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75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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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등록번호 : 00077855
날짜 : 1988.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웬말이냐! -우리 자식 죽인놈들 천벌을 받으리라! -의문사가 웬말이냐? 살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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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유가족 협의회 농성 일지
등록번호 : 00096828
날짜 : 1988.10.2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유가족 협의회농성 일지 내용 일자별 활동내용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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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규명을 요청한 의문사 피해자
등록번호 : 00097471
날짜 : 1988.11.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의문사 피해자 명단 - 우리아들 죽인놈들 제명에 못살리라! - 의문사 진상규명...
사진사료 7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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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 특별법제정을 촉구하며 장기간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유가협 회원들
등록번호 : 00711731
날짜 : 1999.12.27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 특별법제정을 촉구하며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장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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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내 의문사 진상규명과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며 피켓시위하는 인권단체 회원들
등록번호 : 00730933
날짜 : 1998.12.1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4개 인권단체 회원 100여명이 피켓을 들고 군대내 의문사 진상규명과 양심수 석방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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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 유가족 농성일지
등록번호 : 00914109
날짜 : 198801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
요약설명 : 3층 KNCC 인권위원회 사무실 - 이 농성을 계기로 의문사 유가족들이 조직되었고,...
박물사료 1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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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규 의문사 사건
요약설명 : : 174688)는 “의학이 정권에 이용당하는 것을 거부”하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이철규씨 의문사 사건에 관한 인도주의 실천의사협의회의 견해>(등록번호 : 77813)는 이철규의 죽음과 관련한 의학적 소견과 해석을 밝히고 있다. 명동성당의 집단 단식농성과 관련하여 <모이자! 명동으로! 이철규열사 살인은폐조작 규탄 및 6월민중항쟁 계승 실천대회>(등록번호 : 169868), <이철규열사의 사인진상 규명을 촉구한다- 명동성당에서 단식투쟁중인 학생들을 지지하며>(등록번호 : 202576)와 <성명서-민주학생 이철규의 고문살인 진상규명을 위한 명동성당 단식철야농성을 적극 지지하며>(등록번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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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노조 방송민주화 투쟁
요약설명 : ‘KBS’ 조건으로 검색된 429건 중 관련사료 90건이 검색되었으며, ‘방송민주화’ 조건으로 35건의 관련사료가 검색되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의 <언론노보 호외-KBS 관선사장 거부투쟁 속보>(등록번호 : 538729), KBS 사원 일동 명의의 대국민호소문 (등록번호 : 65978),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의 성명서 <당국의 KBS 경찰 투입 및 강제 진압을 규탄한다>(등록번호 : 524431), KBS노동조합이 생산한 (등록번호 : 353971), KBS 구속자 원상회복투쟁위원회의 (등록번호 : 6891), KBS 노동조합의 (등록번호 : 354292) 등이 소장되어 있다. 사진사료로는 경향신문사가 생산한 (등록번호 : 739202), (등록번호 : 739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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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
요약설명 :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추진위원회가 생산한 각종 문건(등록번호 : 477830외)과 학술단체협의회 주최 <학술 심포지엄 의문사 문제의 해결을 위한 법적 모색>(등록번호 : 2779) 등 22건의 문건, 성명서, 신문스크랩, 사진 등이 소장되어 있다.
사료 콘텐츠 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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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수 의문사 사건
요약설명 : 7층에서 투신했다는 그의 시신은 상처 하나 없이 반듯이 누워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그의 투신 지점이라고 밝힌 병원 옥상은 쇠창살과 자물쇠로 잠겨 있는 곳이었다. 박창수의 석연치 않은 사인과 사망경위를 두고 검찰은 축소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진상조사단이 구성되어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단순 비관자살 사건으로 종결되었다. 이후 유족의 요구로 의문사진규명위원회(의문사위)에서 재조사가 이루어졌다. 의문사위는 2004년 결정문에서 “국가안전기획부 요원의 개입 사실은 드러났으나, 국가정보원이 관련 자료 요청에 협조하지 않아 진상 규명 불능으로 결정하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4년에 박창수는 민주화보상위원회(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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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원, 의문사 제1호의 죽음을 기록하다
요약설명 : 최종선 님이 기증해주신 육필 기록, 우리나라 의문사 제1호라고 얘기하는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의 의문사를 밝히는 비망록이다. 최종길은 최종선의 형이다. 1973년 10월 2일, 유신체제에 항의하는 첫 시위가 서울대에서 일어났다. 대학가의 시위는 일파만파 번져갔다.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과 구속, 연행에 당시 법대의 학생과장이었던 최종길 교수는 교수회의에서 "부당한 공권력의 최고 수장인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장을 보내 항의하고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그리고 10월 16일, 최종선은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 수사에 필요하니까 형의 협조를 바란다'는 중앙정보부 간부의 얘기에, 국가에 협조하라고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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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 대통령’ 장준하 의문사
요약설명 : 포천 약사봉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장준하 선생이 추락사했다고?” 1975년 8월 17일, 동아일보 의정부 주재 기자인 장봉진은 경찰의 제보를 받고 급히 사고 현장으로 뛰어갔다. 포천군 이동면 도평리 소재 운악산 약사봉 계곡이었다. 동행한 사진기자가 민첩하게 플래시를 터뜨리는 사이, 장 기자는 유일한 목격자로 자처한 김용환 씨 인터뷰를 땄다. “장 선생님이 사고 현장 벼랑 위에 오를 때는 멀리 등산 코스를 돌아 올라가셨습니다. 그렇지만 하산할 때는 등산 코스가 아닌 벼랑으로 내려오려 하셨습니다.” 주변에는 장준하와 함께 등반한 호림산악회 회원들이 여럿 있어서 그들과도 인터뷰했다. 그중의 한 사람이, “어? 김용환 씨가...
구술 컬렉션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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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최봉규 외 9인
면담자 : 차성환, 이영재
일자/장소: 2010.08.17./ 유가협 사무실
요약설명 : 재판 방해사건, 의문사 진상규명 투쟁, 1991년 강경대 사건 관련 재판 투쟁, 정경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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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동
면담자 : 정영철
일자/장소: 2002.09.11(1차), 2002.09.19.(2차), 2002.09.26.(3차)/청주산업선교회
요약설명 : 넝마주이 모임, 택시파업사건, 정범영 의문사 사건 등 70년대 활동 상황, 산업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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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조인식
면담자 : 차성환, 이영재
일자/장소: 2010.07.17./ 유가협 사무실
요약설명 : 내홍, 서울역 의문사 진상규명 대국민 홍보활동, 국회 앞 422일 천막농, 민주화보상법...
일지사료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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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 중앙정보부서 수사 받다 사망
일자 : 1973.10.19
분류 : 민주화운동 > 재야·지식인·종교
요약설명 :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 1차(2000.10~2002.10) Ⅱ』, 2003, 40~85쪽 참조최종길 교수 의문사사건(1973.10.19.)1973년 8월 김대중 납치사건 이후 유신반대 움직임이 시작되었는데, 특히 10월 2일 서울대 문리대 학생시위를 시작으로 전국의 대학들에서 유신철폐를 요구하는 시위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박정희 정권의 공안당국은 민주화 시위를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유럽거점 간첩단사건을 준비하였다. 독일에서 유학한 바 있는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는 중앙정보부로부터 이 간첩단사건과 관련하여 출두 요구를 받고, 1973년 10월 16일 중정에 근무하던 친동생 최종선과 함께 중정 제5국(국장 안경상) 공작과(과장 안흥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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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 좌익수형자 최석기 의문사
일자 : 1974.4.4
분류 : 민주화운동 > 빈민·기타
요약설명 : 1974년 4월 4일 비전향 좌익수형자최석기가 대전교도소 독거방에서 사망했다. 처음에는 단순 심장마비사로 알려졌으나 2009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위 조사 결과, 교도소에서 4월 4일 오후 8시께 격리사동으로 옮겨진 후 ‘좌익수 전향공작전담반’에서 활동한 폭력사범에 의해 입에 수건을 물리고 몸 전체를 구타당하는 등 폭행 뒤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부산일보, 2002. 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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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의문사
일자 : 1975.8.17
분류 : 민주화운동 > 인권
요약설명 : 항일 독립투사이며 전(前) 국회의원인 장준하씨가 17일 오후 2시반 경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도평리 약사봉에 등산갔다가 하산 길에 벼랑에 실족 추락, 별세했다. 향년 56세. 고(故) 장준하 씨는 월간 사상계 잡지를 출판, 62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막사이사이상 언론문화부문을 수상했으며 정계에 투신, 7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통일당 최고위원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김희숙 여사(46)와 3남 2녀가 있다. 『동아일보』 1975.8.18. 1면. 장준하 의문사 사건과 진상규명 과정에 대해서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사료컬렉션, “장준하 의문사 사건” 참고.(https://archives.kdemo.or.kr/collections/view/10000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