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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구
사업개요
- 유화국면 이후 학생운동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3차년도 과제인 '유화국면 이후 학생운동' 구술 채록은 그동안 관념적 이해되고 알려졌던 학생운동가들의 고민과 활동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구술 대상은 1980년대 유화국면 이후 ‘MT-MC 논쟁’ 시기에 활동한 학생운동 지도부를 중심으로 선정했다. 특히 공개 조직 외에 언더 및 배후에서 주요 방향 설정과 의사결정에 참여한 핵심 인물들을 포괄했다. 서울대를 비롯하여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서강대 등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5개 대학의 77~82학번 인사들을 대상으로 채록을 수행하여, 당시 학생운동의 내부 논리와 전개 과정을 기록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윤성구
- 면담자
- 신동호
- 구술일자
- 2020.10.30.
- 구술장소
- 인천업사이클에코센터
- 구술시간
- 201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유화국면 이후 학생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80.9~1981.6 서울대 수학과 재학중 전민학련 참여 반파쇼 학내투쟁 조직
1981.6~1982.12 학림사건 연행, 집시법위반 실형선고, 1년6개월 복역후 출소
1985.7~1986.12 제헌의회그룹 중앙위원회 사무국장으로 반파쇼 투쟁활동 참여
1986.12~1988.12 CA사건 연행, 국보법위반 실형선고, 2년 복역후 출소
1996.2~현재 인천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
1998.2~현재 조달청 정부물품재활용센터 대표(전) 및 이사(현)
2010.2~2018.2 전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분과위원(장), 운영위원 등
2014.3~2018.2 전 인천시사회적기업협의회 회장(3,4대)
2016.9~현재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업사이클에코센터 센터장
2018.7~현재 인천시 환경교육센터 센터장
- 구술내용 요약
-
서울대 자연과학대 입학 후 배문고 선배의 권유로 국제경제학회에 가입, 활동하였다. 학생운동을 하기 위해 실험실 출석 의무가 적은 수학과를 선택하였다. 학회 활동을 하면서 영동 고시야학 강학과 야학연합회 활동을 한 것이 학생운동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광주사태를 접하고 충격을 받아 유인물 활동을 하던 중 선배로부터 그보다 더 중요한 조직화 작업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1981년 무림그룹이 해체된 학내 운동권의 지도부를 맡아 1학기 시위투쟁을 조직하였다. 한편으로 전민학련의 경인지부장을 맡아 수도권 대학의 각종 시위투쟁을 조직,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전민학련은 윗선부터 드러나 반국가단체사건으로 비화됐고,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몸이 상하는 고문과 함께 어렵게 살던 가족까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1984년 유화국면과 함께 벌어진 복-비복 논쟁에서 단체 복학을 거부하고 학외에서 학생운동 지도부 재건을 도왔다. 하지만 4인 협의체의 구상에 따른 학내 지도부는 민주화추진위원회사건으로 또다시 궤멸되었고, 최민과 함께 거기서 살아남은 세력을 규합해 제헌의회(CA)그룹을 조직하였다. 이 때문에 죽음에 이를 정도로 고초를 당하고 폐인이 된 상태로 출소해 혁명운동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MT-MC논쟁의 전개와 결과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