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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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교련강화를 반대하는가?
등록번호 : 00961391
날짜 : 197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연세대학교
요약설명 : 시달된 교련교육의 실시 요강은 대학의 본질을 무시한 처사임이 확실하다고 하며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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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련강화 반대에 대한 개황
등록번호 : 00983432
날짜 : 1971.04.2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연세대학교
요약설명 : 3월 2일부터 4월 20일까지 진행된 교련강화 반대 활동의 개황이 실려있는 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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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동문 제15호 1989.1.31
등록번호 : 00920481
날짜 : 1989.01.31
구분 : 문서류 > 정간물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1989년 1월 31일 연세민주동문회에서 발간한 간행물로 동문회가 새해모임을 갖기로...
사진사료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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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련반대 시위로 인해 휴강공고가 붙은 사범대학교 교문 앞을 지기키고 있는 경찰들
등록번호 : 00712640
날짜 : 1971.04.1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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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련반대 시위로 전과목 휴강 공고와 도서관휴관을 알리는 공고문이 서있는 가운데 그 주변을 ...
등록번호 : 00712642
날짜 : 1971.04.13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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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수령이 발동되자 "별령이 있을 때까지 학생회, 대의원회 및 그 산하단체의 활동과 간행물 ...
등록번호 : 00712535
날짜 : 1971.10.15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교련반대는 반정부로 이어졌고, 부정선거 규탄은 군사교육거부로 상징화 했다....
사료 콘텐츠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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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이념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전사 시인 김남주
요약설명 : 1964년 광주제일고등학교에 합격한 그는 입시 위주의 교육에 반대하여 이듬해 자퇴를 결행하며 자신의 소신을 행동으로 옮겼다. 1969년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전남대학교 문리대 영문과에 입학한 그는 1970년 11월 13일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피복공장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라고 외치며 온몸에 휘발유를 붓고 분신한 사건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이 사건은 노동자를 착취하여 소수의 부유층을 살찌게 했던 박정희 정권의 추악함에 맞선 거대한 항거의 씨앗이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지식인과 노동자가 연대하여 투쟁해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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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
요약설명 : 거쳐 1971년 늦은 나이에 전남대학교 축산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그해 12월 30일 교련반대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무기정학을 받았다. 이때부터 그에게 끝없는 고난이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이제 공부는 끝이다. 나는 앞으로 목숨 걸고 저놈들과 싸우겠다!”라고 선언한 그는 전남대 학생 동아리인 민족사연구회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후배 정상용 등과 더불어 사회과학 공부와 학생운동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1974년 4월 들어 윤한봉은 민청학련사건으로 유신헌법반대시위를 벌이다 체포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죄, 내란예비음모죄, 긴급조치 1호, 4호 위반죄 등으로 1심에서 무기징역, 2심에서 1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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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위의 행정명령, 위수령
요약설명 : 것이 첫 사례이다. 이후 1971년 교련반대시위가 고조되고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자 10월 15일 서울시 일원에 위수령이 발동되었고 서울 시내 대학에 위수군이 투입되었다. 세 번째가 1979년 10월 20일 마산 일원에 내려진 것으로 부마항쟁 당시 위수령이 발동되었다. 위수령은 1965년 최초 발동 시부터 위헌 논란이 제기되었다. “법조계에서는 위수령이 선포된다고 할지라도 군은 군에 속하는 건조물이나 기타 시설물 유지에 필요한 소극적인 치안 권한밖에 행사 할 수 없기 때문에 민간의 치안 유지 특히 시위진압을 위해 학원에 난입하는 등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곧 헌정질서 파괴라고 비난하였다.” (조선일보 1965년 8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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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교련 임영신 회장, “교내 의사표시 보장”하라는 성명 발표
일자 : 1969.7.11
분류 : 분류없음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대한교련임영신(任永信)회장은 11일 최근 3선개헌반대 학생데모로 빚어진 조기방학과 경찰·학생간의 충돌 등의 사태에 대해 성명을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당국과 교직자와 학생이 모두 합심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고 오는 2학기엔 명랑한 학원에서 교직자와 학생들이 수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달라”. 임 회장은 이 성명에서 “당국과 교직자들은 학생들이 학칙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롭게 의사표시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동시에 그들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며 학생들은 그들의 주장을 성토나 건의 등 민주적인 방법으로 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회장은 “앞으로 학생과 정부 사이에 대화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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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학생들, 합동교련 검열에서 교련반대 시위
일자 : 1970.10.12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12일 부산대합동교련 검열에서 교련을 반대하는 대규모 학생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12시 20분경 비가 오는 가운데 교련검열을 받던 2천여 명의 부산대 학생들은 장시간의 열병, 분열 등 지나치게 강압적인 교련검열에, 투석으로 사열대를 파괴하는 등 반발했다. 학생들은 “우리는 학생이지 군인이 아니다”, “지성을 모독하지 말라”, “내무국방, 문교장관 이름으로 정중히 사과하라”고 외치며 총장의 해명을 요구했으나, 이는 학생처장에 의해 거부되었다. 학생들은 비가 오는 가운데 성토를 계속하다가 총장실로 몰려가 총장과 면담하였으나 총장은 학생들의 요구를 일축하였다. 이에 학생들은 “보다 근본적으로 정치권력을 쥔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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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학생 500여 명 성토대회
일자 : 1970.12.2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12시 30분 무렵 연세대학교 학생 500여 명은 교내 대강당 앞에 모여 교련강화반대 및 언론탄압 반대성토대회를 가졌다. 이날 대학생들은 당국의 부당한 간섭으로 지난달 30일 제 59호의 『연세춘추』에 실린 일부 글들이 삭제된 후 다시 배부되는 상황을 중단하고 학보 발행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였다.『경향신문』 1970.12.2. 7면; 『동아일보』 1970.12.2. 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