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3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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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전남도청 앞서 투석시위
등록번호 : 00990023
날짜 : 1989.06.0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전남대병원 영안실 앞에 모인 뒤 광주천변~양동복개상가~유동삼거리~금남로를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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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통권9호 (전남도청이전 반대 특집호)
등록번호 : 00034588
날짜 : 1999.09.15
구분 : 문서류 > 정간물
기증자 : 윤영규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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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 오는 광주의 불꽃 민주열사 홍기일 전남도청 앞에서 스스로 불사르다!
등록번호 : 00104086
날짜 : 1985.08.1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홍기일 민중열사 약력, 분신당시 배포했던 자필선언문 등이 수록.
사진사료 4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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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청광장에서 열린 민족민주성회
등록번호 : 00713998
날짜 : 1980.05.16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전남대 및 조선대 등 광주 시내 대학생들이 전남도청앞 광장에 모여 민족민주성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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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도청 이전으로 활기를 띠는 목포 하당지구
등록번호 : 00715869
날짜 : 1994.01.01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전남도청이 전남 무안군 삼향면으로 이전될 것이 확실시되자 이 지역의 부동산 거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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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청의 안팎 상황
등록번호 : 00714011
날짜 : 1980.05.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사료 콘텐츠 1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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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 이야기
요약설명 : 한 줄기 작은 빛은 오로지 전남도청에만 남아,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다. 연민의 시간이었다. 서른 살의 청년 하나가 한 무리 고등학생들과 여대생들 앞에 서서 말하고 있었다. 시민투쟁위원회 대변인 윤상원이었다. 짙은 눈썹 아래 깊고 큰 눈이 인상적인 곱슬머리의 미남이었다. “이제 여러분은 집에 돌아가십시오. 가서 여러분이 겪은 일을 사람들에게 전하십시오. 여러분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우리들의 항쟁을 잊지 말고 후세에도 이어가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입니다. 계엄군이 밀려오기 전에 어서들 도청에서 떠나기 바랍니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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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사진전과 개인 기록물
요약설명 : 계엄군 투입이 개시되어 도청을 비롯한 주요 건물을 장악하였다고 보도했다. 리영희 선생이 스크랩한 신문 기사는 광주 시위를 선동한 간첩을 검거했다는 소식, 연합사 소속 한국군의 광주 진압 동원 요청에 주한미군 사령관이 동의했다는 소식도 포함하고 있다. 전자의 경우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의 국정원 평가 및 육·해군의 기록 등 조사 결과 근거 없음으로, 후자의 경우 1980년 주한미대사관이 미국무부에 보낸 비밀전문을 통해 미국이 병력 배치를 고려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뒤늦게 광주로부터 도착한 기록과 사진 항쟁이 종료된 후에도 신군부는 5.18의 진상이 확산되는 것을 철저히 막으려 했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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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
요약설명 : 전남민주회복구속자협의회를 결성해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종교계 및 재야인사들과 연대하여 청년운동의 기초를 다져나갔다. 1980년 1월, 민주청년협의회 전남 책임자로 활동하던 윤한봉은 5월 15일 광주에서 민중항쟁이 대대적으로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무등산 모임에서 후배들과 더불어 도청을 장악하여 투쟁할 것을 역설했다. 계엄군이 광주시민을 짓밟을 때 윤한봉도 시위대에 가담해 싸웠지만 후배들은 “형님! 어서 광주를 빠져 나가세요.”라고 강하게 권고했다. 계엄군에 의해 도청이 장악된 5월 27일, 윤한봉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주동 인물로서 내란음모죄로 전국에 현상 수배되었다. 경찰과 정보 당국은 “윤한봉은 김대중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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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 대도시에서 선거 대비 공무원 모임 활발
일자 : 1960.2.8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단위로 친목회를 구성하였는데 이는 자유당 방장 중심의 3인조·5인조·9인조 당원 확보 수단과 일치하였다. 민주당은 소위 ‘시민봉사기구’가 방과 연락을 취하며 공무원과 함께 자유당 선거운동을 한다고 지적하고, 공무원 선거운동에 대한 고발장을 작성하여도 당국에 제출할 것을 결정하였다.● 대전 지역 대전은 선거와 관련하여 도청의 각 과장을 각 군으로 출장시켜 각종 회의를 진행하게 하였다. 또한 민주당 탈당에 전력을 다하였다. 때 아니게 경찰들은 풍년초(담배이름 ; 편집자)를 나누어 주며 유권자들에게 늦은 세배를 하였다.● 광주 지역 8일, 전남경찰국에서는 도내 각 경찰서 사찰 책임자, 지서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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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민주당원들의 ‘민주주의 장송’시가행진
일자 : 1960.3.15
분류 : 시위 상황 > 광주
요약설명 : 학생들이 참가한 가운데 ‘민주주의 장송 시가행진’을 했다. 민주당 전남 선거사무장 이필호 의원의 지프를 선두로 광주시 당 본부인 금남로 4가에서 출발하여 시위를 시작,“곡(哭)민주주의의 장송”이라고 쓴 만장을 들고 “민주주의는 절명하였다! ”, “우리의 자유를 찾자! ”고 외치며 도청으로 향하였다. 시위대는 YMCA 앞에서 무장경관 200여 명과 소방차의 출동으로 오후 1시 15분 경 충돌을 일으켰다. 이 충돌로 인하여 민주당 광주시당 선전부장 김녹영을 비롯해 염성웅, 조계현, 이정근, 양계식 등이 전치 2주일 이상의 부상을 입었다. 민주당 당원과 200여 명의 군중은 경찰대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도청 앞까지 전진하였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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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금도 아랑곳 없이 광주학생의 피는 끓고 있다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광주
요약설명 : 강정섭으로 밝혀졌는데, 전남대 의대 부속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강정섭의 신원은 4월8일에 가서야 밝혀졌다(4·19혁명부상자회 광주·전남지부 호남 4·1930년사 편찬위원회, 173·190쪽). 오후 8시 30분 경, 시위대는 학동파출소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이어 양림동파출소를 습격하였다. 양림동파출소를 파괴한 다음 시위대는 둘로 나뉘어져 일대는 서방지서로 향하다가 흩어지고 다른 일대는 도심지로 되돌아와서 도청 앞을 거쳐 호남신문사 앞길로 머리를 돌렸다. 다른 시위대열 또한 충장로와 금남로 부근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계속하였다. 이들은 계림동파출소를 습격하고 금남로를 통과하여 특무대 앞에 이른 시위대열과 조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