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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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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윤한상
면담자
김용재, 이영조
구술일자
2010년 7월 21일
구술장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무실
구술시간
1시간 26분 29초

구술컬렉션 > 4.19혁명 > 충청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39년 출생 1960년 당시 충북 충주고등학교 학도호국단 운영위원장으로 4월혁명 시위 주도
구술내용 요약
구술자 윤한상은 1939년 충청북도 연풍면 신풍마을에서 태어났다. 한말에 의병대장을 한 할아버지에게 물질적인 것보다는 떳떳하게  원칙을 가지고 살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또한 당시 한학자였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면서 보통 입학 나이보다 4년  늦은 나이에 초등학교 입학하게 되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자랐는데,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도 배움의 길을 계속 갈 수 있게 하셨다. 충주고등학교 재학 당시 학생회장을 하게 되었는데, 이는 중학교 은사이신  이갑식 선생님의 도움으로 충주고에서 적응을 잘 하여 나중에 학생회장까지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
1960년 4월혁명의 도화선이라 할 수 있는 지방의 학생운동이 충주에서는 자유당과 민주당의 강연에 관한 문제로 인해 시작되었다.  3월 9일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장면의 연설이 자유당의 방해로 강연장소가 정해지지 않아 노상에서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경찰진압이  일어났고, 강연을 듣던 학생들의 마음에는 민주당에 대한 동정심과 자유당에 대한 반발심이 동시에 생겨났다. 3월 10일,  학교에서는 시험시간까지 한 시간 단축하면서 홍병각 자유당 국회의원의 강연을 듣게 했다. 교양 강연이라고 했는데 정치 강연인 것이  밝혀져, '집어치워라 정치 강연 집어치워라'를 외치며 전교생이 강연장에서 나왔다. 사실 시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이상건의 주도로 '학생을 정치도구화하지 말라, 학원에 정치 중립을 보장하라'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게 되었다. 당시 경찰은  방망이를 들고 진압하였으며, 이 때 장사하는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었으나 아무도 그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사람이 없었다. 갑작스레  일어난 1차 시위는 경찰에 의해 금방 진압되었고, 이 후 2차 시위는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2차 시위의 목적은 충주고의  입장에서 많은 시민들에게 자극을 주자는 것으로, 연합시위를 준비하였으나, 결국 실패하여 충주고만 참여하게 되었다. 아세아 극장에서  차고까지 진입했으나, 경찰의 진압에 대표들이 체포되었다. 이 때 장구환은 고문까지 당했으나, 구술자는 학생회장이라 시위  배후세력을 묻는 취조를 당했다. 당시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시위라 결의문 같은 것은 없었지만, '정치도구화를 하지 말라, 학원의  정치 중립을 보장하라'는 구호를 가지고 시위를 이어갔다. 다행히도 시위 과정에서 큰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4월 26일  이승만 하야 이후 시국수습 차원에서 선무반이 충주지역 고등학교 학생회장들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선무반에서는 자신들의 정치활동에  학생들의 참여를 요구했으나 4‧19 시위는 민주주의를 위한 시위이지 민주당을 위한 시위가 아니라며 활동을 거부하고, 대신  학생들끼리 모여 선무반을 꾸렸다. 이 후 민주당의 세력이 커지면서 벌어지는 세력다툼에 「누구를 위하여 피를 흘렸나」라는 글을  발표하며 4월혁명이 정치를 위한 시위가 아닌 민주주의를 위한 혁명임을 강조하였다. 
5월 경 서울에서는 교사 배척운동이 일어났으나, 충주에는 뒤늦은 7월에 교사 배척운동이 일어났다. 이는 보충학습에 대한 수업료를  교사들이 요구하면서 생긴 학생과 교사들의 마찰이었다. 이 일로 교사들이 많이 바뀌었으며, 8명의 학생이 퇴학 위기에 놓였으나  김기석이라는 학생의 희생으로 나머지 학생은 퇴학당하지 않았다. 다음 해에는 수업이 원활히 진행되었다.
그동안 구술자는 4‧19 시위에 참여한 것을 주변 동료교사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는 4월혁명이 교사배척운동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완전한 정의는 없으니 무엇이든 극단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모든 일을 겪은 선생의 생각이다. 또한 4월혁명 당시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지만, 현재 그 사람들이 모두 거론되지 못하고 있는 점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5. 참고자료

윤한상, 『쉬어가는 그루터기』, 「누구를 위하여 피를 흘렸나」, 2008(고희기념문집)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