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9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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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트 신부의 자기 소명재료-A house of Cards
등록번호 : 00483427
날짜 : 1975.04.3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추방당한 시노트 신부 사건 관련. 인민혁명당 관련 시노트 신부의 자기 소명 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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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트신부가 추방 후의 생활을 보고하는 글
등록번호 : 00490990
날짜 : 1975.12.1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시노트 신부가 추방당한 후 여러 방송기관과 인터뷰 및 영화 제작을 통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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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나아가는 시노트 신부님을 맞이하여 영화와 강연의 장이 열린다]
등록번호 : 00982272
날짜 : 197*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고다 사또루
요약설명 : 시노트 신부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의 정당한 애국결의를 공산주의자의 국가문란...
사진사료 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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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농성기자와 시노트 신부 강제해산
등록번호 : 00714852
날짜 : 1975.03.17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해임된 동료기자 복직과 자유언론실천을 요구하며 6일째 농성 중이던 동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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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역 신구교 연합활동 사진
등록번호 : 00451666
날짜 : 196*.00.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요약설명 : : 조지오글목사, 시노트 신부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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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 선교자금 사건 관련 사진과 사진설명]
등록번호 : 00470309
날짜 : 1975.00.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한국문제일본기독교긴급...
요약설명 : 갈릴리교회, 안병무ㆍ문익환(Timothy Moon)ㆍ이문영ㆍ서남동, 시노트신부(추정) 사진...
영상사료 1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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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요약설명 : <인혁당 사건 진상을 조사 발표하면서>(등록번호 : 108139)가 유감스럽게도 일부만 남아있다. <인혁당 조사 결과>(등록번호 : 476278)는 번역물로 문장은 매끄럽지 않으나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정보, 사건의 조작성, 시노트 신부의 증언, 사형과 시체탈취 과정, 외국신문 기사 등을 상세히 알 수 있는 중요사료다. 인혁당 관련자들의 모습은 『8월 인혁당 사건 공판에서 피고자 도예종 등 13명』(등록번호 : 709843)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인혁당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을위한대책위원회의 <"1975년 4월 9일 사법살인" 인혁당재건위사건-재심청구/상고·항소이유서 자료집>(등록번호 : 437195)를 통해 당시의 상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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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자가족협의회(구가협)
요약설명 : 각종 박물류가 소장되어있는데, ‘빅토리 숄’인 <어깨숄>(등록번호 : 057144)을 비롯해 3·1민주구국사건 때 사건 관련 구속자가족들이 시위용으로 제작해 법원까지 들고 간 “민주인사 석방하라” 등이 써있는 부채(등록번호 : 033704)와 남편 문익환 목사의 수형번호가 적힌 시위용 <보라색 원피스>(등록번호 : 33709)와 한복(등록번호 : 033711) 등 희귀자료들이 특기할 만하다. 이외에도 구가협이 제작 배포했던 각종 성명서(등록번호 : 480358외), 호소문(등록번호 : 479704외), 항의서(등록번호 : 479709) 등이 50여건 소장되어 있다. 양심범가족협의회 명의의 각종 성명서(등록번호 : 75395외) 등도 34건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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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글 목사, 시노트 신부 강제추방사건
요약설명 : <한국으로부터 국외 추방을 강요당하는 사연의 글>(등록번호 : 515212)이 있다. 또한 <1974.12.14 하네다공항에서 발생한 조지 오글 목사 기내 억류에 대한 일본 이민국의 조치를 묻는 편지>(등록번호 : 471763)는 인혁당 사건이 알려지는 것에 대해 극도의 제재를 가했던 박정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단면이다. 그 외에 오글 목사가 인천도시산업선교회를 중심으로 벌였던 산업선교활동을 볼 수 있는 다수의 사료가 있다. 시노트 신부와 관련하여, 인혁당 사건 사형 이전인 1975년 3월에 그 부인들과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시신부가 인혁당 사건 관련자 부인과의 인터뷰>(등록번호 : 486056)를 유의해볼 만 하다. 또한 추방...
사료 콘텐츠 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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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트 신부의 간절한 외침 - 조작이다! 조작이다!
요약설명 : 말을 떠올리면서 시노트 신부는 김수환 추기경에게 "추기경님, 왜 가톨릭은 잠잠합니까? 개신교 목사님들은 투옥되고 산업현장에서 뛰고 계시는데, 성령께서는 개신교에서만 활동하십니까? 한국 가톨릭은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라는 내용의 다소 격앙된 편지를 썼다. 물론 추기경도 그와 같은 생각이었다. 시노트 신부를 만난 추기경은 그를 격려했다. 당시는 개신교가 더 적극적으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던 시절이었는데, 김수환 추기경에겐 시노트 신부의 생각을 알게 된 것이 천군만마를 얻은 심경이었으며, 시노트 신부는 자신의 생각을 지지해 준 추기경이 진심으로 고맙고 든든했다. 그는 이제 거침없이 행동으로 나아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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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 Christian
요약설명 :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학생, 지식인, 종교인 등의 목숨을 건 투쟁과 저항이 있었다. 종교인들이 참여하면서 민주화운동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아졌고, 집회와 시위가 금지되었던 시절 종교인들은 집회 장소를 제공하거나 쫓기는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기도 했다. 조지 오글, 제임스 시노트, 지학순, 박형규, 문익환, 문동환, 김수환, 김병상, 정호경, 김승훈 다시 불러보는 이름, 그리운 사람. 인. 크리스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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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
요약설명 : 앞에 택시 한 대가 멈췄다. 차에서 내린 세 남자는 부두에 대기 중인 화물선 레오파드호에 승선했다. 2등 기관사 정찬대와 3등 항해사 최동현은 비쩍 마른 사내를 의무실로 안내한 뒤 말했다. “형님,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여기서 지내십시오.” “고맙네.” 비쩍 마른 사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정작 그가 머물 곳은 의무실에 딸린 화장실이었다. 한 평 반쯤의 공간에는 양변기와 세면대가 있었고, 천장에 조그만 환기구가 있을 뿐이었다. 백열등이 꺼지면 곧바로 암흑천지였다. 그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극도로 조용히 지냈다. 출항한 지 몇 시간 뒤, 저녁이 되자 3등 항해사가 와서 말했다. “배가 방금 우리 영해를 지났습니다.”...
구술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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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면담자 : 권형택
일자/장소: 2013. 10. 2.(1차), 10. 16.(2차), 10. 30.(3차), 11. 13.(4차), 11. 20.(5차), 12. 4.(6차), 12. 11.(7차), 12. 18.(8차)/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결성, 시노트 신부님 회고와 김상진 추도회, 75년 원주선언과 3.1민주구국선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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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시노트(James Sinnott)
면담자 : 진영종
일자/장소: 2002. 10. 28.
요약설명 : 결성당시 상황, 최종길 교수 사건, 프레이져의 방한, BBC 제작 인혁당 관련 영화,...
일지사료 1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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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고등학교 학생 800여 명, 학원의 자유 주장하며 시위
일자 : 1960.2.28
분류 : 시위 상황 > 대구
요약설명 : 시 중지하였다.「 2·28경과상보」, 『경맥』7호, 경북고등학교, 1960(2·28민주의거40주년특별기념사업회, 236쪽 재인용) ; 이강현편, 22-23쪽 이후 학생들은 모두 모자를 벗고“역으로 가자”는 구호와 함께 도청 정문으로 쏟아져 나왔다. 정·사복경찰들은 문을 닫고 학생들을 제지하려고 했으나 문을 박차고 나오는 학생들로 인해 문이 열리고 아수라장이 되어 학생들의 책과 노트 등이 정문 앞 길바닥에 뒹굴었다. 좁은 도청 정문에서 학생 30-40명이 경찰에 체포되었다.안동일·홍기범 공저, 65쪽, 경찰은 다시 대열을 지어가려는 학생들을 추격하여 그 중 100여 명을 연행하였다. 경찰의 손을 벗어난 약 60여 명의 학생들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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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 원흉들의 집 파괴
일자 : 1960.4.26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시 들여 보수함으로써 인근 주민들의 혀를 내두르게 한 가옥이다. 또한 최인규의 집 지하실에서 수 만 권의 노트와 연필이 나왔는데, 이는 최인규가 자기의 출신구인 광주의 아동들에게 선물하려던 것이었다고 한다.현역일선기자동인 편, 139-140쪽 ; 동아일보 기자, 266쪽 ; 조화영 편, 167쪽 이웃에 있던 그의 비서 한백황의 집도 트럭과 지프차 한 대에 나누어 탄 군중들에 의해서 파괴되었다.『조선일보』1960. 4. 26 석3면 ;『한국일보』1960. 4. 27 조3면 이 외에도 26일 새벽 4시 45분, 시위대의 방화로 말미암아 불붙기 시작한 시내 종로구 연지동의 이정재의 집은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전소해 버렸다. 또한 같은 날 오후 2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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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생들, 한일협정비준반대 가두서명운동
일자 : 1965.7.1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시청 앞, 미도파 앞 등에서 벌였다. 일부는 두꺼운 받침으로 된 가두서명판을 메고 노트와 인주를 들고 다니며 이동식 가두서명을 받기도 했다. 이화여대 학생회는 이러한 운동을 국회가 개원하는 12일까지 전개하기로 했는데, 지방에는 기숙사 학생을 통해 이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또한 학생들은 이 가두서명운동이 당국에 의해서 제지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렇게 될 경우 각 가정에서 서명운동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가두에서 서명운동을 벌이는 것은 교통질서에 큰 지장을 가져온다고 하며, 미도파백화점 부근에서 가두서명을 받던 법정대생 수명에게서 플래카드를 빼앗고 구타했으며, 진민자(23, 과학과 4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