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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하
사업개요
- 1980년대 가족운동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4차년도 과제인 '1980년대 가족운동' 구술 채록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 결성 주역과 장기 활동가를 중심으로 수행되었다. 민가협의 산실이 된 어머니들과 실무를 총괄했던 전직 총무들을 구술 대상자로 선정하여 조직의 형성 과정과 초기 활동상을 기록했다. 주요 내용은 1985년 12월 12일 민가협 결성 배경과 창립기 활동을 비롯하여, 1980년대 가족운동이 인권운동으로 외연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포괄한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 민주화 과정에서 가족운동이 수행한 독자적인 역할과 역사적 의미를 종합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조무하
- 면담자
- 이영재
- 구술일자
- 2021.8.8.
- 구술장소
- 서울시 종로구 4.9통일평화재단 사무실
- 구술시간
- 151분
구술컬렉션 > 가족운동 >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 1968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 입학1972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 졸업1972 원주에서 교사 생활 (인천에서도 교사 생활)1977 결혼 후 남편(장기표) 구속1980.5 친척 집 등지로 도피1985 가산중학교 임시교사1986 5.3인천사태 구속을 알리기 위해 NCC 목요기도회 참석1988.1 민가협 총무1989 양심수후원회 결성 주도, 양심수 후원회 부회장
- 구술내용 요약
-
조무하는 1950년 경기도 파주시에서 7남매 중 3녀로 태어났다. 1972년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원주 등지에서 교사로 생활했다. 1977년 결혼 후 남편 장기표 선생이 구속되었다. 1979년 12월에 출소했지만 1980년 5월경에는 다시 예비검속을 피해 아는 집이나 친척집 등지로 도피생활을 해야 했다. 가산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 하던 중에 1986년 5.3인천사태가 있었고 남편이 구속되었다. 이때부터 목요기도회에 나와 남편의 구속을 알리는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때는 교사로 근무 중이어서 민가협활동을 시작하지 않은 상태였다.
1987년 남편이 6년형을 받고 구술자는 1988년 1월부터 석방운동도 본격적으로 할 겸 민가협 활동을 시작했다. 인재근 총무의 다음 총무로 역할을 했다. 1988년 남민전을 비롯해 많은 장기수들이 출소를 한 것이 보람된 일로 기억에 남아 있다. 구술자는 민가협 총무로 일한 경험을 돌아보면 다섯 개의 협의체적 성격을 갖는 구속자 협의회가 모여 만든 협의체적 조직이 민가협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평가는 다소 형식적이라고 평했다. 실제 활동하는 동안 5개 협의체가 제대로 구조적 관계를 유지한 것은 아니었다.
구술자는 구속학생학부협의회 활동이 가장 활발했다고 기억한다. 구술자는 특히 장기수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김해식 선생을 직접 면회하기도 했다. 김해식 선생을 면회하면서 오래 못나가게 되니 다른 데로 시집가라고 해서 정말 시집을 가게 된 사연을 들으면서 울었던 기억을 생생하게 하고 있었다. 구술자는 총무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양심수후원회 결성에 주력했다. 당시 양심수후원회를 결성을 주도하고, 결성 초기 후원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민가협 총무를 맡으면서 시작된 양심수 석방단식농성을 시작한 사연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