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9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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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의문[일본 예속으로 직행하는 매국적 한일굴욕회담을 전면 중지하라!]
등록번호 : 00578372
날짜 : 1964.05.2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도현
요약설명 : 한일회담 등의 역사적 범죄를 자인하고 국민의 심판대에 설 것을 요구하며,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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宣言文[굴욕적 한일회담의 즉시 중단을 엄숙히 요구한다]
등록번호 : 00578391
날짜 : 1964.05.2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도현
요약설명 : 민족적 긍지를 배반하고 일본 예속화를 촉진하는 . 우리의 지성과 양심은 민족이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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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회담의 재조명
등록번호 : 01004594
날짜 : 1983.10.2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강현수
요약설명 : 한일회담에로의 요구 한일회담의 구체적 전개와 내용 한일회담이후의 한국사회...
사진사료 19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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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회담을 반대하며 시청 앞에 모인 수많은 학생들
등록번호 : 00742389
날짜 : 1964.03.25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시위는 1964년 3월 24일에 이어 25일에도 계속 이어졌다.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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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회담을 반대하며 서울시청 앞에 모인 수많은 학생들
등록번호 : 00742391
날짜 : 1964.03.25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시위는 1964년 3월 24일에 이어 25일에도 계속 이어졌다.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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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천심이다'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한일회담 반대시위를 벌이는 보인상고 학생...
등록번호 : 00742397
날짜 : 1964.03.27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대통령은 한일회담을 정부 방침대로 밀고 나갈 확고한 소신을 특별담화를 통해 선언했...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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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요약설명 : 이 사건과 관련하여 판결문, 도예종의 항소이유서, 신문스크랩, 사진 등 6건의 사료가 소장되어 있다. 사건의 발생과 진행과정은 신문스크랩 <인혁당사건관련 자료모음>(등록번호 : 492089)을 통해서 볼 수 있으며, <1차 인혁당 사건 판결문>(등록번호 : 534960)을 통해 박정권의 인혁당 사건 조작 시도가 여실히 무너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인혁당 사건 공판에서 피고자 도예종 등 13명 모습>(등록번호 : 709842)에서는 1차 인혁당 관련자의 면면을 볼 수 있다. 이 외에 1차 인혁당 사건의 시발이 되었던 한일회담 반대투쟁과 관련하여 145건의 사진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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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한일회담반대투쟁
요약설명 : ‘한일회담’ 조건으로 총 471건, ‘6·3’ 조건으로 총 219건, ‘민족적민주주의장례식’ 조건으로 총 19건이 검색되었다. 당시의 주요사료로는 당시 시위 참여자이자 민족주의비교연구회(민비연)의 김도현이 기증한 한일굴욕회담반대학생총연합회 명의의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檄文> (등록번호 : 578373), <弔 反民族的 非民主的 民族的民主主義 葬禮式> (등록번호 : 578390) 와 생산자 미상의 결의문 <일본 예속으로 직행하는 매국적 한일굴욕회담을 전면 중지하라!> (등록번호 : 578372)가 있으며, 6.3동지회가 생산한 <6.3 포럼 창간호> (등록번호 : 161613) 등으로, 문서사료는 많지 않다. 이에 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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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3일시위
요약설명 : ‘한일회담’ 조건으로 총 471건, ‘6·3’ 조건으로 총 219건이 검색되었다. 당시의 주요사료로는 6.3동지회가 생산한 <6.3 포럼 창간호> (등록번호 : 161613) 등으로, 문서사료는 많지 않다. 이에 비해 사진사료는 비교적 풍부하며 주로 경향신문사 생산사료들이다. <한일국교정상화회담을 굴욕회담으로 규정, 전국적 반대 운동의 시발점이 된 6.3 운동 당시 모습> (등록번호 : 723198), <한일회담 결사 반대를 외치며 가두시위에 나선 서울대학교 학생들> (등록번호 : 742493), <서울 시내에서 열린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을 연행해가는 경찰들> (등록번호 :742418), <6.3 출옥 학생과의 간담회...
사료 콘텐츠 1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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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정이 남긴 것들
요약설명 : 만들었다. 이렇듯 한-미-일 정권의 이해관계가 삼위일체로 맞아 떨어진 결과가 한일협정이다. 중앙정보부장 김종필과 오히라 일본 외상은 1962년 11월 12일의 비밀회담에서 한일회담 타결의 조건으로 일본이 한국에 무상공여 3억 달러, 유상 정부차관 2억 달러, 민간차관 1억 달러 이상을 제공한다는 메모 형식의 밀약을 체결했다. 이른바 ‘김종필-오히라 메모’를 서로 교환했다. 이는 협정체결 당시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 액수는 일본이 불과 몇 년을 침략한 동남아 각국에 지불한 액수보다도 적었다. 한일문제는 민족적 합의가 절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밀실에서 졸속 처리되었다. 그들은 국민들의 배상요구를 일본이 주장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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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정반대운동(6·3운동)
요약설명 : 1964년부터 1965년까지 전개된 굴욕적 한일회담과 한일협정체결에 반대하여 일어난 학생, 시민, 야당, 지식인들의 대규모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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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선생님이 전하는 주한 일본 대사관 이야기
요약설명 : 곡절을 거듭하니 한일 경제협력 관계의 중요성이 시급해진 한국 정부 최고위층에서 직접 알선에 나섰다. 결국 남궁연씨 소유이던 중학동의 현 부지로 결정되어 정부의 주선도 있고 해서 시가보다 훨씬 싼값(26만원 정도)으로 낙착되었다. 3. 「침략적 왜놈 근성 쇠뭉치로 후려쳐라」 처럼 리영희 선생의 글은 주한 일본 대사관의 설치 과정에서 보여준 우리 한국의 고위층이 지닌 역사의식의 잘 보여주고 있다. 55년 전 학생들이 들고 나왔던 플래카드의 「침략적 왜놈 근성 쇠뭉치로 후려쳐라」처럼, 일부 역사의식이 없는 언동에 대하여 「식민지 노예근성 쇠뭉치로 후려치고」, 정의롭고 평등한 한일관계 수립을 위해...
구술 컬렉션 29건
더 보기일지사료 1,02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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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조병옥·장면, 기자회견에서 5월 선거 희망
일자 : 1960.1.6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야당과 재야단체
요약설명 : 위하여 국민외교와 문화선전에 노력해야 하겠고, 더구나 대일외교에 있어서는 국교의 정상화를 기하고 한일통상협정, 어로협정 등을 체결할 용의가 있다. (4) 그 외의 구체적 정책은“민주당의 당면정책”으로서 이미 공표한 바 있거니와 앞으로도 적당한 기회에 상술할 예정이다. 三. 대공승리의 요체 1960년 동서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어 양대 진영이 평화적인 경쟁시대로 들어갈 전망도 보인다. 이 시기에 있어서 대공승리를 기하는 요체는 일당독재의 철권정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모든 면에서 북한보다 월등한 업적을 급속히 쌓아올리는데 있는 것이매, 참다운 민주정치를 향상시키고 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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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국회 밖에서 3월선거 반대하기로 결정
일자 : 1960.2.5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야당과 재야단체
요약설명 : 부정선거의 규명, 비료가격, 곡가 저락 방지, 예산의 부당 방출, 한일회담문제, 서울역 대참사의 책임규명, 환율변경 문제 등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양 경시하고 그들의 당리당략에 선거운동만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더욱이 이기붕씨는 일면에서는 자유당의 실질적 지도자이고 타면에서는 국회의장이며‘여야가 합심해서 안건을 처리하기 바란다’는 개원식 식사를 보내온 사람이므로 응당 자유당 의원을 출석시킬 능력과 의무가 있다. 민주당 대표 5인에 대하여 ‘당간부와 상의해서 하겠다’고 언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의연히 불참을 계속시키고 있음은 능력의 부족인가? 의무의 태만인가? 사회도 못하는 사람이 이것조차 못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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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회담 중단
일자 : 1960.4.22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국제관계 및 해외보도
요약설명 : (도쿄 22일발 로이터통신) 후지야마일본외상은 22일 각의(閣議)에서 한·일 양국관계정상화 회담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는 한·일관계 정상화 회담이 한국의 반정부소요로 당분간 중단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한·일양국회담은 지난 4월 15일 5개월간에 걸친 중단에 이어 동경에서 재개된 바 있다. 후지야마는 이날 오전 각의에서 한국의 소요사건에 관해 보고하였다. 그는 일본이 서울에 외교대표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서울로부터의 공식적인 보고는 얻을 수 없지만, 여러 소식통에서 모집한 정보는 폭동의 원인 및 성격이 거의 각 신문들이 보도한 내용과 같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고 말하였다.『조선일보』1960. 4. 23 조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