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7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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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勝憲辯護士 辯論事件 實錄 - 分斷時代의 被告들
등록번호 : 00949155
날짜 : 1994.12.15
구분 : 문서류 > 단행본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연보 산민 한승헌 선생 저술일람 한승헌의 삶과 생각/최종고 1. 제3공화국 시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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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勝憲先生 華甲紀念文集 - 한 辯護士의 肖像
등록번호 : 00949156
날짜 : 1994.12.15
구분 : 문서류 > 단행본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한승헌 변호사 회갑 기념 두 번째 문집으로, 한승헌 선생과 연고를 맽은 각계 인사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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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헌이 문익환 목사에게 보내는 서신]
등록번호 : 00950589
날짜 : 1991.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한승헌이 문익환 목사에게 '그날을 기다리며'라는 글귀를 적어 보낸 서신
사진사료 2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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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3.1절 기념강연 및 창립 7주년 행사 - 강사: 박형규, 한승헌
등록번호 : 00578505
날짜 : 1980.03.01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성남주민교회
요약설명 : 성남주민교회의 창립 7주년 행사에서 촬영한 사진 4매 기념강연 강사: 박형규, 한승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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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헌 통일시대국민회의 추진위 대표의 감사원장 취임 축하행사
등록번호 : 00915487
날짜 : 1998.03.11
구분 : 문서류 > 필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박용길 한승헌 윤순녀 김상근 함세웅 지선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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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매공원 가설연단 위에서 공원 가득 모인 청중을 둘러보는 한승헌 변호사
등록번호 : 00700678
날짜 : 1987.12.06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영상사료 1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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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창립
요약설명 : ‘민변’ 조건으로 총 112 건이 검색되었다. 소장사료 중 민변이 생산한 <민변 6개월 회고>(등록번호: 430992)가 민변 창립 이후 최초의 문서다. 그에 의하면 6개월간 회원은 51명에서 59명으로 증가했고, 사무실을 임대하여 상근사무원을 두었으며, 상세한 재정상황도 알 수 있다. 대내적으로는 리영희, 윤소영 교수 등을 초빙해서 강연을 들었으며 매주 금요일 노동운동, 통일론 등을 주제로 하는 세미나를 10여회 개최하여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 박종철, 권인숙 손해배상 사건들과 국보법 위반 등 형사사건 20여 건을 변론하였고 양심수 공청회를 열기도 하면서 각종 성명발표, 조사활동, 연대활동도 활발하게 벌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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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회복국민회의
요약설명 : 재야 각계인사 71인이 서명한 <국민선언>(등록번호 : 444379)은 발족 선언문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다. <국민선언>은 “정부가 곧 국가라는 전제적 사고방식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며 반정부는 반국가가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은 국가를 위하여 수시로 정부에 요망사항을 제시하며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며 시정을 촉구하고 나아가서는 정부의 퇴진까지 주장할 수 있다는 데에 민주체제의 발전적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총 7면에 이르는 <[민주회복 국민 선언대회-행사내용 메모]>(등록번호 : 483554)는 <국민선언>이 발표된 1974년 11월 27일 민주회복국민선언대회와 관련된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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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요약설명 : ‘김대중’ 조건으로 총 2509 건이 검색되었는데 그중 ‘김대중 내란음모’ 조건으로 총 32 건, ‘김대중 사건’ 관련 187건이 검색되었다. 김대중 씨의 상고이유서(등록번호: 018113)와 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의 <김대중 등 내란음모사건 항소심 공판기록>(등록번호: 109927)은 사건에 대한 전두환 신군부의 입장과 피해자 김대중 씨의 입장을 살펴볼 수 있는 주요사료이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된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 장로가 작성한 호소문(등록번호: 115063)과 송건호씨의 아들 송준용의 탄원서(등록번호: 042280) 외에 전두환 정권의 입장을 대변하는 내외문제연구소 발행의 단행본 <누구를 위한...
사료 콘텐츠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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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회복을 위한 국민선언
요약설명 : 12월 25일 YMCA회관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상임대표위원에 윤형중 신부, 대표위원에 이병린, 이태영, 양일동, 김철, 김영삼, 김정한, 천관우, 강원룡, 함석헌 등을 선임하였다. 국민회의는 지속적 활동을 위해 사무국을 설치하고, 1975년 3월초까지 7개 시도지부와 20여 개의 시군지부를 결성해 민주회복운동을 선도했다. 이렇게 국민회의가 전국적으로 호응을 받자 당국으로부터 다양한 탄압이 전개되었다. 서명자에게 서명철회나 사퇴를 강요하는가 하면, 불법 미행과 연행, 집을 수색하는 등의 탄압을 하였다. 또한 대표위원인 이병린 변호사는 엉뚱한 죄목으로 구속하였고, 한승헌 변호사는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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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조사
요약설명 : 유럽간첩단사건과 관련하여 김규남 등은 중앙정보부의 불법 연행과 강압적인 협작 고문 가혹행위 등으로 인해 허위자백을 하였다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은 이들에게 권총을 겨누며 협박하는가 하면 무차별 구타와 고문 등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의 유족들은 2009년 재심을 청구하여 2015년 12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했다. 1972년 사형이 집행된 지 43년 만이다. 김규남 의원 등이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되자, 한승헌 변호사도 자신의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2017년 6월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는1975년 한승헌 변호사가 반공법 위반으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사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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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촛불을 지켜라!”
요약설명 : 변호사는 정법회라 불리던 정의실천법조회에 소속되어 있었다. 강신욱, 이돈명, 한승헌 등 박정희 시대부터 민주인사들을 무료로 변론해온 원로급 변호사들부터 박원순, 이상수, 노무현 등 젊은 변호사들로 구성된 단체로 부천서성고문사건, 구로동맹파업 등 잇단 시국사건 재판에 헌신적으로 뛰고 있었다. 석방된 후에도 그는 여러 해 더 노동현장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1987년 대파업 이후 노동자의 권리가 크게 성장하면서 노동자 스스로 노동운동을 이끌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이론적 지도자가 아니라 노무사, 법무사, 변호사 같은 전문가들이었다. 열정적으로 노동운동을 해오던 대다수 지식인 출신들이 현장을 떠나게 되...
구술 컬렉션 1건
더 보기일지사료 2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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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검구속학생 15명 석방불구속 83명도 기소유예 처분
일자 : 1964.4.25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등 15명을 석방토록 한승헌 담당 검사에게 지시했다. 한편 검찰은 불구속으로 송치된 83명에 대해서도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오후 4시 석방된 학생 명단은 다음과 같다. 성용무(20. 서울문리대 4년), 정근식(24. 서울문리대 3년), 이진동(24. 서울문리대 3년), 현승일(23. 서울문리대 4년), 김도현(22. 서울문리대 4년), 이영구(23. 서울문리대 4년), 송영삼(23. 성대 학생회장), 김삼연(23. 성대 2년), 이성구(21. 성대 2년), 임학낙(19. 성대 2년), 정일용(24. 성대 4년), 권오철( 26. 성대 4년), 최영보(22. 동대 2년), 장장순(27. 동대 4년), 김희악(23. 동대 4년)『동아일보』 1964.4.25 석7면, 『경향신문』 1964.4.25 석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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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적」 사건 2회 공판
일자 : 1970.7.21
분류 : 분류없음 > 국회·사법부
요약설명 : 후에 읽어보니 「오적」 시가 사회의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시라고 생각되었다고 말했다. 이날 김영일 피고인(필명 김지하)은 이병린, 한승헌 변호인의 반대 심문에 “담시 「오적」으로 북괴를 이롭게 할 의도는 전혀 없었고 참다운 반공은 강한 국방력도 문제지만 우선 내적인 부정부패를 철저히 뿌리 뽑음으로써 국민을 단결시키는데 있는 것이고 따라서 부정부패 그 자체가 이적이 될지는 몰라도 이를 비판하는 소리가 이적이 될 수는 없다”고 진술했다.『경향신문』 1970.7.21. 7면; 『동아일보』 1970.7.21. 7면; 『매일경제』 1970.7.21. 7면; 『한국일보』 1970.7.22. 7면; 『국제신보』(석간) 1970.7.21. 7면; 『영남일보』 197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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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필화사건 변론 재개, 임중빈은 보석 허가
일자 : 1971.6.29
분류 : 분류없음 > 국회·사법부
요약설명 : 주거도 제한하지 않은 직권보석을 허가했다. 이에 대해 서울지검이규명, 김종건 검사는 “변론재개요청을 한 일이 없으며 재판부가 결정한 변론재개의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목 판사는 검찰 측의 변론재개요청을 한 일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검찰 측의 입장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 같다”고 말했는데 변론재개가 결정되기까지 검찰 측에서 전화로 여러 번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고인 측 변호인인 한승헌 변호사는 “공판을 열지 않고 미결인 채로 끌어가자는 속셈인것같다”고 논평했는데 작년의 「오적」 시 사건의 경우도 변론 도중 피고인들을 보석한 채 아직도 공판이 열리지 않고 미결로 남겨두어 피고인들이 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