밀항법으로 수배)의 미국 망명 이유와 과정, 그 뒷 이야기를 망명을 도왔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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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일본迂廻 간첩사건 관련 기사]
등록번호 : 00491628
날짜 : 1983.03.1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천주교인권위원회
요약설명 : 밀항후 입북 교육...미군부대 침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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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주역 윤한봉 미국 망명설
등록번호 : 00924949
날짜 : 1988.05.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밀항법으로 수배된 인물로 이후 5.18광주민중항쟁동지회 부회장으로 활동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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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
요약설명 : 중 미국으로 밀항한 윤한봉이었다. 광주 민주화운동의 지도자인 강신석 목사와 ‘광주의 어머니’로 불리던 조아라 장로가 밀항과 해외 망명을 지원하고 있었다. 하비 목사는 미국 민주당의 중진인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에게 윤한봉의 정치망명 절차를 밟아 달라고 요청했다. 윤한봉은 당분간 동양식품점을 운영하는 김동건 장로 부부의 보호를 받으며 점원 생활을 했다. 1981년 11월 하순,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간 윤한봉은 미국 내 한국민주화운동의 대부로 불리던 김상돈의 환대 속에 해외민주화운동의 기틀을 다져나갔다. 그는 맨 먼저 홍기완, 김동근, 이길주, 이인수 등과 더불어 광주수난자돕기회를 만들어 광주항쟁 부상자와 유가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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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의 6월민주항쟁
요약설명 : 미국으로 밀항한 윤한봉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재미한국청년연합(재미한청련)의 민족학교가 중심이 되어 로스엔젤레스의 코리아타운에서 1천명의 동포들이 함께 가두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3시간 동안 진행된 시위에서 최루탄 추방과 직선제 개헌을 요구했다. 이들은 6.10민주항쟁의 열기를 모아 8월에는 각 지역의 동포들과 함께 청년 중심의 재미한청련과는 별도의 조직인 한겨레동포운동연합을 결성하여 세대를 망라한 운동의 대중화와 전국적인 조직화를 이루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한편 6월 28일, 워싱턴에서 ‘조국을 위한 대기도 및 궐기대회’가 열렸다. 한국인권문제연구소, 조국민주화촉구 워싱턴위원회 등의 단체와 목사,...
구술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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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근, 일본으로 도주
일자 : 1960.11.16
분류 : 혁명입법과 혁명재판
요약설명 : (18일 일본경찰 발표) 16일 아침, 일본규슈(九州)의 서당진(西唐津)경찰서는 사가현(佐賀縣)에서 부산 거주 주류 판매업자의 선박을 밀항 혐의로 조사한 결과 남녀 10명의 밀항자를 체포하였다. 일본 경찰은 밀항자들 가운데 진동명이라는 이름을 쓰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가 병보석으로 도주한 장경근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을 당시 장경근은 부인을 비롯한 가족 3명과 비서와 함께 있었다. 한편 장경근은 일본 경찰에 자신은 진동명이라고 주장하면서, 일본외무성 및 자민당 간부 등 고위층 관리에게 보호를 요청하였다.『조선일보』 1960. 11. 19 조1면 ; 『동아일보』 1960. 11. 19 석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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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국장, 3선개헌반대를 선동하라는 지령을 받고 남파한 간첩 검거 발표
일자 : 1969.8.8
분류 : 분류없음 > 정부·여당
요약설명 : 등 중요 공장과 부산대학 동아대학 등에 침투, 미군 철수와 3선개헌을 반대토록 민중을 선동한 다음 포섭된 자를 데리고 월북하라는 공작 사명을 띠고 지난 3일 평양을 떠나 원산을 경유, 공작선으로 7일 새벽 1시경 부산 영도 해안에 침투, 이날 새벽 4시 반 부산 시내로 잠입하기 위해 해안 야산에 은신 중인 것을 경찰 및 예비군이 순찰하다 발견, 검거했다고 최 국장은 밝혔다. 김은 경남 함안 야간중학 2년을 중퇴, 61년 4월 일본으로 밀항, 북괴에 전향했었는데 경찰은 김이 갖고 온 공작금 50만원·무전기 2대·암호문 5점·가짜 주민등록증 1장·불온서적·3선개헌반대 선동삐라 등 다수도 압수했다.『한국일보』 196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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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살인·강도범 박원식이 간첩이었다고 발표
일자 : 1971.7.26
분류 : 분류없음 > 정부·여당
요약설명 : 들어갈 목적으로 밀항자금을 염출하기 위해 지난 6월 29일 부산 한독약국을 털었고 6월 30일 부산 서부서원들이 추적하자 권총 3발을 발사, 김정호 순경의 얼굴을 쏘아 맞혔고 7월 1일에는 역시 추격하는 서부서원에게 권총 5발을 발사, 경찰관 1명에게 중상을 입힌 뒤 계속 철도를 타고 달아나 대구에 잠입, 7월 10일 역시 밀항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구 진 씨 집에 들어갔으나 진 씨가 현장에서 빠져 나가고 그의 부인 김도금 여인이 문을 열어주지 않아 권총을 쏴 죽였다는 것이다. 이날 박은 파란 미결수복을 입고 66번의 번호를 단 채 검사실까지 걸어올라가는 동안 기자들의 “마지막에 어디로 도망가려 했는가”라는 질문에 “북으로 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