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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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安企部 발표 朴씨 도피생활
등록번호 : 00481107
날짜 : 1991.04.0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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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참자의 회고[광주사태관련]
등록번호 : 00878844
날짜 : 1981.06.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5.18 기념재단
요약설명 : 1년여 도피생활을 했던 사람이 연행되기 직전 자신의 겪은 것에 대해 총정리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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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각하께 드리는 의견서
등록번호 : 00882293
날짜 : 1983.02.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석방, 도피생활을 하다가 1974년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1980년 형 집행정지로...
사진사료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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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영혼, 조영래 변호사
요약설명 :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1971년 봄, 제13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조영래는 사법연수원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에 휘말렸다. 그는 장기표와 더불어 이 사건으로 1년 6개월간 감옥 생활을 해야 했다.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 그에게 장기표가 두툼한 노트를 건네주었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에게서 받은 전태일이 남긴 일기였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理想)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전태일이 1970년 8월 9일에 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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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사와 민간인 사찰
요약설명 : 직후 국방장관과 보안사령관이 경질되었고, ‘공포의 고문실’로 악명 높았던 서빙고동 보안사 분실(서빙고 대공분실)은 폐쇄되었다. 보안사는 또 “뼈를 깎는 심정으로 새로 태어나겠다”며 12월 26일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로 명칭을 바꿨다. 그러나 군의 민간인 사찰은 기무사에 의해 계속되었다. 현역군인의 위치에서 양심선언을 했던 윤석양은 2년 가까이 도피생활을 했으나, 1992년 9월 23일에 체포되어 육군고등군법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사찰대상자였던 노무현, 한승헌, 김승훈, 문동환 등 각계의 주요인사 148명은 1991년 6월 27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고, 1998년 7월 24일 대법원은 보안사가 헌법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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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 광주 해방구에 핀 사랑의 꽃
요약설명 : 도피생활에 들어가야 했다. 남인수의 ‘고향의 그림자’를 멋들어지게 부르던 김남주가 우리에게 다시 나타난 것은, 1979년 10ㆍ26 직전 몇몇 동지들과 함께 민주화를 위한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모 건설회사 사장집 담을 넘었다가 미수에 그친 뒤 체포된 모습으로였다. 돌이켜보면 서슬 푸른 유신체제 하에서 내로라하는 운동권 인사들마저 숨을 죽이고 있을 때, 개벽 세상을 위해서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준 일이었다. 김남주의 열망이 이루어질 날은 그리 멀지 않았다. 1979년 가을 부산 마산 일대에서 뜻있는 청년학도와 노동자 시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유신독재의 타도를 위한 봉기의불꽃을 피워올린 것은...
구술 컬렉션 3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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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년
면담자 : 오제연
일자/장소: 2012.9.7./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생활, 광주에서의 4.19 경험, 대입 전 김지하 씨와의 통일운동 경험, 5.16쿠데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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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규
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일자/장소: 2023.7.5./대전 시청자미디어센터
요약설명 : 관여해 도피 생활을 했다. 청람회는 1981년에 조직 사건화되었다. 이완규도 구속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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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득
면담자 : 한승동
일자/장소: 2021.10.15. / 서울시 종로구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요약설명 : – 보도지침, 도피생활, 새 신문 창간, 한겨레신문 창간의 어려움, 창간 준비, 내부 ...
일지사료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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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의 정치 참여 문제 논란
일자 : 1960.3.8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사회·문화
요약설명 : 이루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상 약탈한 듯이 보이는 우리나라 예술인들의 생활은 기실 예능계의 후진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여러모로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한때 소수인에 의한 분노의 압력도 문제된 일이 있는 만큼 어떠한 이유로 전 예술인이 한결같이 그처럼 정치적인 의견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러한 일부 예술인의 망발이 전기한 바와 같은 추태를 자아냄으로서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동 단체가 지지한다는 정당 측에서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일견하여 이러한 대회가 전○문제되었던 소위 ○찰선거대책기본요령을 상기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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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극장문화단체협의회, 이승만·이기붕 지지 담화 발표
일자 : 1960.3.12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사회·문화
요약설명 : 없지 않음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는 한국 국토 내의 이방인이 아니다. 예술인에게도 생활이 있고 조국이 있다. 그 조국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분연히 궐기해서 일반대중에 앞서 이에 몸을 던지며 일반대중에게 예지와 힘을 주었다는 사실을 현대사에서 얼마든지 보고도 남음이 있지 않은가. 이번 3·15선거에 있어서 우리의 행동은 어느 정당과도 관련없는 순전한 자발적 총의적 애국운동이오 구국운동임을 명백히 하고 선거일을 목전에 둔 이 시간에 몇 가지 생각한 바를 국민 여러분께 호소하고자 한다. •『한국일보』사설과 조재천씨는 사회 여론을 그릇 ‘리이드’하고 있다. 지난 3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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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 데모로 수배 중이던 현승일, 기자회견 후 자진출두
일자 : 1964.5.30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11일간의 도피생활을 청산했다. 그는 “정부가 사태를 수습하려 들지는 않고 마치 국사범인 양 사태를 부당하게 취급하기 때문에 은신한 것이며, 이 이상 매카시적 수법으로 취급한다면 정부를 상대로 무고죄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김중태가 참변을 당했다고 믿지 않는다”면서, 현상 벽보 등을 거리에 붙여 데모 학생들을 국사범인 양 꾸며 탄압의 구실을 삼으려는 것은 정부가 아직도 지각을 못 차린 증거라고 통박했다. 현승일은 “민족주의비교연구회는 학술연구단체로서 한국적 민족주의 이념을 과학적으로 정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한때는 공화당 ‘사쿠라’라는 오해도 받았었다. 혁신계 자금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