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12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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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군속 노무자 근로기준법 수호위원회 협동회 단합대회
등록번호 : 00552841
날짜 : 1976.04.2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YMCA전국연맹
요약설명 : 순서,협동회 임원진 첨부-단합대회 초대장(주한미군속노무자근로기준법수호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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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서-(1)주한미군속 한국 노무자들에 대한 근로기준법에 준한 기본권 보장에 대한 건, (...
등록번호 : 00014928
날짜 : 1976.04.2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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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이하 중소영세사업장 근로기준법 산재보상보험법 전면적용을 위한 시행령개정 투쟁 공동대책위...
등록번호 : 00025878
날짜 : 1996.02.23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사진사료 1건
더 보기박물사료 1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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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8시간 노동, 화이팅 - 해태제과 8시간 노동제 쟁취 투쟁
요약설명 : 그리고 1980년 4월 11일 언론은 일제히 ‘12시간 노동에 시달렸던 제과업체 근로자가 하루 8시간 근무를 하게 됐다’는 내용의 기사를 뿌렸다. 이렇게 해태제과 여성노동자들의 8시간 노동제 쟁취 투쟁은 역사에 기록되며 한국의 노동운동을 장식하게 되었다. 또한 이들의 투쟁의 결과는 해태제과만이 아니라 전 식품업계에도 확대 실시되어 수많은 노동자들이 8시간노동제의 혜택을 보게 되었다. 해태제과 여성노동자들은 이후로도 노조 민주화 문제와 폭력 사원 처벌 문제 등 노동자 처우 개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단 없는 투쟁을 이어나갔다. 1953년에 시작된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는 김대중 정부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 확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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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요약설명 : '스무살, 벗의 일기장' 청년 전태일은 노동운동의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다. 전태일이 죽음을 선택할 당시 그의 나이는 22살이었다. 그가 남긴 일기장 속에는 그가 꾸었던 꿈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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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이념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전사 시인 김남주
요약설명 :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피복공장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라고 외치며 온몸에 휘발유를 붓고 분신한 사건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이 사건은 노동자를 착취하여 소수의 부유층을 살찌게 했던 박정희 정권의 추악함에 맞선 거대한 항거의 씨앗이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지식인과 노동자가 연대하여 투쟁해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된 김남주는 한일회담 반대와 교련반대운동, 3선개헌저지투쟁, 노동삼권 보장운동 등에 앞장섰다. 1972년에 김남주는 친구 이강과 더불어 유신헌법에 맞서 전국 최초의 지하신문 《함성》지를 제작하여 반독재 민주화의 선봉...
구술 컬렉션 3건
더 보기일지사료 10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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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월암광업소 종업원들, 노동조합 임시총회 개최
일자 : 1960.5.9
분류 : 노동운동
요약설명 : 9일 오후 3시경, 삼척월암광업소 종업원 300여명이 광장에 모여 노동조합 임시총회를 개최하였다. 총회에서 종업원들은 사장 김진광이 근로기준법에 보장되어 있는 근로자의 기본권익을 착취했다고 성토하고, 노조임원들을 어용노조라고 규탄하였다.『동아일보』 1960. 5. 11 석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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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구 피복공노동조합원들, 단체협약 체결 요구하며 총파업 돌입
일자 : 1960.5.21
분류 : 노동운동
요약설명 : 21일 정오, 부산지구피복공노동조합원들이 시내 원흥사를 비롯한 38개 피복상사에서 총파업을 단행하였다. 노조 측은 회사에 단체협약체결을 여러 차례 요구하였으나 회사 측이 근로기준법을 무시하고 계속 거부하고 있다며 비판하였다.『동아일보』 1960. 5. 23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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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동양제과공업주식회사 노동조합, 사장 등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소
일자 : 1960.10.12
분류 : 노동운동
요약설명 : 12일,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동양제과공업주식회사 노동조합장 진태하가 사장 하홍길 등 10여명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서울지검에 고발하였다. 진태하는 회사가 근로기준법을 위반해 노동자를 착취하고 인권을 유린했으며 노조운동을 억압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조선일보』 1960. 10. 14 조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