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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구
사업개요
- 1980년대 농민운동 1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3~4차년도(2021~2022) 과제인 '1980년대 농민운동' 구술 채록은 한국 민주화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농민운동의 기억을 복원하고 문헌에 누락된 현장의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수행되었다. 1차 채록은 기독교농민운동 관련 인사 3인(김홍재, 박용래, 이봉구)을 구술자로 선정하여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 참여 과정을 중심으로 그 전후의 활동상을 포괄했다. 특히 1990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출범을 농민운동의 중대한 전환점으로 상정하여, 이전 시기에 발생한 다양한 쟁점과 사건도 재조명 하였다. 본 사업은 농민운동이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 점유하는 역사적 위상과 의미를 규명하고,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1차 사료를 구축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이봉구
- 면담자
- 정호기, 김경자
- 구술일자
- 2020.8.19.
- 구술장소
- 충남 서천군 마을회관
- 구술시간
- 188분
구술컬렉션 > 농민운동 > 80년대 농민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41. 충남 서천군 출생
1954. 마산초등학교 졸업
1982. 겨울 충남기독교농민회 창립을 위한 준비에 참여
1983. 01. 충남기독교농민회 발기인대회 참석
1983. 03. 11. 충남기독교농민회 창립. 총무 선임
1983. 12. 19.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 제2차 중앙상임위원 선출, 이후 상임위원
1984. 02. 28.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 제2차 정기대의원 총회 부회장(2회) 선출
1985. 11. 20. 민통련 민주헌법쟁취위원회 농민부문 위원으로 참가
1988.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 회장으로 선출
1990. 02. 18. 한국기독교농민회 감사
2011. 02. 09. 마산면 바우처후원회 회장
- 구술내용 요약
-
이봉구는 1941년 1충남 서천군에서 출생했다. 6·25전쟁이 발발하기 이전 초등학교 재학 중에 동네 어른들을 따라 부여군 충화면 소재 오덕교회에 나가면서 기독교인이 되었다. 서울에서 중학교 시험에 합격했으나 등록금이 없어 입학하지 못했다. 장안중학교에 다니던 무렵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낙향하여 농사를 지었다. 결혼은 같은 동네 후배와 했다.
1954년 4월경 오덕교회에서 관포교회가 분리 설립되었다. 이때부터 점차 관포교회를 중심으로 관포리 마을 일이 이루어졌다. 박정희시대에는 한창 열을 올렸던 새마을운동에 참여했다. 관포리는 농토가 적고 수입이 낮았다. 새마을운동을 열심히 했으나, 생활은 여전히 어려웠다. 그래서 이농을 결심했는데, 관포교회 임종수 목사의 훈계로 주저앉았다. 그 무렵인 1977년 양주석 장로의 권유로 크리스천아카데미 교육을 받았다. 양주석 장로의 외갓집이 관포리여서 일찍이 인연이 있었다. 크리스천아카데미 교육을 받은 직후 YMCA가 의정부에서 실시한 다락방교육을 이수했다. 크리스천아카데미 교육 이수 후 관포교회에서 문동환 목사 초청강연회를 개최한 것과 관련해 당국의 주시를 받았다.
1982년 3월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 창립총회에 참여했으나, 중요한 역할을 맡지는 않았다. 양주석 장로와 연계하여 1983년 3월 11일 충남기독교농민회 창립에 참여했고, 총무로 인선되었다. 충남기독교농민회 창립에 앞서 이화여대 내 다락방에서 개최된 농민 집단교육에 참여했다. 이러한 활동 인연으로 1983년 12월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 중앙상임위원에, 1984년 2월 같은 단체 부회장에 선출되었다. 이후 부회장을 한차례 연임했으며, 1988년에는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회장에 재임하는 동안 전국농민회총연맹이 출범하는데 일조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이 출범한 이후에는 그동안 도외시하여 어려워진 가정의 경제를 위해 일정기간 전념했으며, 평회원으로 농민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 탄생 순간, 충남기독교농민회 출범 과정, 전국농민회총연맹 결성 배경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