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Embed 퍼가기
하단의 내용을 복사해서 퍼가세요.
URL 퍼가기
하단의 내용을 복사해서 퍼가세요.
이메일 공유
정상모
사업개요
- 1980년대 언론민주화운동 2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의 4~5차년도(2021~2022) 과제로 진행된 ‘1980년대 언론민주화운동’ 은 당시 운동에 깊이 관여한 언론인을 구술 대상자로 선정하여 채록을 수행했다. 2차 채록에서는 <말>지 발행 및 ‘보도지침’ 폭로 과정을 비롯해,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의 창립과 지난 42년간 전개된 진상규명·명예회복·보상 투쟁을 기록했다. 또한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창립 회원들의 증언, 신문·방송·통신계의 언론 통제 실상과 해직 기자들의 민주언론운동, 호남 지역 및 여성 해직 언론인이 겪은 탄압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담아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정상모
- 면담자
- 이병호
- 구술일자
- 2022.11.4.
- 구술장소
- 민주언론시민연합
- 구술시간
- 177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언론민주화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48 충남 금산 출생
1967 대전고등학교 졸업
서울대 문리과대학 인류학과 입학
1977 문화방송 입사
1980 문화방송 외신부 기자, 제작 거부 운동으로 강제해직
1984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총무,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창립 회원
1986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사무국 근무
1987 민주언론운동협의회 3대 사무국장
1988 한겨레신문 여론매체부 편집위원보
1998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2005 문화방송 논설위원
2017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 구술내용 요약
-
충남 금산에서 태어난 정상모는 인류 평화, 화합을 추구하며 인류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언론자유는 모든 자유를 가능케 하는 자유이므로 언론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고, 결국 문화방송에 입사한다. 그러나 친정부적인 보도와 거대자본 앞에 침묵하는 행태를 보고 언론 현실에 실망한다.
10·26사건 이후 민주화의 희망이 생기자 1979년 11월 기자 총회를 주도하여 유신 언론 청산, 언론 정도의 확립, 언론자유의 수호를 결의했다. 1980년 5월 문화방송 보도국 기자 총회를 주도하여 ‘언론자유수호선언문’을 채택했다. 그리고, 총회 결의사항을 뉴스로 보도할 것을 제안하여 관철시킨다. 외신을 통해 광주항쟁의 참상을 알게 되자 보도 검열에 항의하여 제작 거부에 돌입한다. 그러나 얼마 후 찬반 투표에서 제작 거부 중단이 결정된다.
7월 19일 강제 해직 후, 취업이 제한되자 해직기자·민중예술인·민주화 인사 등과 교류했다, 벽산그룹 홍보실을 거쳐, 금강기획으로 이직했다.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와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참여했다. <핵과 한반도> 저술을 계기로 반핵평화 운동에 참여했다. 언론운동 참여를 반대한 회사의 강요로 퇴사하게 된다.
보도지침 폭로 이후 정권의 탄압에 몰려 위기에 처한 언협의 사무국장을 맡았다. 사무실 문을 열고, <말>지 발행을 재개하고, <말소식>을 발행했다. <말>지 9호를 발행하고 구류 9일 처분을 받았다. <말>지 10호에서 권력과 대학 재단의 유착, 학원 정보공작의 실상을 폭로하고 도피 생활에 들어갔다.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했고 한겨레기자평의회 2대 의장으로 선출되어 편집위원장 직선제 도입을 주도했다. 직선제는 언론계로 퍼져나가서 언론민주화의 물꼬를 텄다. MBC로 이직하여 논설위원을 지냈다. 언론의 기능은 예측과 예방이라고 생각하며 사회가 엉망이 되고 있다면 언론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본의 아니게 정권의 앞잡이였던 과거를 반성하고 자유언론 수호에 나섰던 한 방송기자의 실천을 기록. 특히 언론의 정도를 걷겠다는 결의를 뉴스 방송에 내보내기 위한 분투와 그로 인해 당한 강제해직 과정 채록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