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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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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이부영
면담자
한승동
구술일자
2021.10.25.
구술장소
서울시 종로구 민주언론운동협의회
구술시간
250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언론민주화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55-1960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중학교, 용산고등학교

1961 용산고 졸업. 서울대학교 문리대 정치학과 입학

1963-1966 육군을 거쳐, 카투사병으로 근무 (부평 -> 미8군 부관실 번역병)

1966 KBS 외신부 직원으로 근무

1968 한국일보, 중앙일보를 거쳐 11월 동아일보 입사

1975 동아 언론노조 섭외부장, 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대변인

청우회 사건으로 구속 징역 2년 6개월

1977 12월 28일 전주교도소에서 석방

1979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구속

1981 3월 석방

1984 민주민중운동협의회 공동대표

1984 민주언론운동협의회 결성 주도, 초대실행 위원

1985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사무처장

1986 인천5‧3항쟁으로 구속

1988 2월 27일 석방

1989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상임의장

1992-2004 제 14~16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부총재, 열린우리당 당의장 등 역임

구술내용 요약

1942년 서울에서 출생한 이부영은 용산고 재학시, 동급생이 4‧19혁명 시위에 나섰다가 피격되어 사망하자 부끄러움을 느끼고 기계공학도의 꿈을 바꿔서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에 진학했다. 입학한 해, 5‧16쿠데타가 발발하여 억압과 공포 아래서 대학생 시절을 보냈다. 

군 복무를 마치고 한국일보, 중앙일보를 거쳐 1968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언론통제 아래 침묵하는 언론계를 보며 자괴감을 느꼈다. 1974년 동아일보 노동조합 창립을 주도했고, 그해 10‧24자유언론실천선언에 참가했다. 그러나 1975년 3월 강제해직 당했고, 이어 정권의 조작에 의해 ‘청우회 사건’으로 수감되었다.

박정희 정권 시기 계속 민주화운동을 했던 그는 1979년 다시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되어, 교도소에서 삼청교육을 받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사 복직보다는 민주화가 먼저라는 것을 자각하고, 해직 기자들과 19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 결성을 주도한다. 

이어 그는 민민협, 민통련 등의 활동을 하면서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삼청교육대를 경험하고 정권의 폭력성을 절감한 이후, 정론직필과 불편부당 같은 가치보다는 민주화가 최우선 과제란 것을 절감함. 이를 위하여 언론인들이 적극적으로 재야 운동에 동참할 것을 독려하고, 그 결과 ‘언협’이 출범할 수 있었음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