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47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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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선제등 민주개헌추진 천만인 서명 인사들을 공개하면서
등록번호 : 00968365
날짜 : 1986.03.0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영춘
요약설명 : 현재까지 개헌서명에 참여한 인사들 중 공개에 동의한 인사들의 명단을 공개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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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직선제 개헌 촉구 단식기도]
등록번호 : 00858307
날짜 : 1987.04.3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윤미애
요약설명 : 직선제 개헌을 위한 사제단 단식기도를 지지하고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며 단식기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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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직선제 개헌 관련]
등록번호 : 00961662
날짜 : 1986.11.0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연세대학교
요약설명 :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수락한다면 대통령 선거에 불출마할 것이라는 내용을 포함한 ...
사진사료 4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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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서 열린 직선제 개헌 추진대회에서 연설 중인 이민우
등록번호 : 00907055
날짜 : 1986.10.0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정태원
요약설명 : 신민당 군산・옥구지구당의 의정 보고 및 직선제 개헌 추진대회에서 이민우 총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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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서 열린 직선제 개헌 추진대회에서 연설 중인 김영삼
등록번호 : 00907056
날짜 : 1986.10.0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정태원
요약설명 : 보고 및 직선제 개헌 추진대회에서 김영삼 상임고문 및 민추협 공동의장이 연설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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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서 열린 직선제 개헌 추진대회에서 대치 중인 신민당 사람들과 경찰
등록번호 : 00907057
날짜 : 1986.10.0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정태원
요약설명 : 및 직선제 개헌 추진대회가 군산시 월명공원에서 이민우 총재, 김영삼 공동의장 겸...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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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서명운동
요약설명 : [개헌서명운동 서명지]> (등록번호 : 521651),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동장에서 대통령까지 우리들의 손으로"-대통령 직선제 민주개헌 서명운동을 시작하며> (등록번호 : 317133), 민추협의 <1천만인 개헌서명 운동에 즈음하여>(등록번호 ; 86873) 등 국내 사료 외에, 씨애틀 민주개헌서명추진위원회의 <한국캐톨릭교계 개헌서명운동> (등록번호 : 517971), 밴쿠버 개헌서명운동을 돕는 모임의 <한국의 민주화 개헌서명운동을 지지하면서>(등록번호 : 416153), 런던 작은뜻모임 회장 공천수, 에드먼턴 한얼회 회장 류택렬 등의 <성명서 [국민의 개헌운동의 지지와 개헌지지서명운동 전개 성명](등록번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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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노동운동연합 사건
요약설명 : 운동세력들과 구별짓는 주장 “삼민헌법쟁취”라는 구호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민헌법쟁취”라는 구호는 1, 2호에서 나왔던 직선제 개헌을 포함한 민주헌법쟁취투쟁이라는 입장과 그 외적인 차이로 주목받았다. 생활임금제와 관련하여 <구로 20만 노동형제여[생활임금 투쟁 관련]>(사료번호 : 100744), <생활임금제 쟁취를 위한 우리의 투쟁선언>(사료번호 : 100743)을 볼 수 있으며, 이와 함께 각종 성명서의 주요 주장으로 나오고 있다. 5·3인천항쟁과 관련한 <가자! 일천만 노동자의 벼락치는 함성으로 천지를 뒤덮는 노동해방의 대열로!-삼반정권타도 및 삼민헌법쟁취실천대회>(사료번호 : 86888), <경인지역 5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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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발족
요약설명 : 民生을 위한 福音運動을 宣布한다>(등록번호 : 108143)는 민중신학에 영향을 주었다. <추도사_최종길 교수와 떠난 모든 형제들을 위해>(등록번호 : 114862), <인혁당 사건 진상을 조사 발표하면서>(등록번호 : 108139), <정부 당국에 묻는다[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 관련]>(등록번호 : 207832), <성명서-광주,전주 교구 사제들의 직선제 개헌을 위한 단식기도에 동참하면서>(사료번호 : 392986), <박군 고문사망 사건에 대한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성명서>(등록번호 : 44259), <문규현 신부 방북 관련 자료>(등록번호 : 206835), <고 김기설씨 유서공방사건의 공정한 공개수사를 촉구하며>(등록번호...
사료 콘텐츠 1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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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과 권력 사이 - 어느 야당의 선택
요약설명 : 개헌불가’의 입장에서 물러나 정치권 안에서 개헌논의를 하고 가두서명운동은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신한민주당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기자회견을 열어 ‘일부 소수학생의 과격한 주장은 지지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입장 표명에 국민들은 당황했고 분노했다. 5월 3일, 인천집회가 열릴 예정이던 인천시민회관에서 대회 시작 전부터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고, 현판식은 신한민주당 지도부가 대회장으로 입장하지도 못한 채 무산되었다. 전두환 정권은 인천집회 이후 민주세력을 좌경 폭력세력으로 몰며 대대적인 탄압에 돌입했다. 이후 신한민주당의 지역순회 집회의 군중 참여 숫자는 현격히 줄어들었고, 민심은 신한민주당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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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민주화와 인권을 향한 열망
요약설명 : 본격화되기 시작한 직선제 개헌논의를 봉쇄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개헌논의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1986년 2월 4일 서울대학교에서 15개 대학 1천여 명이 모여 ‘파쇼헌법철폐투쟁대회 및 개헌서명운동 추진본부 결성식’을 개최하였고, 12일에는 신민당과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으로 ‘1천만 개헌서명운동’을 개시하기로 결정하였다. 3월 5일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이 가맹 23개 단체와 각계 민주인사 303인의 이름으로 ‘군사독재 퇴진 촉구와 민주헌법 쟁취를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 개헌서명운동은 정권교체와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들의 잠재적 요구를 폭발시켰으며 온 국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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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추협_ 1987년 직선제개헌쟁취의 불씨를 당기다
요약설명 :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연대하여 민추협을 결성하는 촉매 역할을 했다. 민추협이 표방했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의 요구는 신당 창당으로 이어졌으며, 1985년 2.12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신민당을 통해 전 국민적인 의제로 확산되었다. 일관되게 추진된 이 어젠다는 1987년 6.10민주항쟁의 용광로를 거친 뒤 ‘4.13호헌조치’의 벽을 깨부수고 ‘6.29선언’을 통해 대통령직선제개헌의 쟁취이라는 열매를 맺기에 이르렀다. 글 박선욱(시인, 평전작가) 1959년 나주 출생. 1982년 시 〈누이야〉외 3편이 실천문학 제1회 신인작품으로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이후 대표작으로 《그때 이후》《다시 불러보는 벗들》《세상의 출구》《회색빛 베어지다》...
구술 컬렉션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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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평지
면담자 : 김봉국, 이연숙
일자/장소: 2017.6.23./광주 구술자 사무실
요약설명 : 관계, 1986년 직선제 개헌 추진 현판식 개최와 대중 집회, 1987년 박종철고문치사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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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상
면담자 : 정지성, 김성진
일자/장소: 2017.9.18./청주 소재 식당
요약설명 : 신민당 개헌현판식까지, 87년 6월항쟁을 준비하고 겪었던 일, 87년 대선의 실패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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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면담자 : 이영재, 정호기, 이창훈
일자/장소: 2017.6.27./국회의원회관
요약설명 : 복원, 직선제 개헌운동과 대학가의 인식 및 논쟁들, 건국대사건, 건국대사건 이후...
일지사료 1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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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 이재학·임철호 부의장, 정·부통령선거 동일티켓제 개헌에 부정적
일자 : 1959.12.1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소위 ‘발췌개헌’이라 불리는 것으로 대통령 간선제를 대통령 직선제로 바꾼 것 이었다. 대통령을 선출하는 국회가 야당 일색이 되자 이승만은 국회의 대통령선출권을 박탈하고 국민 직선제를 주장하였다. 두 번째 개헌은 ‘사사오입개헌’으로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임기의 제한을 없애 이승만의 영구 집권을 가능하게 제도를 정비한 것이었다. 이처럼 선거를 앞두고 또 다시 불어 닥친 세 번째 개헌 논쟁도 자유당의 정권 유지를 위한 연장선상에 있었다. 1956년 정·부통령선거에서 대통령에 이승만(자유당), 부통령에 장면(민주당)이 선출되자 자유당은 1960년 선거에서만큼은 대통령 궐위시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되는 부통령에 이기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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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장면 부통령후보, 참의원 구성방법 변경 개헌 반대
일자 : 1960.3.11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야당과 재야단체
요약설명 : 11일 오전 민주당장면 부통령후보는 순화동 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당 선거운동이 가혹한 방해를 받고 있어 공명선거를 기대할 수 없으나, “민주주의구국운동이라는 신념 밑에서 승패를 초월하여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하였다. 논란이 되고 있는 참의원 구성 문제에 관해서는 자유당이 주장하는 직능제 선거제는 일고의 여지도 없으며 현행법에 의해 구성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참의원 구성방법 변경을 위한 개헌에 반대하였다. 그리고 자유당이 7-8년 동안이나 참의원을 구성하지 않은 이유를 비난하며 현행법에 맞춰 직선제로 구성할 것을 주장하였다.『조선일보』1960. 3. 11 석1면 ;『동아일보』1960. 3. 12 조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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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일부, 국회 해산 후 재선거 주장
일자 : 1960.4.27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야당과 재야단체
요약설명 : 또 개헌 후에 정·부통령선거를 하더라도 이번만은 직선제를 채택하는 것이 좋으며, 만약 다수의원이 동조한다면 26일의 국회결의를 뒤집어서라도 개헌 전에 정·부통령선거를 하는 편이 더 떳떳한 것이라고 하였다. 주요한 의원의 주장대로 하면 비상입법의회의 개헌까지는 무정부의 공백상태가 계속되는 것이며, 조재천 의원의 주장대로 하면 과도내각의 구성을 전제로 하게 되는 것이다. ‘개헌 후의 국회해산’을 정면으로 뒤집는 이와 같은 반대의견들은 민주당 안에서도 적극적인 반대에 부딪치고 있으며, 본인들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해명하고 있다. 민주당 대변인 조재천은 자신은 주요한 의원의 비상입법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