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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영
사업개요
- 70년대 민주노조와 5.17이후 정화조치 1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1-2차년도 과제인 '70년대 민주노조와 5.17이후 정화조치'는 1970년대 민주노조의 결성 경위와 활동 성과를 파악하고, 1980년 신군부가 단행한 ‘정화조치’의 실상을 관련자 구술을 통해 입체적으로 재구성하여 역사 자료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당시 노동운동가와 지원 조직의 활동 및 삶을 고찰함으로써 기존 생산된 자료나 연구 성과의 사실관계를 재규명하고, 5·17 이후 정화조치가 각 사업장에서 작동한 방식과 그 구체적인 피해 양상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나아가 과거의 활동이 당사자들의 이후 생애와 인식에 미친 영향을 살펴봄으로써, 70~80년대 노동운동사가 지니는 현대적 의미를 조명하고 관련 사건들을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자 한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최순영
- 면담자
- 이영재, 정호기
- 구술일자
- 2018. 11. 9
- 구술장소
- 부천시 길주로 소재 웹툰회의실
- 구술시간
- 147분
구술컬렉션 > 노동운동 > 70년대 민주노조와 정화조치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69. 강릉에서 가발 공장 취업
1970. 3. YH 무역입사
1975. YH 노동조합 지부장 선출
1978. YH 노동조합 지부장 재선출
1979. YH 노동조합 사건 관련 구속
1983.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여성부장
1987. 한국여성노동자회 운영위원
1989. 부천 여성노동자회 창립(회장)
1995 한국여성단체연합 지방자치특별위원/부천시의회 운영위원장
2000 민주노동당 부대표
2004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 구술내용 요약
-
최순영은 1953년 강원도에서 출생했다. 10대 후반에 강릉시 소재 가발공장에서 잠시 일한 경험이 있다.
1970년 3월 친구와 같이 상경하여 서울시 면목동 소재 YH무역에 입사했다. YH무역은 1966년 자본금 100만원으로 설립되어 급성장했던 가발업체였다. YH무역은 유사 공장들에 비하면 근무 환경이 좋은 편이었으나, 기숙사 등 주거시설은 열악했다. 구술자는 수제반에서 근무했는데, 빨리 기술을 습득하여 좋은 대우를 받았다. 당시만 해도 구술자는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알지 못했고, 근면하고 성실한 노동자일 따름이었다.
1975년 3월 건조반 사건을 계기로, YH무역 내에서 노동조합 설립의 필요성이 촉발되었다. 노동자들은 회사의 방해와 탄압을 극복하고, 같은 해 5월 24일 전국섬유노동조합 YH무역지부를 결성했다. 최순영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초대 지부장과 제2대 지부장으로 선출되어 노동조합을 운영했다. 회사는 노동조합의 무력화와 해산을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했으나, 조합원들은 결속력이 매우 높았고, 활동력은 상승했다.
1970년대에 들어 가발산업은 점차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경영진은 외화 도피와 자금 유출 등으로 업종전환 등을 모색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YH무역의 위기를 촉진시켰고, 1979년에 들어 폐업에 직면했다. 노동자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1979년 8월 회사 기숙사 및 식당과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전개했다. YH무역 노동자들의 농성은 경찰의 강제 진압으로 종료되었고, 이 과정에서 김경숙이 사망했다. 결국 YH무역은 폐업했고, YH무역 농성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고초를 겪었다.
따라서 1980년 정화조치가 실시될 무렵, YH무역 노동조합은 정화의 대상이 아니었다. 주위의 노동자들은 정화조치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었다. YH무역 노동자의 신민당사 농성사건에 관한 재판은 1982년에 이루어졌다. 이후 구술자는 고 김경숙의 사인을 규명하고, 추모사업을 위해 노력했다. 그 일환으로 마석모란공원에 어렵사리 김경숙의 묘지를 조성할 수 있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YH 노동조합원들이 마지막 투쟁을 위해 신민당사 점거 농성에 들어가는 과정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