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김지하'에 대한 통합 검색 결과 : 전체 1,16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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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사료 96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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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하 詩 초고]아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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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482077
날짜 : 197*.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도피와 유랑, 투옥과 고문 등 형극의 길을 걸어온 작가 김지하의 시 '아카시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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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하의 메모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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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482258
날짜 : 197*.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이후에는 생명사상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지하 시인의 자필메모 김지하의 사랑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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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하 詩 초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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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482261
날짜 : 197*.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중심으로서 도피와 유랑, 투옥과 고문 등 형극의 길을 걸어온 작가 김지하 詩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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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료 4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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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하 문학의 밤(슬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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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549535
날짜 : 1978.00.00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한국YMCA전국연맹
요약설명 : '김지하문학의 밤' 행사를 찍은 슬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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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석방된 시인 김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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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709987
날짜 : 1975.02.15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40분경 김지하시인이 삭발한채 한복차림으로 영등포교도소에서 출감했다. 시인은 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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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하의 "오적" 에 연관된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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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724889
날짜 : 1970.00.00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실린 김지하 시인의 시 "오적" 을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 제40호(1970.6.2)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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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사료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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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사료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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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컬렉션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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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콘텐츠 1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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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무님, 총무님, 우리들의 총무님_ 김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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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배후조종했다는 이유로 인혁당 관계자 8명에게 사형이 선고되었고, 민청학련 관계자인 김지하, 이철 등 학생 7명에게도 사형이 선고되었다. 나머지는 무기, 20년 형, 15년 형이었다. 윤은 여학생이라는 이유로 7년 형을 받았다. 선고가 떨어지자 한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형선고 받은 다른 학생들 보기가 미안하오. 죽이든 살리든 다 같이 하시오!” 한림의 외침에 법정에 있던 사람들 모두 깜짝 놀랐다. 한림의 말은 자기 자식에게도 사형을 선고하라는 의미였다. 옳고 그름을 따질 겨를도 없이 자식 걱정에 눈물만 쏟던 방청객의 부모들은 내 자식도 같이 죽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했고, 죄인이 되어 법정에 서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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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회복의 교육을 詩로 노래하다_ 성래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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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특유의 굵고 절제된 목소리로 때로는 양성우의 <겨울 공화국>을, 때로는 한용운의 <복종>을, 때로는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나 문익환의 <꿈을 비는 마음>을 자유자재로 암송했다. 결혼식에서 따분한 주례사 대신에 시를 암송했고, 심지어는 교도소에서도 검은 고무신에 죄수복을 입은 채 시를 암송했다. 그의 입에서 갇혀있던 시는 비로소 육체를 얻어 펄펄 살아서 뛰는 것 같았다. 그것은 모두에게 위안이 되기도 했고, 마음을 다지는 메시지가 되기도 했다. 그의 제자이자 동지였던 김학민은 “1970~80년대 암울했던 시절, 선생님의 시 낭송은 독재정권을 향한 투쟁의 나팔이 되었고, 또 오랜 싸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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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혁당사건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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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목사와 제임스 시노트 신부는 추방을 당했으며, 민청학련사건으로 구속되었다 풀려난 김지하 시인은 감옥에서 인혁당사건으로 붙잡힌 이들이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과 보고 들었던 것을 <동아일보>에 <고행 1974>라는 제목으로 연재하다가 3회 만에 반공법으로 재구속되기도 하였다. 1975년 4월 8일 도예종 여정남 김용원 이수병 하재완 서도원 송상진 우홍선 등 8명은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18시간 만인 이튿날 사형이 집행되었다. 제네바의 국제법학자회는 이를 '사법 역사상 암흑의 날'이라 규정했다.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인혁당사건이 조작되었다고 발표했다. 이를 바탕으로 인혁당사건 32년만인 2007년에 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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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아카이브 2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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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사료 10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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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문리대 학생회, 자유쟁취궐기대회를 열고 단식농성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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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4.5.30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맞추어 김지하가 가사를 지은 “탄아 탄아 최루탄아, 8군으로 돌아가라. 우리 눈에 눈물지면 박가분(朴哥粉)이 지워질라. 꾸라 꾸라 사꾸라야 대학가에 피지 말라, 네가 피어 붉어지면 사미생이 들려올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운동장에는 “구속학생 무조건 석방하라”, “법원 난입, 교수구타, 학원침략, 학생사형 주모자를 엄단하라”, “민생고 해결은 매판자본 몰수로부터”라는 플래카드도 보였다.『경향신문』 1964.5.30 석7면, 『동아일보』 1964.5.30 석1면, 『경향신문』 1964.6.1 석7면, 서중석, 「6·3사태: 64년 봄의 한일회담반대시위」, 『신동아』, 1985년 6월호, 313쪽. 단식을 시작한 날짜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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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문리대생 40여 명, 단식농성 3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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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4.6.1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것이냐”라는 내용의 조사를 읽었다. 문리대 김지하(미학 4)는 “윤 문교장관이 고대 YTP를 장악, 고대를 비롯한 각 학교에 사쿠라 장학금을 뿌린 장본인이다”라고 폭로하여 학생들의 박수를 받았다. 하오 1시 30분쯤에는 노미혜(사학 4)를 비롯한 여학생 20여 명이 합세, 단식에 들어갔다. 학생들의 단식농성에 대해 이 대학 여학생들이 물과 소금을 가져와 이들을 돌봐주었고, 4·19때 희생된 이근형의 어머니 이계단 여사는 기념탑 앞에서 땅을 치며 통곡, 학생들을 울먹거리게했다. 또한 린치사건으로 집에 누워있는 송철원도 격려 편지와 담배 10갑을 보내왔고, 여러 시민과 학부형들이 이들에게 각종 물품을 전달하였다. 학생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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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정보부, 내란선동혐의로 학생 8명 수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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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5.9.27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이 사건과 관련해 김영일(25, 서울대 미학과)김지하의 본명이다.등 8명을 전국에 지명수배했다. 현재 구속된 학생은 김중태를 비롯해 최혜성(24, 서울대 철학과), 박재일(27, 서울대 지리학과), 우학명(24, 서울대 지리학과), 송철원(23, 무), 이수용(25, 서울대 정치학과), 박영호(23, 서울대 대학원), 장장순(28, 동국대 법과), 정준성(22, 연세대 대학원), 이원범(26, 동국대 행정과) 등 10명이다. 중앙정보부는 이들이 ① 한일협정반대시위 때 몰로토프 칵테일식 사제 수류탄을 사용하기로 결의, 폭발물 1백 개를 제조 준비했고, ② 지난 8월 24일 오후 2시경 서울대 휴게실에서 모임을 갖고 고교생까지 총망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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