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63건
더 보기-
高麗大學校 4人敎授(李文永, 尹溶, 柳漢筬, 李萬雨)의 學園民主化 推進日誌
등록번호 : 00082484
날짜 : 1987.01.2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
高麗大學校 4人敎授(李文永, 尹溶, 柳漢晟, 李萬雨)의 學園民主化 推進日誌
등록번호 : 00221136
날짜 : 1987.01.2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
高麗大學校 4人敎授(李文永,尹溶,柳漢晟,李萬雨)의 學園民主化 推進日誌
등록번호 : 00835606
날짜 : 1987.01.2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4인 교수는 작년 10월 26일~금년 1월 20일 현재까지 이범준총장과 재단이사장에게...
사진사료 13건
더 보기-
김대중 선생 단일후보 선포식이 열린 고려대 운동장 연단에서 학생들을 격려하는 이문영 교수
등록번호 : 00702580
날짜 : 1987.12.0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
YH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 해직교수 이문영
등록번호 : 00710434
날짜 : 1979.08.12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
김대중 단일후보 선포식에서 학생들에게 격려사를 하는 이문영 교수
등록번호 : 00745258
날짜 : 1987.12.0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영상사료 2건
더 보기박물사료 1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2건
더 보기-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요약설명 : <누구를 위한 내란음모인가-김대중 일당 사건의 진상>(등록번호: 140782)도 주목할 만한 사료이다. 사진 사료로는 청주교소도에서 머리를 박박 깎은 채 독서 중인 김대중 씨의 모습도 이채로우며(등록번호: 725686), <김대중 등 내란음모사건 체계도>(등록번호: 725371)는 신군부가 주장하는 사건의 모습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에 의하면 김대중 씨 옆에 한민통이, 김대중 씨 밑에 국민연합과 전위조직이 있고, 국민연합은 문익환, 고은태(고은), 예춘호, 이문영씨가 중앙상임위원장 및 상임위원으로, 전위조직에는 민주연합청년동지회(총책:김홍일), 민주헌정동지회(대표: 김종완), 한국정치문화연구소(대표:김상현)...
-
YH사건
요약설명 : YH사건과 관련하여 137건, 김경숙 열사 관련 42건의 자료가 소장되어있다. 한국기독교청년협의회의 를 비롯한 각종 성명서(등록번호 : 91842 외)와 호소문(등록번호 : 406537 외), 결의문 <제176차 노총 중앙위원회에서의 YH무역회사 사건에 대한 결의>(등록번호 : 67285), 과 같은 박물류(등록번호 : 471348 외), 신문스크랩(등록번호 : 418837 외), 사진(등록번호 : 710461 외)과 김경숙 열사 추모와 관련한 각종 문건(등록번호 : 325803 외)과 사진(등록번호 : 703721 외)이 있다.
사료 콘텐츠 5건
더 보기-
3.1민주구국선언-유신반대운동의 불꽃
요약설명 : 동참하겠소.” 함석헌의 뜻을 확인한 문익환은 동생인 문동환 목사와 이문영, 윤보선, 서남동 등을 차례로 만났다. 그들 모두가 선언문 발표에 대해 동의하며 서명을 약속했다. 윤보선은 선언문에서 유신헌법 철폐와 긴급조치 해제, 현 정권 퇴진에 관한 내용을 뚜렷하게 명시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문영 교수는 선언문의 초안을 수정해주었다. 문익환은 그 무렵 독자적인 선언문을 준비하고 있던 김대중도 만났다. 문익환의 선언문을 본 김대중은 자신의 선언문을 선뜻 포기하며 서명에 동참했다. 문익환은 2월 27일 신현봉 신부에게 선언문을 전달했고, 28일에는 함세웅 신부를 만났다. “신부님, 삼일절 기념미사에서 이 선언문을 발표할 수...
-
자유가 들꽃처럼 정의가 강물처럼
요약설명 : 장을병, 유인호, 임재경, 문익환, 안병무, 한완상, 이문영, 송기원, 고은(고은태), 한승헌, 이호철, 이해동, 서남동, 조성우 등 37명이 연루된 내란음모 사건을 발표했다. 이 사건은 12·12쿠데타와 5·18 광주학살로 집권한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이 집권 초기 정통성 시비를 잠재우고 위기 상황을 조성하기 위하여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상징적 정치인이고 광주항쟁의 정신적 구심점인 김대중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었다. 동시에 김대중과 국민연합이 중심이 된 민주화추진 국민운동 계획을 ‘내란음모사건’으로 조작한 사건이었다. 신군부는 이 사건에 김대중의 측근 이외 재야 및 학생운동 핵심 인사들을 연루시킴으로써 민주화운동...
-
그 해 겨울의 내의 한 벌-엠네스티 한국위원회
요약설명 : 이문영 교수 등이 시국 사건에 관련된 혐의로 구속되었다. 우리 회원인 문정현 신부가 검찰의 형집행정지 취소로 재수감되었는가 하면, 부산지부의 노경규, 조태원 두 간부도 긴급조치 위반으로 실형선고를 받았다. 이사인 백낙청 교수도 구류처분을 받았고, 아카데미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고문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서명작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이우정, 이재정, 송건호 이사와 내가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아빠. 그러니까 양심수 없는 세상을 꿈꾸었던 그 분들이 오히려 양심수가 된 셈이군요.” 인철이가 아빠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단다. 사슴을 말이라고 강요하는 세상에서 사슴은 사슴이라고 정직하게...
구술 컬렉션 3건
더 보기-
설송웅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박정수, 박재홍)
일자/장소: 2010년 7월 26일/양평 구술자의 자택
요약설명 : 구술자인 설송웅은 4‧19 직전에 당시 고등학생 연합모임인 협심회를 만들고 주도했던...
-
이문영
면담자 : 김태영
일자/장소: 2002. 10. 11./경기대 석좌교수실
요약설명 : 3.1구국선언, 노동문제연구소 소장, YH사건, 옥중활동, 갈릴리 교회의 설립과 활동,...
-
이문영
면담자 : 민족문제연구소(윤무한, 김승은)
일자/장소: 2010년 7월 23일/서울 쌍문동 구술자 자택
요약설명 : 구술자는 1927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1960년 당시 고려대학교 전임강사를 맡고...
일지사료 31건
더 보기-
재경 대학교수단 354명, 한일협정비준반대 선언문 발표
일자 : 1965.7.12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이문영 박기반 김철준 한창규 이명구 주선애 서정범 박상규 이용환 신연철 유승국 문익환 김봉식 김인명 이성삼 임진섭 한동세 김종현 정도영 유정동 차수권 유승조 오석규 남흥우 김성원 이인모 윤세원 심영섭 박준규 김영달 이창배 권혁소 이광신 손제석 송한진 허웅 이규갑 이병조 이종찬 이병찬 박희범 홍성유 나사행 이윤중 백환규 정경석 김삼수 윤세창 한상범 조규동 이가형 문동한 이우정 진세인 박성우 이정식 홍사모 황극덕 정도열 이종은 안영휘 이남표 박봉랑 윤연 조동규 차경권 안승봉 국정효 장기욱 임창한 전광용 홍빈국(무순)『동아일보』 1965.7.12 석4면, 『경향신문』 1965.7.12 석7면, 6·3동지회, 『6·3학생운동사』,...
-
화학노조본부, 조직기피·노동자요구 묵살·변칙협약 등 비판받아
일자 : 1971.7.26
분류 : 분류없음 > 기층민중
요약설명 : 각 노동조합에서 신풍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때에 전국화학노동조합(위원장 박영성)에서 일선사업장의 근로자들이 노조결성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이를 1개월이나 외면(칠성음료회사)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사업장의 노조운영에서 본부가 직접 회사 측과 노사협정을 체결(삼영화학회사)하는 등 변칙처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은 고려대노동문제연구소(소장 이문영 교수) 산하의 노동문제연구회가 주최하는 ‘수요토론회’에서 근로자들의 진정을 받고 2주간에 걸쳐 각 대학 노동문제 담당교수, 노조간부, 산업선교회의 목사들의 조사에서 밝혀진 것이다.『경향신문』 1971.7.24. 1면; 『동아일보』 1971.7.26. 2면
-
기독학생총연맹(KSCF), 새 가치관 확립 토론
일자 : 1972.5.15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대학의 가치관 형성에 결코 학생들과 괴리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문영 교수(고려대)는 지난해 학원사태 이후 오늘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먼저 ‘학생을 살린다’는 것이 자신의 기본 의도라 전제하고 그런 점에서 지난해 학생들이의 행동은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정부 자체가 잘못에 대한 개선의 노력이 있고 학생들이 아니라도 사법부 파동이나 교수자주선언 등 사회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학생들은 침체된 상황만을 맞았음을 지적하고 학생이 다치지 않게 하려면 대학생들은 대학에서 뭔가에 밀착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전략은 대학의 중립화며 이것이 대학생 스스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