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52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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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문화운동협의회창립총회보고서
등록번호 : 00184227
날짜 : 1984.04.1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원...
요약설명 : 문화의 민주화와 민중문화의 형성을 목표로 한 민중문화운동협의회의 창립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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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문화운동협의회 창립총회보고서
등록번호 : 00529744
날짜 : 1984.04.3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장준영
요약설명 : 이땅에 문화의 민주화를 이룩함으로서 참다운 민중문화의 형성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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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문화운동의 터전을 확보하자!-민중문화회관 건립추진위원회의 발족을 준비하며
등록번호 : 00874058
날짜 : 1986.04.1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조성숙
요약설명 : 민주화 운동과 민중문화에 대해 이를 회복하기 위한 민문협의 민중문화회관 건립에 ...
사진사료 14건
더 보기영상사료 34건
더 보기박물사료 2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1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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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참여적' 예술가의 기억
요약설명 : 미술사 내 한 줄기를 형성했다. 민중미술가들은 미술과 미술가가 공동체와 사회 변화의 도구로 사용되기를 추구했던 ‘사회참여적 예술가’들이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은 2022년 1980년대 문화예술운동의 다양한 갈래 중 민중미술 부분, 특히 1982년 결성된 민중미술가 동인 ‘두렁’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예술적 실천 행위’인 ‘현장 지향적 민중미술’ 활동 기억을 채록했다. 이들은 주로 노동조합과 연계 속에 문화예술운동을 펼쳤고, 대다수는 두렁으로 묶이기 전부터 이미 노동운동, 농촌운동, 학생운동 등에서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문화예술운동 구술 사료는 현장 미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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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이념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전사 시인 김남주
요약설명 : 운동가 정광훈, 윤기현과 더불어 훗날 한국기독교농민회의 모체가 되는 해남농민회를 결성했다. 광주에 올라와 소설가 황석영, 최권행, 김상윤 등과 더불어 민중문화연구소를 개설해 사회운동을 전개해 나가던 김남주는 또다시 수배되어 1978년 경찰의 검거망을 따돌리고 상경했다. 서울에 온 김남주는 ‘민주회복구속자협의회’를 통해 알게 된 박석률의 권유로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준비위원회’에 가입했다. 유신정권 하에서의 변혁운동은 철저히 비밀 지하조직이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남민전 가입을 할 때 망설이지 않았다. 김남주는 이 조직에서 기관지 《민중의 소리》를 만들고 배포하는 일을 주로 했는데, 숙명여대 국문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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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
요약설명 : 있도록 가르치는 곳입니다.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보급하고 동포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을 하려고 하오니 도와주십시오.” 이듬해인 1983년 2월 5일, 민족학교 설립식이 열렸다. 치과의사 최진환을 이사장으로 내세우고 전진호는 교장에 앉힌 뒤 윤한봉은 학교의 청소와 심부름꾼 노릇을 하겠다며 소사(小使)를 자청했다. 5월 하순, 로스앤젤레스 프레스클럽에서 특별 강연회가 열렸다. 이날 수백 명의 한인 동포들 앞에서 연설을 한 윤한봉은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고 말았다. “저는 5.18 광주민중항쟁의 수배자로서 2년 전 마산 앞바다에서 화물선을 타고 밀항한 윤한봉입니다. 동포 여러분! 전두환 정권을 타도하는...
구술 컬렉션 1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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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준
면담자 : 김종길, 양정애
일자/장소: 2022.10.22./오랜미래신화미술관
요약설명 : 애오개 문화마당 운영위, 1985년 민중문화운동협의회(민문협)로 이어서 독재정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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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엽
면담자 : 김종길
일자/장소: 2023.6.25./경기도 안성
요약설명 : 여성노동운동과 민중미술운동을 결합한 활동을 펼친 사례를 다수 구술. 대표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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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담
면담자 : 김종길
일자/장소: 2023.09.17.(차) 2023.10.30.(2차)/홍성담 작업실
요약설명 : 후, 문화운동가이자 소설가인 황석영을 만나 ‘민중문화연구소’ 활동. 1979년 여름,...
일지사료 1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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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교원조합 결성준비위원회, “전국교원동지의 분기를 촉구한다”
일자 : 1960.5.4
분류 : 노동운동
요약설명 : 국민주권을 짓밟고 경제를 농단하고 문화의 정상적 발전을 억압하고 법질서를 유린하여 국가민족을 독재정당의 제물로 희생시키고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와 평화적 시위의 권리까지 박탈하여 정상적 노동운동을 억압하고 일당전제 하에 종거(從居)시켜 전 민족을 질식 상태에 몰아넣고 나아가서는 정치에 가장 엄정한 중립을 지켜 양심과 진리에 따라 청소년을 교육하는 교원들에게까지 일당독재의 도구로서 협박과 공갈로 위협하고 그 잔학한 강도적 수법을 사용하여 전체국민이 저주하는 독재정권의 연명책으로 동원하였다 민중은 우매하지 않고 하늘은 무심하지 않다. 이 폭악 무쌍한 독재정권도 순수하고 정의와 정열에 불타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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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고려대·연대생 약 5,000명, 대일 굴욕외교에 반대하며 5·16 이후 최대 규모 ...
일자 : 1964.3.24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매국외교, 박살하라 매판세력”여기서 주목할 것은 3·24 이후의 운동에서 ‘매판’이라는 개념이 강조된다는 점이다. 이는 1960년대 한국경제의 신식민지적 세계시장 편입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한국의 지배적 자본을 지칭하는 것이었으며, 중앙정보부의 정보정치로 나타나는 군사독재와 이들과 결탁한 자본가층을 민중과 대치하여 놓은 것이다.(이종오, 「반제반일민족주의와 6·3운동」, 『역사비평』 여름호, 1988, 58쪽) 이처럼 한일회담문제를 국내 매판자본과의 결탁의 관점에서 보고 이를 비호하고 있는 박정희 정권을 규탄하는 입장은, 지금껏 한일회담으로 형성될 한일관계 자체가 아닌 단순히 정권 측의 굴욕적인 외교적 태도,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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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지령 받고 국가변란음모 지하조직” 중앙정보부, ‘인민혁명당’ 41명 구속
일자 : 1964.8.14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속에서 정권을 보다 더 튼튼하게 다질 조치가 절실하게 필요하였다. ‘인민혁명당 사건’의 발단은 학생운동의 배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 시위의 배후조직 중의 하나였던 불꽃회 대표 김정강의 일기에서 인민혁명당의 도예종과의 관련성이 드러남으로써 단서가 주어졌던 것이다. 이에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1964년 8월 14일 세칭 ‘인혁당 사건’을 발표하여 한일회담 반대투쟁의 열기를 꺾으려 하였다. 1964년 8월 14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기자회견을 소집 “북괴의 지령을 받고 대규모적인 지하조직으로 국가를 변란하려던 인민혁명당 사건을 적발, 일당 57명 중 41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16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