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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안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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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안병용
면담자
정용인
구술일자
2020.10.30.
구술장소
현대사기록연구원
구술시간
172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유화국면 이후 학생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80 부산동성고 졸업

1989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졸업

1988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1995 26기 사법연수원 수료

2006 법무법인 한빛 대표 변호사

2017 한국성장금융 사외이사

2019 경찰청 법률자문단 위원, 금융감독원 제재심의 위원

구술내용 요약

구술자는 경남 함안 출생으로 부산에서 성장했다. 부산동성고 재학 시절 부마민주항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형성했다. 1980년 대학 입학 직후 '서울의 봄' 당시 아크로폴리스 광장 집회를 목격했으며, 5월 13일 신촌 미팅 중 우연히 대중 연설을 하기도 했다.

대학 진학 후 학내 지하 서클에 가입하여 세미나와 토론 중심의 학습을 시작했다. 광주항쟁의 실상과 5.18 비디오 시청은 의식화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유럽과 남미의 좌파 이론, 자본주의 정치경제학, 주요국 혁명사 등을 섭렵하며 한국 사회의 변혁 방안을 모색했다.

1980년대 중반 유화국면 속에서 비합법 활동을 이어갔으며, 문용식의 제안으로 민추위(민주화추진위원회) 및 학간연대에 참여했다. 윤성주와 함께 조직의 정치신문 격인 문건 '깃발' 제작을 주도했다. 당시 추구한 사회주의적 지향은 구체적인 체제 구상보다는 반독재·민족자주화라는 현실적 과제에 집중된 형태였다.

TV 시청 중 연행되어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했다. 출소 후 역사문제연구소 등에서 활동하다 대학원 진학 대신 사법시험 준비로 전향했다. 수감 중 사법연수생 신분이던 백태웅을 만난 바 있으며, 사노맹이나 NL 주사파 세력과는 수감 시기 등의 이유로 직접적인 접점은 없었다. 이후 학생운동 시절의 경제학적 관심을 바탕으로 금융 전문 변호사가 되었다.

구술자는 저항운동의 생명력을 도덕성에서 찾으며, 이론의 교조화와 앵무새 같은 답습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견지한다. 80년대 운동권(386세대)이 수행한 역사적 역할은 인정하나, 현 세대에게 기득권으로 비춰지는 한계 또한 직시한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행적을 부각하거나 보상을 바라는 데 소극적이나, 당시 희생한 이들에 대한 사회적 보상의 필요성에는 동의한다. 본 구술 참여는 과거의 공백이 왜곡된 해석으로 채워지는 것을 방지하고 사실에 입각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하여 결정된 것이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유화국면의 도래와 학생운동이 선도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