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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홍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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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신홍범
면담자
한승동
구술일자
2021.10.29.
구술장소
서울시 종로구 민주언론운동협의회
구술시간
245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언론민주화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60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 입학

1965 11월 조선일보사 입사 / 문화부, 외신부

1969 5월 동양통신사 외신부 기자

1970 9월 조선일보사 외신부 기자

1972 3월 문화부로 부서 이동

1974 12월 18일 조선일보에서 해직

1975 3월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결성

1978-1983 한국증권업협회 근무

1983 3월 ‘도서출판 두레’ 운영

1984 12월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실행위원

1986 12월 ‘보도지침 사건’으로 구속

1987 6월 집행유예로 석방

7월부터 새신문 창간 작업에 참여

1989-1991 논설위원, 논설 주간 등 역임

이후 도서출판 두레 대표

구술내용 요약

1942년 충북 진천군의 중농에서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구술자는 서울대 문리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68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했다. 외신부 리영희 부장 아래서 기자 수련을 받았던 그는 박정희 정권의 언론통제에 반감을 가졌다. 

19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한 조선일보 기자들은 결의 사항을 실천하려 했다. 구술자는 입사동기 백기범 기자와 함께,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는 기고문만 게재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편집국장에게 이의를 제기했고, 이 때문에 그해 12월 18일 해임됐다.   1975년 3월 6일 조선일보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생계를 위하여 한국증권업협회에서 근무하던 중 1983년 두레출판사를 인수하여 운영하였다. 19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의 출범을 기획‧준비했다. 언협의 기관지 <말>의 제호와 편집 체제 등을 결정하였다. 1986년 보도지침의 폭로를 결정하고 같은해 12월 구속되어 1987년 6월 3일 집행유예로 석방된다. 

이후 한겨레신문 창간 과정을 주도했으면 특히 지면 구상 논설위원, 논설주간을 지냈다. 한겨레신문 초기에 구성원 간의 갈등, 특히 조선투위와 동아투위의 미묘한 대립에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구술자는 한겨레신문이 쇄신되야 하고, 언론개혁운동의 선두 주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신문에는 혼이 있어야 하며, 한겨레는 시대정신을 찾고 구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현재 두레출판사를 운영하는 구술자는 조선투위 위원이자 원로언론인으로서 남은 생을 언론 개혁에 바치고자 한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전두환 정권의 폭압 아래서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하던 시절, 재야 언론운동단체 출범을 주도했던 일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