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8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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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계복간 추진위원회 발기인대회
등록번호 : 00832821
날짜 : 2007.01.2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박용길
요약설명 : 사상계복간 추진위원회 발기인대회 개최를 알리는 초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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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계 1965년 2월호 통권 제143호
등록번호 : 00860826
날짜 : 1965.02.01
구분 : 문서류 > 정간물
기증자 : 최교진
요약설명 : - 특집·자립번영의 지도정신 - 반세기의 한국정신사 - 『민족적민주주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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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계 1965년 7월호 통권148호
등록번호 : 00860831
날짜 : 1965.07.01
구분 : 문서류 > 정간물
기증자 : 최교진
요약설명 : - 특집·몰락과 상극의 세계 - 한미행정협정의 문제점 - 돌격내각일년의 결산 등
사진사료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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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준하 선생 11주기 추모 행사에서 사상계라는 책을 들어 보이는 참가자
등록번호 : 00744232
날짜 : 1986.08.16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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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계에서 주최한 제4회 동인문학상 시상식을 마치고 김종인씨 부인과 가족 사진
등록번호 : 00979492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장준하기념사업회(장호권...
요약설명 : 동인문학상 시상식을 마치고 김종인씨와 그의 가족들과 함께 있는 장준하 선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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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의 "오적" 에 연관된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등록번호 : 00724889
날짜 : 1970.00.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1970년 5월호 사상계에 실린 김지하 시인의 시 "오적" 을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 제4...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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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필화사건
요약설명 : 있다. 정보자료실에 사상계 1953년 7월호(제4호)부터 1968년 12월호(제 188호)까지 102권 소장되어 있다. 사상계 영인본은 1차 24권(52년 사상창간호부터 57년 12월호까지), 2차 24권(61년 12월호까지)중, 1차 24권은 모두 있고, 2차는 9권이 결권(9~16권, 22권)이 되어 15권이 소장되어 총 48권 중 39권이 소장되어 있다. ‘양성우’ 조건으로 총 16건, ‘노예수첩’ 조건으로 총 2건, ‘겨울공화국’ 조건으로 총 1건이 검색되었다. 양성우의 자작시 <노예수첩> (등록번호 : 527319), <[신문스크랩]자작시-겨울共和國>(등록번호 : 327132), <간밤에도 이웃집 문두드리는 소리 들리고>(등록번호 : 142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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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의문사 사건
요약설명 : 장준하 선생 관련 사료 113건과 사상계 영인본 전질 및 원본이 소장되어 있다. 민주당 장준하선생 사인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장준하선생 사인진상규명조사활동 보고서>(등록번호 : 28786)와 <300매 수기 특종 장준하 미망인 육필수기>(등록번호 : 44014), 동아일보 등 신문스크랩, 8주기 추모문집 외에 박용수 선생 기증 사진 70점과 경향신문사가 생산한 사진 12점 등이 있다. 수집된 논문으로는 한신학보에 게재된 <통일은 어떻게 가능한가-장준하 선생의 삶과 사상을 중심으로>(등록번호 : 181874) 가 있다.
사료 콘텐츠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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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_ 씨ᄋᆞᆯ의 소리 함석헌
요약설명 : 발행하던 《사상계》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글을 처음 실었다. 이승만 독재를 비판하고 항거하는 내용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구류 20일의 처분을 받았다. 해방 조국에서 맞은 첫 번째 고난이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박정희가 등장하자 그의 붓끝은 더욱 날카로워졌고, 조선일보에 통렬한 직설적 기고문을 실었다. “박정희님. 내가 당신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라고도, 육군대장이라고도 부르지 않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 여러분은 여러 가지 잘못을 범했습니다. 첫째로 군사 쿠데타를 한 것이 잘못입니다. ...... 또 여러분은 아무 혁명이론이 없었습니다. 단지 손에 든 칼만을 믿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민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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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진인(眞人)으로 우뚝 선 계훈제
요약설명 : 《사상계》의 식구로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3.15부정선거로 청년 학생들이 데모에 나섰을 때는 학생운동의 최고참 선배로서 대학생들과 더불어 가두투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4.19혁명으로 이승만이 물러난 뒤에는 교원노조운동에 몸 담아 온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5.16 군사쿠데타가 터지는 바람에 이제 막 태동하려던 교원노조운동은 결실을 거두기도 전에 짓밟히고 말았다. 이 일로 수배령이 떨어진 계훈제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다. 이 기간에 그는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한 재원인 김진주와 결혼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이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 민주화운동의 동지인 함석헌조차 까맣게 모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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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요약설명 :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장준하 선생의 삶은 조국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한 길과 같은 것이었다. 국민 대다수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유신시절 그는 ‘재야 대통령 장준하’로 불렸다.
구술 컬렉션 1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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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균
면담자 : 한찬욱
일자/장소: 2003.07.08 / 4월혁명회 사무실
요약설명 : - 성장과정과 4월혁명 전후 상황 - 학내 은사들의 영향 -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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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균
면담자 : 송철원
일자/장소: 2019. 7. 21 / 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사상계》 5월호의 권두시를 쓰도록 김지하에게 청탁한 것이 담시 ‘오적(五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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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택부
면담자 : 임은경
일자/장소: 2003. 11. 22.(1차), 12. 6.(2차)/서울 구술자 자택
요약설명 : 주간과 사상계 초대주간 활동, YMCA활동, 임마누엘단 결성배경 및 활동 과정, 성서...
일지사료 5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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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당, “한일회담 지속하면 난동사태 날 것”
일자 : 1961.11.7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해외 및 북한
요약설명 : 『사상계』, 1962년 5월, 119쪽)과 공산당, 총평(일본노동조합평의회)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당시 최대 야당이었던 사회당은 그 모체가 일본 내 최대 노동조직인 총평이었으며, 공산당은 원내세력으로서 규모가 작았으나 원외시위를 위한 동원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국회에서 정부 여당과의 논쟁을 전개하여 회담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한편, 정부에 대해 회담 중지를 요청하였다. 또한 대중 집회를 조직하고, 한일회담 반대 국민운동으로 발전시키려 하였다. 혁신세력의 반대논리는 첫째, 한일협정이 본질적으로 한일군사동맹이며 미국의 비호 아래 일본, 한국,대만을 연결하는 북동아시아 군사동맹(NEATO)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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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귀국강연회 “군정종식이 과제” 군사정권하 한일회담 즉각 중지 주장
일자 : 1963.7.22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것이며 이 나라의 살길은 참다운 국민운동이 일어나는 길뿐”이라고 말했다. 사상계사 주최로 22일 오전 시민회관에서 귀국 제2회강연회를 가진 함 씨는, “오늘날의 정치는 민중과 동떨어져있다”고 말하고 “지식인들은 권력과 야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한일회담을 서두르지 말 것을 촉구하고, “회담이란 것은 양국이 대등할 때만 가능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현 정부는 결코 회담을 계속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김종필 씨가 “역적이란 말을 듣더라도 기필코 한일회담을 성취시킬 것”이라고 한말을 상기시키면서 위정자의 반성을 촉구했다. 앞으로 군인들이 계속 정권을 잡는다면 “군복을 벗고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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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고려대에서 ‘민족적 민주주의’ 강연
일자 : 1963.11.4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4일, 김종필공화당 당의장은 고려대에서 행한 강연에서 ‘민족적 민주주의’에 대해 설명하면서,“민족적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다”고 해명하고홍승면, 「박정권의 민족주의란?-불투명하고도 모호한 김종필 씨의 발언과 몇 가지의 문제점」, 『사상계』, 1963.12, 83~84쪽 “미국의 원조는 적절한 방법과 용도에만 주어지지 않았다”며, “후진국의 공동과제인 근대화를 위해 민족주의는 절실히 요구되며, 민족주의를 통해 경제적 자립과 강력한 리더십의 확립을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화운동사 1』, 돌베개, 2008, 3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