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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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사단 아카데미 김지하 양심선언문 배포사건
등록번호 : 00113707
날짜 : 1975.1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아카데미 회원들이 김지하 양심선언문을 프린트하여 배포한일에 대한 사건개요와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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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선언문-6공화국의 파렴치하고 조직적이며 체계적인 녹화사업을 폭로한다!
등록번호 : 00533626
날짜 : 1991.04.1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황원진
요약설명 : 후 학생운동권이었다는 이유로 심한 구타를 당함, 탈영하였으나 양심선언 결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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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선언문
등록번호 : 00878791
날짜 : 1975.04.1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5.18 기념재단
요약설명 : 농대 교정에서 있었던 자유성토대회에서 양심선언문 낭독후 할복자결한 고 김상진...
사진사료 1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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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양 이병 양심선언 사건
요약설명 : 치안본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윤석양 이병 양심선언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폭로> (등록번호 : 32743), 애국외대 제24대 총학생회 명의의 성명서 <윤석양 동지의 보안사 민간 정치사찰 폭로 양심선언에 관련한 애국외대 총학생회의 입장> (등록번호 : 481492), 민주당의 <변호인선임서(윤석양에 대한선임서)> (등록번호 : 65401), 서울지방변호사회의 <보도자료_윤석양 이병을 위한 변호인단을 구성하면서> (등록번호 : 65407), 윤석양후원사업회준비위원회의 <윤석양 후원사업회 준비위 발족 선언문> (등록번호 : 179661), 윤석양의 <혁노맹은 이렇게 조작되었다-보안사의 혁노맹조작> (등록번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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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생김상진할복자살
요약설명 : 양심선언문>(등록번호 : 113696), <양심선언문낭독 육성테이프>(등록번호 : 55252),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장>(등록번호 : 211967), 이후 장례식시위(오둘둘 시위)의 <반독재투쟁선언>(등록번호 : 577473) 등 약63건에 이른다. 당시의 사료는 일부가 다른 형식으로 중복되어 있고 과반 수 이상의 사료는 이후 김상진기념사업회 활동과정의 생산물이다. 당시 사건의 충격과 김상진 열사의 치밀한 준비로 현장사료가 대부분 내용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다. 양심선언문과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장은 이후 다양한 형태로 내용이 전달되어 왔다. 특히 1970년대 시위에서 거의 유일하게 양심선언문 낭독 육성녹음이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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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회복국민회의
요약설명 : 발족 선언문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다. <국민선언>은 “정부가 곧 국가라는 전제적 사고방식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며 반정부는 반국가가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은 국가를 위하여 수시로 정부에 요망사항을 제시하며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며 시정을 촉구하고 나아가서는 정부의 퇴진까지 주장할 수 있다는 데에 민주체제의 발전적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총 7면에 이르는 <[민주회복 국민 선언대회-행사내용 메모]>(등록번호 : 483554)는 <국민선언>이 발표된 1974년 11월 27일 민주회복국민선언대회와 관련된 중요 사료다. <공동성명[75년도 국민투표에 관한 성명서]>(등록번호...
사료 콘텐츠 1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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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 열사의 양심선언문 낭독 육성
요약설명 : '양심선언'을 작성하였다. 시국성토대회의 세 번째 연사로 나온 김상진은 유신의 위법성과 독재정권의 허위성을 고발하는 양심선언문을 읽던 중 칼로 자신의 왼쪽 복부를 찔렀다. 두 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다음날 서울대병으로 이송 중 앰뷸런스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김상진의 나이 만 25세였다. 유신이라는 시대 상황에서 청년은 죽음으로 폭압에 항거하며 이 나라 민주주의 제단에 피를 뿌렸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서둘러 화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서울대생 1,000여명은 5월 22일 ‘김상진 열사 장례식’을 거행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오둘둘사건’으로도 불리는 열사의 장례식은 긴급조치9호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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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은 칼보다 강하다 -민주화를 향한 문인들의 기개
요약설명 : 뜻있는 문학인 일동은 우리의 순수한 문학적 양심과 떳떳한 인간적 이성에 입각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을 결의, 선언하는 바이며, 이러한 우리의 주장이 실현되는 것만이 국민총화와 민족 안보에 이르는 길이라고 선언하는 바이다. 민족문학작가회의로 확대 개편 1987년 6월항쟁이 6·29선언으로 귀결된 후 1987년 9월 17일,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민족문학의 구심점을 마련하기 위해 민족문학작가회의로 확대 개편되었다. 회장에 김정한, 부회장에 고은, 백낙청이 선출되었으며, 범문단적 문학단체를 표방하면서 보다 많은 진보적·양심적 문인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했다. 그들은 창립선언문에서 “참다운 민족문학을 열망하는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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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문으로 본 4.19혁명
요약설명 : 자까지 우리의 대열을 따른다. 나가자! 자유의 비밀은 용기일 뿐이다. 우리의 대열은 이성과 양심과 평화, 그리고 자유에의 열렬한 사랑의 대열이다. 모든 법은 우리를 보장한다. 단기4293년 4월 19일 서울대학교문리과대학 전학생일동 4월 19일 정오, 학생들은 태평로 국회의사당을 거쳐 지금은 광화문이 들어서 있는 중앙청 앞 광장까지 달려온 후 연좌시위를 하고 있었다. 김치호가 우리 앞에 나섰다. 오전에 이미 경찰에 잡혀 심하게 구타를 당했노라고, 그러나 굽힘없이 불의와 싸워나가겠노라고 결연히 선언했다. 얼마 후 우리는 경무대 쪽으로 몰려갔다. 우리 앞에 이미 많은 학생들이 경무대 입구 가까이 에서 전투복을 입은 경찰과 대...
일지사료 7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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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 경찰 저지망 뚫고 국회의사당까지 진출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참조).서울대학교 문리대학 선언문대학신문과 『기적과 환상』에는 이의 발췌본이 수록되어 있다(『대학신문』1960. 5. 2 4면 ; 안동일·홍기범 공저, 232쪽).상아의 진리탑을 박차고 거리에 나선 우리는 질풍과 같은 역사의 조류에 자신을 참여시킴으로써 이성과 진리 그리고 자유의 대학정신을 현실의 참담한 박토(薄土)에 뿌리려 하는 바이다. 오늘 우리는 자신들의 지성과 양심의 엄숙한 명령으로 하여 사악과 잔학의 현상을 규탄 광정(匡正)하려는 주체적 판단과 사명감의 발로임을 떳떳이 선명(宣明)하는 바이다. 우리의 지성은 암담한 이 거리의 현상이 민주와 자유를 위장한 전체주의의 표독한 전횡에 기인한 것임을 단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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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 올린 교수단, “정·부통령 선거 다시 하라”절규
일자 : 1960.4.25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선언문을 소리 높여 낭독하였다.조화영 편, 149-150쪽 그리고 백발이 성성한 변희용(성균관대, 65), 권오돈(연세대, 65)교수가 『고대신보』의 오주환 주간이 마련해온 “각 대학 교수단”이란 글씨 밑에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선두에 섰다.“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글씨는 당시 성균관대 교수인 청명 임창순 선생이썼다. 이상은 교수는 “재경(在京) 각 대학교수단”이라고 썼다고 하는데, 당시교수단 시위 사진의 플래카드에는 “재경”은 보이지 않고 “각 대학 교수단”이라는 글자만 보인다(이상은, 226쪽). 일부 기록에서는 “고대생 10여 명이 미리 준비한 플래카드를 제공”하였다고 한다(안동일·홍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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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지구 피학살자유족회 결성대회 개최
일자 : 1960.6.15
분류 : 과거사 진상규명운동
요약설명 : 조2면 다음은 이날 채택된 선언문의 내용이다.경북지구 피학살자유족회 선언문우리들은 민주건국 발전사 상에 있어서 유례없는 오점과 반민족적 죄과를 범한 동족대학살에 희생된 원혼의 유가족들에 의해서 조직된 피의 결합체입니다 우리들은 지난날의 역사적 과오를 무조건 망각 또는 묵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 유가족회는 무슨 영웅 심리의 발작으로서 집단적 또는 개인적인 보복의사로서 형성된 정치적인 단체는 아닙니다. 동시에 어느 정당 사회단체 및 정치 상인들의 이용대상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해둡니다. 오직 11년간에 걸쳐서 이승만 전제 폭력 밑에서 내 사랑하는 고향 조국 땅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