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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불을 지폈던 대학가 사회과학 서점요약설명 : 세 가지 일을 했다. 하나는 글을 쓰는 일이고, 하나는 책을 펴내는 출판사를 여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대학가에 인문사회과학 책방을 여는 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대학가 인문사회과학 책방 주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우선 누구와도 토론할 수 있고 좋은 책을 선별해 권할 수 있는 해박한 지식과 다양한 정보가 필요했다. 김수영과 신동엽을 말할 수 있어야 했고 『공산당선언』이 마르크스가 1848년에 쓴 책이라는 것쯤은 알아야 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누군지, 동학농민전쟁의 접주 김개남이 누군지 정도는 알아야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곳은 그냥 동네 서점이 아니었다. 광호와 같이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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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의 메카_ 추억의 세실레스토랑요약설명 : 때 출판사 직원이었던 경식이 편집장의 지시로 처음 신영복 선생이나 리영희 선생을 만난 곳도 이곳 세실레스토랑이었다. 글씨를 받으러 갔는지 원고를 받으러 갔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외유내강한 선비형의 신영복 선생은 누구에게나 조용하고 겸손하게 작은 목소리로 말하곤 했다. 그에 비하면 리영희 선생은 칼칼한 목소리에 무언지 모르게 마른 대나무 같은 빈틈없는 느낌을 주었다. 그래도 그곳에 그런 분들을 만나러 가던 날은 얼마나 가슴이 설레곤 했던가. 이제 그분들도 다 떠나고 그 세실까지 문을 닫는다니 오늘 아내와 가는 길은 이제 그때 그 길이 아닐 것이었다. 마침 안에는 낯익은 주인이 있어 반갑게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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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영혼, 조영래 변호사요약설명 : 된 전태일 평전이었다. 1983년, 한국의 출판사에서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되었다. 저자 이름 대신 ‘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 엮음으로 된 이 책은 출간 즉시 판매 금지 조치를 당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는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조영래는 이 책의 서두에 “전태일의 몸을 불사른 불꽃은 ‘인간 선언’의 불꽃이었다.”고 썼다. 나아가 “전태일 투쟁은 현실의 질곡 아래 짓눌려 인간다운 삶을 빼앗기고 있었던 모든 민중들, 특히 젊은 노동자들에게 비상한 충격을 주어 빈사상태에 있던 한국 노동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적었다. 다가올 시대의 변혁을 예언한 서문이었다....
구술 컬렉션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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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면담자 : 정호기
일자/장소: 2024.7.26./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상,강원지부 사무실
요약설명 : 시위 - 우리문화연구회 활동 - 우리출판사 운영과 1987년 대선 국면에서 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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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형면담자 : 김종길, 양정애
일자/장소: 2022.8.20./충북 음성
요약설명 : - 1958년 서울 영등포구에서 2남 2녀 중 셋째로 출생 - 홍익대학교 미술교육과(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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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면담자 : 김종길, 양정애
일자/장소: 2022.8.27/박홍규 자택
요약설명 : - 1959년 전남 부안 출생 - 홍익대학교 조소과 입학 및 졸업(1985) -...
일지사료 13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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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고등학교 학생 800여 명, 학원의 자유 주장하며 시위
일자 : 1960.2.28
분류 : 시위 상황 > 대구
요약설명 : 국제출판사, 1960, 20쪽). 학생들은 도지사실을 향하여 대열을 짓고 이동했으며“경북도지사와 경찰국장은 나와 달라”고 요구했다.다른 기록은 학생들이 경찰국장이 아닌 문화국장의 출두를 요청했다고 기술하였다(남욱, 97쪽). 학생의 요구에 응해 오임근 경북도지사와 경찰간부가 학생들을 무마시키기 위해 나왔으나 이대우는“학원의 자유를 달라”는 요지로 된 결의문을 낭독했다. 하지만 이대우는 정·사복경찰의 출동으로 낭독을 채 마치지 못했다. 이때 학생 일부는 도청 정원 쪽으로 돌을 던졌는데 대다수 학생들이“돌을 던지지 마라”는 함성을 지르자 투석을 즉시 중지하였다.「 2·28경과상보」, 『경맥』7호, 경북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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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고등학교 학생 1천여 명, 학원의 자유 외치며 시위
일자 : 1960.3.8
분류 : 시위 상황 > 대전
요약설명 : 의해 해산되었는데 경찰관의 구타에 “주먹으로 대하면 우리는 죽음으로 대항한다”고 외치며 “학원의 자유를 달라”고 울부짖었다. 그리고는 평화적 시위에 경찰이 간섭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자진해서 질서있는 시위를 약속하고 학교로 돌아갔다. 이로서 오후 4시 경부터 일어난 대규모 대전고 학생 시위는 약 40분 후에 경찰의 총부리에 의해 해산되었다.조선일보는 이날의 시위가 1시간 반 동안 계속되었다고 보도하였다(『조선일보』 1960. 3. 9 조3면).경찰은 1명의 교사와 40여 명의 학생을 연행했고 40여 명의 학생들을 대전고 교실에 강제 수용했다.동아일보 보도와 달리 조선일보와 한국 일보는 이날 연행된 학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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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진구에서 고등학생 600여 명 시위
일자 : 1960.3.14
분류 : 시위 상황 > 부산
요약설명 : 우리 선배는 썩었다”, “우리가 민주제단 지키자”, “ 학도여 일어나라 우리의 피를 보이자”, “ 학도는 살아있다 민주국가 세우자”, “ 학원에 강제선거운동을 하지 말라”등의 구호를 외치며 삐라 수 백 매를 살포했다. 경찰은 이들을 강제해산하고 시위에 참가한 여학생 5명을 포함한 16명을 부산진구 경찰서로 연행했다. 시위를 제지하던 경찰 1명은 중상을 입었다. 또한 해동고등학교 학생 약 20명은 밤 9시 20분쯤 시내 동성동 현대극장 뒷골목에서 “학도여 일어나라”“, 민주주의 수호하자”라는 삐라를 뿌렸으며 이들 중 2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또한 부산상고 학생 7-8명과 동아고등학교 학생 3명, 건국고등학교 학생 1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