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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언론 예술문학 민주화활동

언론 예술 문학 분야에서도 민주화바람은 거세게 불었다. 많은 민주화 관련 내용의 문화공연들이 있었는데 [91 분단의 벽을 넘어서 하나된다.] [분단의 벽을 넘어서] [91 통일한마당 - 조국 그 하나됨을 위하여]등의 노동자 주최 공연과 대표적인 노동자 노래패 꽃다지의 공연이 대표적인 예이다.
민주 노동 문학과 영화도 억압속에서도 들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노동해방문학〉 도 정간의 위기에 처해졌지만 노동자들의 힘으로 살려냈고 장산곶매의 16mm 장편노동영화 ‘파업전야’도 상영이 위법화됐지만 학생들의 소신있는 결단력으로 교내에서나마 상영되었다.
1990년대 문화예술기관 활동 현황도 여러 단체들의 발족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민주언론운동협의회, 민족예술의 발전과 문화예술운동의 대중화를 목적으로 하여 설립되어 진보적인 문학가를 중심으로 예술·영화·연극·음악에 종사하는 예술인들로 구성된 민예총, 학문, 사상, 표현의 자유 수호를 위한 공동대책위 발족회 등이 문학,예술인들의 단체 활동을 보장해 주고 있었다.
이런 단체활동들로 언론,예술,문학 분야의 민주화가 진행되는 한편에서는 이런 민주화 바람을 막으려는 세력들이 존해해 갈등을 낳았다. 정부는 언론탄압을 위해 공영방송국의 민선사장을 사임시키고 노조원들의 언론자유를 억압하려 하였다. 이에 KBS뿐만 아니라 4개 방송사를 비롯하여 온 국민이 힘을 합쳐 이에 맞섰다.
MBC 사태와 방송개악법 ,한국일보 사태 모두 이런 정부의 언론탄압에 속하는 사건이다.
언론탄압에 많은 노조원들이 항거하고 이에 따라 구속 예술인들도 늘어나게 되었다. 이에
구속예술인 석방을 위한 거리공연 ,구속출판인 석방촉구 ,해직언론인들의 복직 시위등도 잇달았다. 이런 언론,예술,문학의 민주화 바람이 여러 역경들을 딛고 자리 잡음으로써 노동신문등 노동자기관지가 1주년을 맞이하고 김남주 시인과 같은 80년대를 대표하는 민주시인의 죽음이 그냥 묻히지 않고 민주사회장으로 애도되는 등 이들의 민주화 운동이 그 가치를 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