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2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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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교내시위 주동 고려대생 구속
등록번호 : 00986483
날짜 : 1983.11.07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신대학교
요약설명 : 주동한 고려대생을 집회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하였으며, 고려대 이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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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6개대생 5천여명 고려대에 모여 시위
등록번호 : 00985831
날짜 : 1984.05.0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신대학교
요약설명 : 서울대와 고려대 등 서울시내 6개 대학 학생 5천여 명이 고려대에 모여 학원사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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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부상자실태조사서(서울지역)26]
등록번호 : 00850008
날짜 : 1960.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고려대생으로 4월 26일, 동대문 경찰서 앞에서 데모를 진행하다 유리에 부상당한...
사진사료 3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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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압살 민중탄압 노태우 정권 박살내자는 현수막을 들고 거리 시위를 진행 중인 고려대생들
등록번호 : 00705636
날짜 : 1991.04.18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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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권은 물러나라" 라는 피켓을 들고 4.19혁명 가장시위 중인 고려대생들
등록번호 : 00736071
날짜 : 1984.04.16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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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앞에서 교내군인난동사건과 관련하여 농성 중인 고려대생들
등록번호 : 00736602
날짜 : 1971.10.08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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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ㆍ18 고려대생 시위 및 피습사건
요약설명 : 4.18 시위를 기념하여 후일 행해진 각종 행사와 관련된 사료들이 대부분이다. 예컨대 33주년 4.18자료집인 <자유! 너 영원한 활화산이여-민중정치 실현을 위한 대장정>(등록번호 : 5456), 고려대총학생회의<‘97 4.18민중해방대장정 토론자료집-불복종의 역사를 오늘에 이어>(등록번호 : 15732), <4.18특집신문-민중과 함께 민족고대는 싸우고 있다> (등록번호 : 117487) 등 고려대학교 학생회가 4.18을 맞아 생산한 문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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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ㆍ28대구학생시위 (2ㆍ28대구민주화운동)
요약설명 : 당시 대구 수성천변에서 열린 민주당 부통령 후보 장면의 연설회 사진(등록번호: 700201), 시위 과정에서 경찰에 연행되는 경북고등학교 학생(등록번호: 700200)과 '학원의 자유보장' 외치며 시위에 들어간 고교생들(등록번호:700202) 사진 등이 있다. 2.28대구민주운동기념사업회 설립총회 서류(등록번호: 55241,430937)를 비롯, 2.28 뺏지(등록번호:55243), 제1차 이사회 서류(등록번호: 55238) 등 2.28대구민주운동기념사업회가 기증한 사료가 있다. 2.28민주의거40주년특별기념사업회 명의의 40주년 창립총회 서류(등록번호: 55240)와 논문「2.28 민주의거의 역사성과 세계성」, 경향신문사가 생산한 기념심포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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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ㆍ25 대학교수단 시위
요약설명 : 4.25 대학교수단 시위에 직접 관련된 자료는 많지 않다. 3.15의거기념사업회(등록번호 : 700220)와 경향신문사(등록번호 : 732784, 721907)가 생산한 사진과 대학교수단의 시국선언문(등록번호 : 481323) 등이 있다.
사료 콘텐츠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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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문으로 본 4.19혁명
요약설명 : 16일, 이날은 고려대생들의 신입생환영회가 계획된 날이었다. 마산 2차시위에 고무된 고대생들은 이날 시위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낌새를 챈 형사들이 학교로 들이닥치는 바람에 신입생환영회와 시위계획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18일 아침 이들은 학교 안으로 몰래 숨어들어가 점심시간 사이렌이 울리면 학생들을 교정에 있는 인촌 동상 앞으로 모이도록 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동태를 알아챈 학교 측은 사이렌을 울리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학생들은“인촌 동상 앞으로”라고 외쳤다. 순식간에 3,000여 명이 교정에 모여들었다. 학생들은 그 자리에서 [고대신보] 박찬세 편집국장이 기초한 선언문을 박수로 채택했다. 오후 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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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을 아시나요? - 4.19 혁명
요약설명 : 고려대생 3천여 명은 스크럼을 짜고 교문을 뛰쳐나와 태평동에 있는 국회의사당을 향해 달렸다. 이들은 대광고와 안암동 로타리에서 지키고 있던 경찰의 완강한 제지를 받고 일시 흩어지는 듯 했으나 곧 다시 삼삼오오 골목을 빠져나와 국회의사당 앞에 속속 집결하였다. 오후 4시 유진오 고대 총장이 나왔다. 그리고 총장과 내무장관 사이에 담판이 벌어져 연행학생을 전원 석방하기로 약속하였다. 연행된 동료학생들이 나오자 학생들은 해산하기로 하고 오후 6시경, 백차와 보도 차량의 선도를 받으며 질서 정연하게 학교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뜻하지 않는 곳에서 반전을 기다리고 있는 법이다. 청계천...
구술 컬렉션 1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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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배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신동호)
일자/장소: 2010년 7월 29일/현대사기록연구원 회의실
요약설명 : 고려대생 시위 현장으로 달려갔다. 돌아갈 때 깡패가 시위대를 습격하는 장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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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우
면담자 : 김보현
일자/장소: 2008. 9. 22./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민청학련에서 고려대생들이 빠진 연유, 1975년 3월 30일, 4월 7~8일 시위의 준비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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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극일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박재홍)
일자/장소: 2010년 6월 28일/현대사기록연구원 회의실
요약설명 : 4‧18 고려대생 피습사건은 대광고 시위의 촉매 역할을 하였다. 4월 18일...
일지사료 9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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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구 치안국장, 종로4가 폭행에 상세한 보고 없다고 발언
일자 : 1960.4.18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정부·여당과 친여세력
요약설명 : 4. 19 조1면 ;『조선일보』1960. 4. 19 조1면이에 기자들이 “이날 고려대생들의 시위는 신입생 환영회장에 경찰관이 수 십 명 끼어 있어 경찰이 학생의 자유를 침범한 것으로 본 학생들이 격분해서 감행하게 된 것”이라는 학생들의 입장을 전하며 경찰의 학원 간섭에 대해 질문하였다. 그러나 조 국장은 답변을 회피하였다. 조 국장은 또한 종로4가 천일백화점 부근에서 18일 밤 발생한 시위학생들과 정체불명 괴청년들의 충돌사건의 진상을 질문하는 기자들에게 “아직 상세한 보고를 받지 않아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는 사건진상은 조사 중이고, 범인들은 아직 단 1명도 체포하지 못했으며, 단서조차 잡지 못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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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무부 고위층 비밀회의
일자 : 1960.4.18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정부·여당과 친여세력
요약설명 : 18일 오후 내무부는 외부의 출입을 일절 금지하고 차관, 치안국장 및 과장들이 모여 오후 7시 까지 비밀회의를 계속하였다. 이날 조인구치안국장은“서울에서 전개 중인 고려대생의 시위 및 부산에서의 시위 등에 비추어 앞으로 있을지 알 수 없는 전국적인 시위의 수습책은 19일 오전 일반에게 알리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조선일보』1960. 4. 19 조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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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시위 방해
일자 : 1960.4.18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경찰에 의해 떨어져나갔다. 트럭을 탄 경찰관들은 시위대의 뒤를 따르면서 행렬을 절단하려고 애썼다. 시위대가 화신백화점(현 종로타워) 앞에 이르자 경찰은 시내버스 3대와 백차 4대, 소방차로 길을 차단하였다. 이 상태에서 다시 수 백 명의 경찰이 적극적인 저지에 나섰는데, 학생들은 발로 채이고 방망이로 맞아가면서 지프차로 강제 연행되었다.『동아일보』1960. 4. 19 조3면이곳에서 57명의 고려대생과 2명의 서울대생, 그리고 1명의 시민이 종로경찰서에 연행되었다.안동일·홍기범 공저, 213쪽학생들은 하는 수 없이 전진을 중단하고 오후 2시부터 화신백화점 건너편 서울학원 앞에 집결하여 일제히 주저앉아 대열을 정돈하였다. 400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