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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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하여
등록번호 : 00827063
날짜 : 1988.11.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박용길
요약설명 : 여정남·김용원·이수병·하재완·서도원·송상진·우홍선이 사형당한 인민혁명당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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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4월 : 실록·민청학련 3
등록번호 : 00921282
날짜 : 2004.10.15
구분 : 문서류 > 단행본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무관하다_여정남 민청학련사건과 나_임규영 빵잽이가 된 모범생_윤한봉 <새얼>새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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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혁명당 관련 통일열사 자료집
등록번호 : 00440197
날짜 : 1989.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병길
요약설명 : 김용원, 여정남, 진재권, 장석구, 유진곤 인민혁명당 사건과 청학의 임무 인혁당 ...
사진사료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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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종, 송상진, 하재완, 여정남 열사 묘비 제막식 모습
등록번호 : 00709847
날짜 : 1995.04.0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현대공원묘지에서 이곳에 묻힌 도예종, 송상진, 하재완, 여정남 열사 묘비 제막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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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에 세워진 이재문. 여정남 추모비
등록번호 : 00709845
날짜 : 1996.07.18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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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에 있는 "여정남 추모비" 터
등록번호 : 00742574
날짜 : 1996.07.01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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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
요약설명 : 이 사건과 관련하여 성명서, 재판자료, 탄원서, 호소문, 신문스크랩, 사진 등 약 190여 건의 사료가 소장되어 있다. 이 사건과 관련한 중요사료는 1974년 4월 3일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명의의 <민중 민족 민주선언>(등록번호 : 480510)으로, 당시 학생운동의 사상적 수준을 보여준다. <민중 민족 민주선언>은 “소위 유신이란 해괴한 쿠데타 국가 비상사태와 1.8 조치 등으로 이어진 폭압체제”라고 유신체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남북대화는 영구집권을 위한 장식물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7.4공동선언의 허구성을 폭로하면서, 민생, 민권, 민중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료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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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요약설명 : 이 사건과 관련하여 약 90여건의 사료가 소장되어 있다. 중요사료로는 인혁당 사건의 진상을 처음으로 상세히 밝힌 성명서 <인혁당 사건 진상을 조사 발표하면서>(등록번호 : 108139)가 유감스럽게도 일부만 남아있다. <인혁당 조사 결과>(등록번호 : 476278)는 번역물로 문장은 매끄럽지 않으나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정보, 사건의 조작성, 시노트 신부의 증언, 사형과 시체탈취 과정, 외국신문 기사 등을 상세히 알 수 있는 중요사료다. 인혁당 관련자들의 모습은 『8월 인혁당 사건 공판에서 피고자 도예종 등 13명』(등록번호 : 709843)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인혁당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을위한대책위원회의...
사료 콘텐츠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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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도 떨어뜨린다_ 공포정치의 산실 중앙정보부
요약설명 : ‘민청학련’의 배후로 ‘인혁당재건위사건’을 만들어 냈다. 도예종, 이수병, 여정남 등의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어 국가 전복을 위해서 대학생을 조직하고 간첩 활동을 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거짓이었다. 거짓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자비한 폭력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라는 중앙정보부의 슬로건은 차라리 ‘없는 간첩도 만들어 내어라!’가 더 맞았을지 모른다. 잠 안 재우기, 인간성을 부정하는 쌍욕, 발길질, 주먹질, 몽둥이질, 무릎에 각목을 끼우고 짓밟기는 예사였고, 나중에는 거꾸로 매달아 놓고 물고문과 전기고문까지 서슴지 않았다. 합법적 수사기관인 경찰과 검찰이 있었지만 중정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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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사건은 계속되고 있다
요약설명 : 1974>라는 제목으로 연재하다가 3회 만에 반공법으로 재구속되기도 하였다. 1975년 4월 8일 도예종 여정남 김용원 이수병 하재완 서도원 송상진 우홍선 등 8명은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18시간 만인 이튿날 사형이 집행되었다. 제네바의 국제법학자회는 이를 '사법 역사상 암흑의 날'이라 규정했다.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인혁당사건이 조작되었다고 발표했다. 이를 바탕으로 인혁당사건 32년만인 2007년에 열린 재심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8명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 무기징역 등의 형을 살았던 17명에게도 2008년부터 2013년에 걸쳐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다. 옥고를 치른 17명 중 16명의 가족들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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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갇힌 변호사 강신옥
요약설명 : 혼신의 힘을 다했던 민청학련사건과 인혁당재건위사건은 그에게 천추의 한으로 남아 있었다. 여정남을 비롯해 사형을 당했던 8명의 사형수는 재심을 통해 32년만인 2007년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리고 강신옥의 법정모독죄 역시 14년 만인 1988년 무죄가 되었다. 글 박민나(자유기고가) '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여성노동운동가 8명의 이야기' 출간(2004년 )과 한국여성노동자회 계간지 '일하는여성'에 '박민나의 삶이야기'를 연재하면서 많은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글로 옮기는 일을 하였다. '여성의 삶과 문화' 공저, 한겨레신문 '길을 찾아서 이총각 편' 연재, 뮤지컬 메노포즈 번안 등 다양한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다.
구술 컬렉션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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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구
면담자 : 유시춘
일자/장소: 2003.07.05. / 국가인권위원회
요약설명 : 준비 - 여정남 중심의 ‘정진회’ 이념서클 조직 및 활동 - ‘정진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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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재
면담자 :
일자/장소: 2023.7.17./전교조 대구지부 회의실
요약설명 : 장명재는 1971년 대구 영남고를 졸업하고, 1972년 경북대 문리대학 사학과에 입학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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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규
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일자/장소: 2023.7.3./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상강원지부 사무실
요약설명 : 박명규는 1952년 3월 경북 청송군에서 출생하고,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일지사료 1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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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정진회사건 공판서 피고인들 “고문에 못 견뎌 허위 자술” 주장
일자 : 1971.7.15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하 변호사의 반대심문에서 여정남 피고인은 반독재구국선언문을 작성할 때 북한을 이롭게 할 목적은 전혀 없었으며 4.19혁명 11주년을 감명깊게 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진술했다. 또한 장 변호사의 반대심문에서 모 피고인은 “정진회는 합법적이고 상호친목 및 학술연구로 국가에 이바지하기 위해 조직했다”고 진술했다. 또한 구국선언문은 어떻게 작성할 것인가를 회원들과 상의해서 작성한 것이 아니고 생각난 대로 쓴 것이라고 진술한 여정남 피고인은 “내용이 잘못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변호인단 측은 정진회에 대한 성격을 알기 위해 경북대 학생처장 오대섭, 김성혁 두 교수를, 검찰은 구국선언문 인쇄를 거절한 백금산, 신승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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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법, 정진회사건 출감한 김성회 피고 포함 6명 보석 석방
일자 : 1971.8.30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반공법 위반 피고인 여정남과 이현세, 정만기, 정육표, 여석동, 김성회 등 6명에 대한 보석신청이 이유있다고 석방 결정했다. 안 판사는 이들에게 각각 보석 보증금 3만 원을 결정했는데, 이날 김성회 피고인만이 보석금을 납부하고 밤 10시에 대구교도소에서 출감했다. 나머지 피고인은 보석금을 내지 못해 31일 밤 10시경 출감될 예정이다. 이날 출감한 김성회 피고인은 지난 5월 5일 동대구경찰서에 연행되어 15일 간 거꾸로 매달려 물고문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김 피고인은 경찰의 고문에 못 이겨 문제가 된 “반독재 구국선언문을 초안하여 여정남 피고인에게 공산주의 사상을 교양했다”고 허위자술서를 썼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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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회사건 피고 4명 보석금 못 내 보석 보류
일자 : 1971.9.1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지난 30일 보석허가 된 경북대 정진회 반공법 위반 사건 피고인 4명이 1일 오전 현재 보석금 3만 원을 내지 않아 3일째 석방되지 못하고 있다. 여정남, 정만기, 정옥표, 여석동 피고인 가족은 변호인 측의 보석허가 결정을 통지받았으나, 1일 현재 보석금을 납부하지 않아 석방이 보류되고 있다.『매일신문』 1971.9.2. 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