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38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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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생 박종철 군 고문살인 사건 진상보고서등록번호 : 00968430
날짜 : 1987.02.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영춘
요약설명 : 정부 당국의 사건 은폐·축소 왜곡 기도 5. 국정조사권 발동의 필연성 6. 고 박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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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고문 살인사건 진상조사 및 고문근절 대책 특별위원회 내무조사반의 국립과학수사연구소...등록번호 : 00968498
날짜 : 1987.01.2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영춘
요약설명 : 방문한 박종철 고문 살인사건 진상조사 및 고문근절 대책 특별위원회에서 작성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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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대책위원회 제4차회의]등록번호 : 00968499
날짜 : 1987.01.27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영춘
요약설명 : 고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과 관련하여 고문방지 특별대책위원회를 신한민주당과...
사진사료 6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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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사건 조사발표에 따른 사후대책을 협의하고 있는 민정당 당직자 간담회 모습등록번호 : 00731436
날짜 : 1987.01.1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조사발표에 따른 사후대책을 협의했다. 민정당은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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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사건조사 발표에 따른 사후대책을 협의하고 있는 신민당 확대간부회의 모습등록번호 : 00731437
날짜 : 1987.01.1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조사발표에 따른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이민우 총재 주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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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사건 재수사로 검찰에 소환된 박원택 경정등록번호 : 00731802
날짜 : 1987.05.23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25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범인축소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된...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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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창립요약설명 : 세미나를 10여회 개최하여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 박종철, 권인숙 손해배상 사건들과 국보법 위반 등 형사사건 20여 건을 변론하였고 양심수 공청회를 열기도 하면서 각종 성명발표, 조사활동, 연대활동도 활발하게 벌였음을 알 수 있다. 민변이 발행한 월간지 <이달의 민변>(등록번호: 98850, 98875, 98856, 98851, 98841, 98852, 24334, 24333, 24335, 373264, 98876, 98877, 98842, 98848 등)은 비교적 많이 소장하고 있으며, 그를 통해 민변의 당시 활동과 관심사를 소상하게 살필 수 있다. <민변백서-민변 10년의 발자취>(등록번호: 88227)도 민변 10년의 활동을 담고 있는 사료다. 대한변협에서 인권위원으로 참여했던 민변 주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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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농성사건요약설명 : 명동성당 농성사건 자료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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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10항쟁요약설명 : ‘6월항쟁’과 관련하여 137건, ‘국민운동본부’와 관련하여 342건, ‘6.10국민대회’ 15건, ‘국민평화대행진’ 33건, ‘6.29선언’ 14건이 검색되었다. 6월항쟁과 관련한 성명서 모음(등록번호 : 429721), 박용수 선생이 기증한 사진사료 <상공회의소 국기하강식 애국가 방송을 신호로 시작된 6월항쟁>(등록번호: 701102)가 다수 소장되어 있으며, 단행본으로 엮은 국민운동본부 평가서(등록번호 : 78467), 국민운동본부의 각종 성명서(등록번호 : 151233 외)와 <조직실태와 문제점, 실천조직 건설에 대하여>(등록번호 : 193777)와 같은 내부 문건, 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과 관련한 국민결의본 친필본 초안도 보존되어...
사료 콘텐츠 2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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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고문치사사건 - 진실이 힘이다요약설명 : 사건에 대해 거의 다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선선히 대답해주었다. “박종, 뭐라고 했는데…….” “학과는요?” “언어학과 3학년.” 그는 숨 가쁜 오전 취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의 손에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진실의 조각들이 쥐어져 있었다. 서둘러 발품을 판 보람이 있었다. 데스크에도 각 주재기자와 출입기자들의 보고가 이어졌다. 학생의 이름은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박종철이었다. 부산 가족들과도 통화가 이루어져 가족관계 확인도 마쳤다. 가족들은 경찰의 연락을 받고 서울로 떠난 뒤라서 부재중이었다. 이제, 신성호 기자의 머릿속에는 조각조각 나뉜 진실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었다. 그는 기사를 작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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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상계동 철거민투쟁요약설명 : 파도가 되어 소공동과 회현동으로 밀물져왔고, 급기야 명동성당에까지 파도처럼 휩쓸려왔다. 박종철고문치사사건과 이한열 피격 을 거치면서 6월민주항쟁은 강고한 적의 무릎을 꿇게 했다. 그 후, 명동성당을 나온 상계동 철거민들은 남양주의 배 밭이나 부천의 고강동으로 쫓겨났다. 공무원들은 고강동으로 올림픽 성화가 지나간다는 구실을 붙여 뼈대만 세운 가건물 마저 철거해 버렸다. 철거민들이 땅굴을 파고 살게 된 어느 날, 올림픽 성화가 5분 만에 그곳을 지나갔다. 군사독재 시절의 끝자락에 벌어진 비정한 소극(笑劇)이었다. 글 박선욱(시인, 평전작가) 1959년 나주 출생. 1982년 시 〈누이야〉외 3편이 실천문학 제1회 신인작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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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열사, 박현민을 기억하다요약설명 : '6월항쟁'하면 그 시작점이자 도화선이 되었던 박종철 열사(박종철고문치사사건)와 이한열 열사(이한열최루탄피격사건)를 기억한다. 하지만 6월항쟁에는 학생, 종교인, 회사원 등 수많은 시민이 참여했고, 그 뜨거운 열기가 마침내 6.29선언을 이끌어 내 우리나라의 정치적 민주화를 쟁취했다. 그 참여자 중 박현민이 있다. 1986년 숭실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한 박현민은 6월항쟁 도중 3도 화상을 입었다. 이후 1989년 군입대하였으나, 1991년 12월 군에서 얻은 병으로 제대했다. 그리고 박현민은 군 복무 중인 1990년 3월 「특별한 사유없이 연달아 두학기를 등록하지 않으면 자동제적된다」는 학칙에 의해 제적되었다. 제대한 이후 1991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