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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
사업개요
- 1980년대 언론민주화운동 2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의 4~5차년도(2021~2022) 과제로 진행된 ‘1980년대 언론민주화운동’ 은 당시 운동에 깊이 관여한 언론인을 구술 대상자로 선정하여 채록을 수행했다. 2차 채록에서는 <말>지 발행 및 ‘보도지침’ 폭로 과정을 비롯해,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의 창립과 지난 42년간 전개된 진상규명·명예회복·보상 투쟁을 기록했다. 또한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창립 회원들의 증언, 신문·방송·통신계의 언론 통제 실상과 해직 기자들의 민주언론운동, 호남 지역 및 여성 해직 언론인이 겪은 탄압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담아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이석원
- 면담자
- 박성득, 이병호
- 구술일자
- 2022.6.28.
- 구술장소
- 민주언론시민연합
- 구술시간
- 263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언론민주화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58 전주고등학교 입학
1961 서울대 문리과대학 사회학과 입학
1967 11월 동아일보사 입사
1975 자유언론운동 참여로 인해 강제해직
1984 전북민주동우회 초대회장
1984 민주언론협의회 발기인
1985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초대 감사
1986 출판문화운동협의회 초대 회장
1987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언론 출판계 대표)
1987 서울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서민통련) 부의장
1988 12월 민주언론운동협의회 2대 의장 (~ 1995년 4월)
- 구술내용 요약
-
이석원은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하여 운동권 학생의 설득으로 학생운동에 가담하게 된다. 법대 대의원회 의장으로서 민청학련 사건이 벌어지자 법대 조직책으로 몰리기도 했다. 1975년 학원민주화운동을 주도하다가 4학년 1학기 중 제적된다. 이후 1975년 5·22사건에 연루되었다는 누명을 쓰고 조사를 받은 후 강제 입대하게 된다.
10·26사건 이후 복학, 졸업할 수 있었다. 광주항쟁 자료를 보고 분노하여 진상을 폭로하고 신군부에 저항을 촉구하는 유인물을 작성, 배포한다. 체포되어 군사법원에서 재판 중 선고유예로 석방된다.
직장인으로서 민청련 회원 활동을 하던 그는 퇴사 후, 민주언론운동협의회(언협) 사무차장 겸 <말>지 편집차장으로 일했다. 1986년 친구인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로부터 정부의 언론통제의 증거인 ‘보도지침’을 입수하여 언협에 전달한다. 1986년 9월 <말>지 보도지침 특집호가 발행된 후, 6월항쟁까지 도피 생활을 하며 <말>지 편집에 참여했다.
언협을 떠나 진보적 대중정당 건립 운동에 참여하고, 민중당 출범을 주도한다. 진보정당운동의 현실적 한계를 절감한 그는 대안적 정치세력 형성과 정책 수립을 위하여 나라정책자료실을 만들고 이 조직은 후에 나라정책연구회로 발전한다. 다양한 정책 보고서와 국회의원 성적표를 발간한다.
여당인 민주정의당을 견제하고 변화를 이끌고자 여의도연구소에 참여했으나 내부 의견이 맞지 않아서 그만둔다.
이후에도 한국정치 발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했다.
언협 사무차장과 <말>지 기자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이자 보람을 느낀 시기였다. 지식인운동의 중요성과 영향력을 절감할 수 있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전두환 정권이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언론을 통제한 증거인 보도지침이 어떻게 유출되어 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 전달되었는지 증언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