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18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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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당 농성사건의 무죄를 주장한다-공동성명서
등록번호 : 00901608
날짜 : 1985.04.03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이대근
요약설명 : 민정당 농성사건의 완전무결판결과 연세대 총학생회장 송영길, 서울대 총학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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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개방 앞장서는 민정당을 몰아내자
등록번호 : 00884749
날짜 : 1988.04.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민정당을 몰아내자 애국시민 단결하여 민정당을 몰아내자 위장전입 금품살포 부정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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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당 연수원 점거사건 일주년을 맞으며
등록번호 : 00051844
날짜 : 1986.11.17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춘옥
요약설명 :
사진사료 23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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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당의 산실이었던 보안사 성북동 안가
등록번호 : 00709884
날짜 : 1991.04.0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이곳에서 민정당 창당주역들은 커튼을 내린채 정국구상을 짜나갔다. (경향신문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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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당사 농성사건으로 구속 후 집행유예로 풀려 나와 친구들에 의해 헹가래 쳐지는 연세대 학...
등록번호 : 00713849
날짜 : 1985.03.26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민정당사 농성사건으로 구속기소됐던 연세대 학생이 집행유예로 26일 밤 풀려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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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당사를 점거, 농성 중인 학생들을 설득하려는 의원대표들
등록번호 : 00713853
날짜 : 1984.11.14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민정당사를 점거, 농성중인 학생들을 설득키 위한 의원대표들이 농성장으로 가기위해...
영상사료 1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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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점거농성사건
요약설명 : 즉각 처단, 민중이 주체되는 통일논의 보장, 매판독점 자본 해체, 무분별한 외채도입 중지, 새마을운동 중앙본부, 일해산업 등 전두환정권 친정세력의 권력형 부조리 공개 및 책임자 처단, 언론기본법과 보도지침 등 언론에 대한 통제 철폐와 그 온상인 KBS 해체 등 사회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내용을 담았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등의 지지성명 < 군사독재정권의 퇴진과 민주헌법제정은 온 국민의 뜻이다-민정당 중앙정치 연수원 점거농성 시 밝힌 학생들의 주장을 적극 지지하면서>(등록번호 : 089911)와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의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 점거 학생들의 주장은 정당하다. 전원 구속처리는 사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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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 결성
요약설명 : 검색되었다. 서울지역민주노동조합의 성명서 <맥스테크노동조합의 투쟁을 지지하며, 노동부와 민정당에 대해 맥스테크사 위장폐업사태의 해결을 위해 노력에 나설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등록번호 : 536641), 맥스테크 노동조합 명의의 <성명서(초안)-멕스테크사의 위장폐업을 규탄한다> (등록번호 : 326448),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준비위원회의 <서울노동조합소식 제1호> (등록번호 : 325060),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의 <서노협신문-창간호> (등록번호 : 83983)와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 창립총회> (등록번호 : 340189), 서울지역민중운동연합준비위원회의 성명서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의...
사료 콘텐츠 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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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추협_ 1987년 직선제개헌쟁취의 불씨를 당기다
요약설명 : 된 민정당(지역구 87석, 전국구 61석)에 이어 총 67석(지역구 50석, 전국구 17석)을 얻어 제1야당으로 떠올랐다. 엄혹했던 5공 정권에 균열을 낸 김영삼의 단식투쟁은 김대중의 공조로 이어졌고,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연대하여 민추협을 결성하는 촉매 역할을 했다. 민추협이 표방했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의 요구는 신당 창당으로 이어졌으며, 1985년 2.12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신민당을 통해 전 국민적인 의제로 확산되었다. 일관되게 추진된 이 어젠다는 1987년 6.10민주항쟁의 용광로를 거친 뒤 ‘4.13호헌조치’의 벽을 깨부수고 ‘6.29선언’을 통해 대통령직선제개헌의 쟁취이라는 열매를 맺기에 이르렀다. 글 박선욱(시인, 평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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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성당과 월담 스님
요약설명 : 3.1운동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1987년 6월 10일은 마침 집권당인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를 정하는 날이었다. 12시 정각. 민정당의 전당대회가 열리는 잠실 운동장에서는 꽃바구니가 터지고 1만여 명의 당원들이 내지르는 만세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치어리더들이 춤을 추고, 유명한 가수들이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의 애창곡 ‘베사메무초’를 부르고 있었다. 완전 축제 분위기였다. 전두환은 이미 다음 선거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허수아비들을 내세워서 하는, 이른바 체육관 선거를 그대로 하겠다는 4.13호헌선언을 해놓고 있던 상태였다. 여기서 후보로 지명되면 대통령은 그대로 따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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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및 5.18사건 관련자 사법 처리 과정
요약설명 : 국정조사결의안> 국회제출, 여당인 민정당 반대로 무산 ○ 1985년 6월 7일 윤성민 국방부장관 국회국방위에서 <광주사태 전모> 발표, 사망자 1백91명(민간인 1백64명, 군인 23명, 경찰4명) ○ 1987년 12월 30일 민정당 가칭 <광주사태희생자 및 부상자에 대한 특별지원법> 제정 방침 발표 ○ 1988년 1월 11일~2월 23일 각계원로들로 민주화합추진위원회(민화위)를 구성, 활동 민화위는 광주사태 치유, 사면 단행, 지역감정해소, 인권신장, 부정부패 척결, 계층간의 갈등 해소 등의 내용 건의서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에게...
구술 컬렉션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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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
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2.10.4./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장 활동 배경, 등록금 면제받으려고 연세대 지원, 정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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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희
면담자 : 정지성, 김성진
일자/장소: 2017.8.30./청주 구술자 사무실
요약설명 : 85년 민정당 정종택 의원실 점거 시위 중 연행, 86년 민주연합청년동지회결성, 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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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남
면담자 : 정지성, 김성진
일자/장소: 2017.9.13./충북교육청 감사관실
요약설명 : 6.25에 희생된 군인경찰 가족으로 성장하다, 기독교 신앙활동과 누나들의 영향, 대학...
일지사료 10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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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당, 한일어업협정 정부태도 저자세 비난
일자 : 1963.6.20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대해 경고하였다. 이충환민정당 대변인은 “혁명정부는 김종필-오히라 회담에서 합의된 청구권 금액과 유상원조 중에 포함된 1억불의 민간차관을 국교정상화 전이라도 받아들일 용의가 있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인 데 대해서는 민정당으로서 정면으로 반대한다”고 말하였다. 그는 반대하는 이유로서 “한일국교가 국민적 감정과 합치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이를 위해서는 다소 시일이 늦어지더라도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점에서 한일회담에 임할 혁명당국의 태도가 너무 저자세이고 졸속주의에 빠지지 않기를 거듭 강조한다”고 말하였다.『동아일보』 1963.6.20 석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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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당, 한일회담 관련 정부태도 “용인할 수 없는 일”
일자 : 1963.7.8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상오, 민정당은 한일문제에 관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작금 한일양국 대표 간에 활발한 접촉을 하고 있는데, 특히 무상 베이스의 차관 1억 불 중 공여가 연(延)지불 방식으로 이미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는 배 주일대사의 발언과 전관수역을 40해리로 하자는 최규하 대사의 제안보도는 우리 국민으로서 도저히 용인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충환 대변인은 외교교섭을 자행하고 있는 정부 측의 태도에 대해 의아심을 금할 수 없으므로 민정당은 최고위원 이인(李仁), 전당대회 의장 나용균, 선전부장 이충환 씨를 대표로 파견, 김 내각수반을 방문하고 정부 측의 진의를 규명하기로 말하였다. 이 대변인은 최규하 대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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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내각 수반, 재야 정치지도자 질의에 답변 “한일경제회담 청구권과 무관”
일자 : 1963.7.16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16일, 김현철 내각수반은 민정당 대표 최고위원 김병로가 제출한 한일교섭문제에 관한 공개질의에 대한 서면답변을 통하여, “현재 청구권 문제에 관련되는 상업베이스 차관이 도입될 수 없는 것이며, 지난 7월 1일부터 동경에서 열리고 있는 한일경제실무자회의가 토의하고 있는 것은 연지불방식에 의한 무역거래를 상의하기 위한 것으로 청구권 문제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수반은 배의환 대사가 상업베이스차관이 이미 있었다고 발언한 일부 보도는 “그런 발언을 할 리가 만무하다”고 부정하였다.『동아일보』 1963.7.16 석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