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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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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정순녀
면담자
이영재
구술일자
2021.7.28.
구술장소
서울시 중랑구 구술자 자택
구술시간
125분

구술컬렉션 > 가족운동 >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37 충남 공주 출생

1949 서울에서 생계 활동

1961 결혼

1987 민가협 활동

1988 구로구청 부정선거 항의투쟁 지원

1991 수서비리 항의투쟁에서 최루탄에 맞아 눈 부상

구술내용 요약

정순녀는 1937년 충남 공주시에서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학을 공부하신 분이었다.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아 어려서부터 돈을 벌어야 해서 가정부에서부터 서울 식당일까지 했다. 1961년 결혼했다. 큰 딸 양용주가 1982년 서울대학교에 지질학과 입학하고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2학년 때부터는 노동현장에 위장취업 했다. 구술자는 딸을 말리기 위해 서울대학교에도 자주 찾아가고 했고,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거나 무당을 찾아 굿을 하기도 했다. 

1987년부터 민가협 활동을 시작했다. 구술자는 본인이 임기란 어머니 꼬붕이라고 할 정도로 임기란 어머니에 대한 신뢰가 깊다. 구술자는 딸이 교도소에 구금되자 1988년부터 민가협 활동을 시작했다. 1988년 임기란 어머니와 구로구청 부정선거 항의 투쟁 현장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 밥과 콩나물국을 준비해 갔다가 진압이 벌어져 모두 땅에 쏟았던 기억을 생생하게 하고 있다. 1991년 수서비리 항의투쟁에 참여했다가 최루탄에 맞아 눈이 거의 실명상태에 이르렀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 자세한 일자와 사건 지명 등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으시면 각인된 인상에 대해 말씀을 전하셨다. 특히 장기수 석방운동을 하러 공주 교도소 항의방문을 했던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 딸과 같이 활동했던 박충렬이 단식을 한다는 말을 듣고 전주교도소에 혼자 찾아가 교도소 과장을 만나 책상 유리를 깨뜨리고 항의해서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민가협에 가입하게 된 사연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