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건
더 보기사진사료 14건
더 보기-
정치깡패 임화수가 가벼운 판결에 살았다는 표정을 짓는 모습
등록번호 : 00734106
날짜 : 1960.08.3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구형공판에서 임화수에게 징역 10년 벌금 9천3백만환, 유지광, 이정재에게 징역 10년,...
-
임화수 피고의 입장을 유리하게 증언하는 증인들의 모습
등록번호 : 00734108
날짜 : 1961.08.16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하며 임화수 피고인의 입장을 유리하게 만들었다.(김승호(O), 최남현(△) 임화수(X))
-
사형을 구형받은 임화수, 유지광의 모습
등록번호 : 00734112
날짜 : 1961.08.21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임화수, 유지광에게 특수범죄처벌에관한 특별법 제7조와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2건
더 보기-
4ㆍ25 대학교수단 시위
요약설명 : 4.25 대학교수단 시위에 직접 관련된 자료는 많지 않다. 3.15의거기념사업회(등록번호 : 700220)와 경향신문사(등록번호 : 732784, 721907)가 생산한 사진과 대학교수단의 시국선언문(등록번호 : 481323) 등이 있다.
-
4ㆍ18 고려대생 시위 및 피습사건
요약설명 : 4.18 시위를 기념하여 후일 행해진 각종 행사와 관련된 사료들이 대부분이다. 예컨대 33주년 4.18자료집인 <자유! 너 영원한 활화산이여-민중정치 실현을 위한 대장정>(등록번호 : 5456), 고려대총학생회의<‘97 4.18민중해방대장정 토론자료집-불복종의 역사를 오늘에 이어>(등록번호 : 15732), <4.18특집신문-민중과 함께 민족고대는 싸우고 있다> (등록번호 : 117487) 등 고려대학교 학생회가 4.18을 맞아 생산한 문건들이 많다.
사료 콘텐츠 3건
더 보기-
4.19혁명 - 4.25교수단시위에서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성명 발표까지
요약설명 : 깡패로 악명이 높았던 임화수와 이정재의 집을 습격해 값비싼 가구와 집기 등을 끌어내 불을 질렀다. 동대문 근처와 종로 일대 등 서울 시내 곳곳에서 밤늦은 시각까지 시위가 계속되었다. 학생들은 26일 새벽 2시까지 광화문 네거리에서 연좌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26일, 다시 시위가 시작되었다. 전국에서 10만여 명이 이승만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른 아침부터 세종로, 종로, 을지로 등 시내 곳곳에 모인 시위군중들은 "선거 다시 하라", "이승만 정권 물러가라"고 외치며 국회의사당과 광화문 네거리로 모여들었다. 서울에서는 차량 통행금지가 선포되었다. 군중의 수가 점점 증가하면서 일부가 중앙청 쪽으로 올라갔다....
-
민족일보와 조용수 - “총에 꺾인 펜”
요약설명 : 처형된 정치깡패 임화수와 이정재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며 맹수처럼 처절히 울부짖었다. 그러나 조용수는 조봉암처럼 담담했다. “민족을 위해 할 일을 다 못하고 가는 게 억울합니다. 민족일보 상무인 정규근 동지에게 돈을 꾸어 신문을 만드는데 썼는데, 갚아주지 못하고 가게 되어 미안하다고 전해 주십시오.” 입회 신부에게 유언을 남기자 얼굴에 검은 두건이 씌워졌다. 곧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무바닥이 떨어졌다. 검시관은 조용수가 보통 사형수와 달리 18분만에야 완전히 숨이 끊어졌음을 알렸다. 사형 집행 소식은 가족들에게 다음날이 되어서야 전보로 통지되었다. 민족일보를 폐간시키고 조용수를 처형당하게 했던...
-
김주열을 아시나요? - 4.19 혁명
요약설명 : 중상자들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그들은 자유당 시절 정치 깡패로 이름을 날렸던 임화수 휘하의 반공청년단 종로구단 특별단부 소속 조직 폭력배들이었다. 이 습격 사건은 그때까지만 해도 신사적인 시위를 생각하였던 학생들의 가슴에 분노의 불길을 당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4월 19일 아침 조간신문을 받아본 학생과 시민들은 경악과 분노에 휩싸였다. “깡패들이 학생들을 습격하다니!” 그렇지 않아도 길고 긴 자유당 정권의 전횡에 혐오와 격분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보라! 갖가지 부정과 사회악이 민족정기의 심판을 받을 때는 왔다! 이제 우리는 대학의 양심으로 일어서노니 총칼로 저지 말라. 우리는 살아있다. 동료의 무참한 살상...
구술 컬렉션 2건
더 보기일지사료 64건
더 보기-
반공예술인단, 구타 사건 연루 임화수 단장 사표 받지 않기로
일자 : 1959.12.1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사회·문화
요약설명 : 1일 오전 반공예술인단은 중앙위원회를 소집하여 구타사건에 연루된 단장 임화수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임화수는 희극배우 김희갑을 구타하여 경찰에 입건되었다. 경찰은 병원에서 피해자의 상황이 전치 1개월이라고 진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치 2주의 부상으로 단정하였다. 또한 폭행과 부상을 입은 경위에 대해서도 피해자의 진술과 다르게 조서를 작성하였다. 경찰은 이에 대해 처음부터 임화수는 김희갑의 갈비뼈를 부러뜨릴 의사가 없었다고 말하며 사건을 축소하였다.『동아일보』1959. 12. 1 석3면
-
영화인들, 폭력사건에 연루된 반공예술인단 단장 임화수에 관대한 처분 진정
일자 : 1959.12.3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사회·문화
요약설명 : 구타 사건의 가해자인 반공예술인단임화수 단장을 영장 집행 후 하루 만에 이례적으로 검찰에 송치하기로 결정하였으나 임화수가 법원에 구속적부심사를 신청하여 송청이 연기되었다. 한편 김승호, 최무룡, 김진규, 김칠성, 허장강, 황정순, 안나영 등 7명의 영화예술인은 이날 오전 11시 서울지검 검사장, 대법원장, 서울지법법원장을 방문하고 임화수에 대해 관대히 처분해 달라고 진정하였다. 영화인들은 “임화수가 성격이 과격하지만 뒤끝이 없고 영화인들 간에 반목을 갖게 한 적이 없다”고 하며, 이번 일을 계기로 영화인들 자체도 자숙하고 스스로 수습할 작정이니 관대히 처분해 달라고 하였다.『동아일보』1959. 12. 3 조3면,...
-
반공예술인단 단장 임화수, 구타사건 8일 만에 구속 송청
일자 : 1959.12.5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사회·문화
요약설명 : 5일 오전 서울 중부경찰서는 희극배우 김희갑을 구타한 반공예술인단 단장 임화수를 사건 발생 8일 만에 상해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청하였다. 이날 심문에서 임화수는 김희갑을 구타한 사실을 시인하였다.『동아일보』1959. 12. 5 석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