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32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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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와 한국군부①-한국군의 형성과 성격(1945~48)
등록번호 : 00533213
날짜 : 1991.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황원진
요약설명 : * 목차 1. 문제의 제기 2. 한국군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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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육·해·공·해병이 '쿠데타'
등록번호 : 00176582
날짜 : 1961.05.17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5.16군사쿠데타와 관련한 기사 -서울 등 주요도시 점령 -삼부완전장악에 성공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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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의 쿠데타 관련 글과 신문기사]
등록번호 : 00517502
날짜 : 1980.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이재현
요약설명 : 쿠데타와 관련하여 한국에 민주화를 위해 케네디 상원의원이 함께 싸워주기를...
사진사료 2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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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쿠데타 직후 회의를 주관하는 계엄군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의 모습
등록번호 : 00732921
날짜 : 1961.00.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5.16 쿠데타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으며 쿠데타 성공후 계엄군사령관, 국가재건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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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군사쿠데타를 주도한 박정희
등록번호 : 00709671
날짜 : 1963.07.15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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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의 시작이 된 5.16 군사쿠데타 당시 박정희
등록번호 : 00709673
날짜 : 1961.00.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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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요약설명 : ‘김대중’ 조건으로 총 2509 건이 검색되었는데 그중 ‘김대중 내란음모’ 조건으로 총 32 건, ‘김대중 사건’ 관련 187건이 검색되었다. 김대중 씨의 상고이유서(등록번호: 018113)와 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의 <김대중 등 내란음모사건 항소심 공판기록>(등록번호: 109927)은 사건에 대한 전두환 신군부의 입장과 피해자 김대중 씨의 입장을 살펴볼 수 있는 주요사료이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된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 장로가 작성한 호소문(등록번호: 115063)과 송건호씨의 아들 송준용의 탄원서(등록번호: 042280) 외에 전두환 정권의 입장을 대변하는 내외문제연구소 발행의 단행본 <누구를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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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
요약설명 : 480510)으로, 당시 학생운동의 사상적 수준을 보여준다. <민중 민족 민주선언>은 “소위 유신이란 해괴한 쿠데타 국가 비상사태와 1.8 조치 등으로 이어진 폭압체제”라고 유신체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남북대화는 영구집권을 위한 장식물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7.4공동선언의 허구성을 폭로하면서, 민생, 민권, 민중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료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민중 민족 민주선언>은 원본이 아니라 독일에서 발간된 신문에 결의문이 생략된 채 부분 개제된 것이다. 1973년 4월 3일 이화여자대학교 명의의 <선언문>(등록번호 : 480506)은 “오늘 오후 2시, 우리 이화인은 서울시내 전 대학생...
사료 콘텐츠 3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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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 또 다른 이름 쿠데타
요약설명 : “은인자중하던 군부 드디어”, 쿠데타와 함께한 계엄령 1961년 5월 16일 새벽 5시, “친애하는 애국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금조미명(今朝未明)을 기해서... 대한민국 만세! 궐기군 만세!” 라는 군부독재의 서막을 알리는 내용이 다소 떨리는 듯한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라디오를 통해 전국에 퍼져나갔다. 2군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 주도의 장교 250여 명과 사병 3,500여 명 정도에 불과한 쿠데타 세력이 한강을 건너 수도 서울의 주요기관들을 점령하면서 국가권력을 장악한 것이다. 이들은 새벽 5시 라디오방송을 통해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여 이 위원회가 입법·사법·행정의 3권을 통합·장악한다고 선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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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님, 총무님, 우리들의 총무님_ 김한림
요약설명 : 아내 공덕귀 여사와 가까운 사이였다. 윤보선은 박정희가 주도한 5·16군사 쿠데타로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 정권이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맺으려 하자 한림은 윤보선을 설득해 한일회담반대투쟁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한림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당시 한일회담반대투쟁의 주도 인물이었던 장준하와 백기완 정도만 한림에 대해 아는 정도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림을 교사려니 생각했다. 한림은 앞에 나서지 않은 채 사람이 필요하면 사람을 구해오고 돈이 필요하면 돈을 구해오는, 말 그대로 민주화운동에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우리나라가 반드시 민주화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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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 여기가 어딘 줄 알아?"_ 무법자의 폭력이 춤추던 보안사 서빙고 분실
요약설명 : 있었던 것이다. 5·16군사쿠데타로 군인들이 이제 공식적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나자 특무대는 다시 방첩부대로 명칭을 변경하였다가 다시 육군보안사령부를 거쳐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로 거듭 상승하게 되었다. 그리고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군 내부를 감시하고, 나아가 사회 전반을 감시하는 도구로 중앙정보부와 함께 막강한 권력을 부여했다. 지역 보안부대장인 대령이 별 세 개인 군단장에 맞먹는 세력을 가지도록 한 것이다. 그곳을 보금자리로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1980년대 전두환 신군부였다. 전두환 신군부는 그야말로 보안사가 만들어낸 보안사 권력이었다. 차기 정권을 기획하고, 정당을 만들고, 헌법을 만들고,...
구술 컬렉션 3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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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각
면담자 : 민족문제연구소(김민철)
일자/장소: 2010년 10월 28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회의실
요약설명 : 세력(5‧16 쿠데타 세력)에 의한 쿠데타 모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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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
면담자 : 민족문제연구소(이준식, 조세열, 강동민)
일자/장소: 2010년 7월 20일, 9월 27일/구술자의 사무실
요약설명 : 쿠데타 가능성 - 밀리터리즘 당시는 워낙에 군의 비중이 높다보니 일부 쿠데타 논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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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
면담자 : 한승동
일자/장소: 2021.10.25. / 서울시 종로구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요약설명 : 쿠데타, 모친 별세, 군 복무 시기, 카투사, 미8군, 한미관계, 복학, KBS 외신부 입사,...
일지사료 9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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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독재민주수호연맹, 입후보 등록 방해 규탄 성명서 발표
일자 : 1960.2.14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야당과 재야단체
요약설명 : 입후보 등록이 좌절된 반독재민주수호연맹은 14일 오전, 그 동안의 입후보 등록 방해 사건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성명서는 “집권당의 사주로 괴한들이 정·부통령후보자 등록을 방해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쿠데타적 횡포를 노정하는 것”이라 하고, 이번 선거전이 “공무원에 대한 선거운동 강요로 공포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고 지적하였다.『조선일보』1960. 2. 15 조1면 ;『동아일보』1960. 2. 15 조1면 한편 반독재민주수호연맹의 대통령후보 공천자인 장택상의 지역구인 경북 칠곡군에서는 5·2선거 당시 장택상의 선거 참모 역할을 했던 40명이 갑자기 장택상과의 절연을 선언하였다. 이들은 장택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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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권수호국민총연맹·공명선거추진전국위원회, 정부의 선거방법 지령은 ‘반민주적 쿠데타’라고 비...
일자 : 1960.3.4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야당과 재야단체
요약설명 : “만일 그러한 방법으로 선거가 강행된다면 그것은 선거가 아니라 반민주적 쿠데타이며 정부와 여당이 야당의 가공적인 조작이라고 반박하는 것은 비양심적인 자기기만”이라고 하며, 공명정대한 선거를 위해 전 국민의 총궐기를 호소하였다.『동아일보』1960. 3. 5 조1면 또한 공명선거추진전국위원회도 이날 오후 담화를 발표하고 경찰의 선거대책 요강은 흉악무도하고 망국적인 폭거라고 지적하였다. 공명선거추진위는 “이번 공개된 경찰 선거대책의 음모는 제국주의 경찰도 무색할 극악의 절정”이라고 단정하고,“자유당의 해명 그대로 이것이 만약 민주당에 의한 허구적 조작이라면 지체없이 의법처리 하여그 흑백을 가려야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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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 등 5개 도시에 비상계엄령 선포
일자 : 1960.4.19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정부·여당과 친여세력
요약설명 : 갖는 계엄사령관이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을 우려해서 자신과 친분이 있는 제1야전군 사령관 유재흥 장군에게 2개 사단을 동원하여 중랑천에 주둔해 송요찬을 견제하게끔 하였다고 한다. 15사단은 이후 4개월 동안 서울에 주둔해 있었는데, 김정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이렇게 미리 손을 써둔 덕분이라고 자찬하였다(김정렬, 240-245쪽).오후 2시 50분에는비상계엄령으로 변경하였다. 계엄사령관에는 육군참모총장 송요찬 중장(42)이 임명되었다. 부사령관에는 장도영 중장, 부산지구 계엄사무소장에는 박정희 소장, 대구지구는 윤춘근 소장, 광주 지구는 박현수 소장, 대전지구는 임부택 소장이각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