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7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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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退書[洪性宇가 韓國基督敎敎會協議會會長에게 보낸 수발신 문서]
등록번호 : 00112466
날짜 : 1980.07.1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洪性宇가 韓國基督敎敎會協議會會長에게 보낸 수발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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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론요지서[홍성우변호인 변론(求刑后)(高大三民斗)서울大三民斗界論과 同一함]
등록번호 : 00051488
날짜 : 1986.03.07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춘옥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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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우 변호사의 회장 취임 수락 연설 요지
등록번호 : 00874300
날짜 : 198*.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선경식
요약설명 :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담당했던 홍성우 변호사의 회장취임 수란 연설 요지 내용 관련.
사진사료 8건
더 보기영상사료 2건
더 보기박물사료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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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우변호사의 변론자료 CD 1]
등록번호 : 00457773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홍성우
요약설명 : 1.윤제갑외 4인 2.장기표 3.이상백 4.유시민 5.윤호중 6.구국학생 연맹사건 7.김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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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우변호사의 변론자료 CD2]
등록번호 : 00457778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홍성우
요약설명 : 1.신현준 2.이부영 3.정승화 4.이재오 5.이주호 6.정진동 7.녹두출판사(시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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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우 변호사의 변론자료 CD3]
등록번호 : 00457781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홍성우
요약설명 : 1.YH사건 2.허인회 3.인권일지 4.문용식 5.김문수 6.김근태 7.공계진 8.권인숙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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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창립
요약설명 : ‘민변’ 조건으로 총 112 건이 검색되었다. 소장사료 중 민변이 생산한 <민변 6개월 회고>(등록번호: 430992)가 민변 창립 이후 최초의 문서다. 그에 의하면 6개월간 회원은 51명에서 59명으로 증가했고, 사무실을 임대하여 상근사무원을 두었으며, 상세한 재정상황도 알 수 있다. 대내적으로는 리영희, 윤소영 교수 등을 초빙해서 강연을 들었으며 매주 금요일 노동운동, 통일론 등을 주제로 하는 세미나를 10여회 개최하여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 박종철, 권인숙 손해배상 사건들과 국보법 위반 등 형사사건 20여 건을 변론하였고 양심수 공청회를 열기도 하면서 각종 성명발표, 조사활동, 연대활동도 활발하게 벌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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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회복국민회의
요약설명 : 재야 각계인사 71인이 서명한 <국민선언>(등록번호 : 444379)은 발족 선언문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다. <국민선언>은 “정부가 곧 국가라는 전제적 사고방식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며 반정부는 반국가가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은 국가를 위하여 수시로 정부에 요망사항을 제시하며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며 시정을 촉구하고 나아가서는 정부의 퇴진까지 주장할 수 있다는 데에 민주체제의 발전적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총 7면에 이르는 <[민주회복 국민 선언대회-행사내용 메모]>(등록번호 : 483554)는 <국민선언>이 발표된 1974년 11월 27일 민주회복국민선언대회와 관련된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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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
요약설명 : 총 63 건 , ‘문부식’ 조건으로 총 40 건, ‘최기식’ 조건으로 총 68 건이 검색되었다. 김현장 외 15명에 대한 공소장(등록번호 : 112095), 김현장, 문부식의 최후진술(등록번호 : 523063, 483473), 김현장의 항소이유서(등록번호 : 482979 )문부식의 항소이유서(등록번호 : 482977 )와 탄원서(등록번호 : 482984), 최기식 신부의 양심선언 (등록번호 : 207833 ), 홍성우 변호사의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 변론내용>(등록번호 : 482965), 최기식 신부의 강론 <강론-부산 미문화원 사건과 우리의 나아갈 길>(등록번호: 484128 ), <최기식신부사건 공판에서의 함세웅 신부 증언>(등록번호:100946 ) 등 사건전체를 이해할 수...
사료 콘텐츠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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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영혼, 조영래 변호사
요약설명 : 신속히 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대책위는 이돈명 홍성우 조준희 황인철 등 네 명을 지휘부로 두고 조영래 이상수 김상철 박원순 등을 실무 변호사로 구성했다. 이튿날인 7월 2일, 조영래는 선배인 홍성우 변호사와 더불어 권인숙을 면담했다. “문귀동은 저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어요.” 권인숙은 수치스러움을 무릅쓰고 진실을 이야기해 주었다. 조영래는 그 용기에 감탄하면서도 민주화운동의 의지를 꺾기 위해 신성해야 할 성마저 고문의 도구로 사용하는 독재정권의 추악함에 들끓는 분노를 느꼈다. 다음날 조영래는 문귀동 경장을 강제추행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10월 3일 첫 공판이 열렸다. 조영래는 재판 당일 새벽녘까지 심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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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갇힌 변호사 강신옥
요약설명 : 갑자기 휴정을 선포하였고 그들은 퇴정을 해버렸다. 곧바로 정보부 요원들이 들이닥쳐 홍성우 변호사와 강신옥 변호사를 연행해갔다. 그날은 결심공판일로, 피고인들의 최후진술을 남겨놓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끌려간 걸 보고 모두 놀라고 흥분하기 시작했다. 변호사가 변론 중에 구속되는 듣도 보도 못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사형을 구형받은 이철의 최후진술은 피를 토하는 구호가 되었다. “유신체제에는 끝까지 반대할 것이다. 그 자체가 반민주 반민족적인 것이다. 반유신을 이유로 빨갱이로 몰지 말라. 나는 떳떳이 죽겠다.” 그리고 김병곤이 외쳤다. “사형구형을 받아서 영광입니다!” 두 변호사는 군사법정에서 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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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역사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요약설명 : 그는 이돈명․ 홍성우․ 황인철 등 인권변호사들과 함께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주역인 문부식․ 김은숙 등의 변론을 맡았던 것이다. 그리고 3년 후인 1985년 5월 3일 부산민주시민협의회(부민협) 결성에 참여하고 1986년경부터는 변호사업을 중단하다시피하며 민주화운동에 전념했다. 1987년 6월항쟁의 흐름속에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가 결성되자 부산 국본의 상임위원장을 맡아 부산 민주화운동의 야전사령관이 되어 거리에 나왔다. 이즈음의 그는 인권변호사를 넘어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뛰는 운동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노동자대투쟁이 한창이던 1987년 8월, 노무현은 거제 대우조선 파업현장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진...
구술 컬렉션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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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희
면담자 : 박원순
일자/장소: 2002. 9. 7.(1차), 10. 5.(2차)/아름다운재단 박원순 변호사 사무실
요약설명 : 조준희, 홍성우 변호사 집단구술] 학창시절과 법대 진학 사연, 변호사 되기까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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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명
면담자 : 박원순
일자/장소: 2002. 9. 7.(1차), 10. 5.(2차)/아름다운재단 박원순 변호사 사무실
요약설명 : 조준희, 홍성우 변호사 집단구술] 학창시절과 법대 진학 사연, 변호사 되기까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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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우
면담자 : 박원순
일자/장소: 2002. 9. 7.(1차), 10. 5.(2차)/아름다운재단 박원순 변호사 사무실
요약설명 : 조준희, 홍성우 변호사 집단구술] 학창시절과 법대 진학 사연, 변호사 되기까지의 ...
일지사료 1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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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신민당원들이 지역 선관위 사무실에서 농성, 잇따른 강연 중복에 항의
일자 : 1971.5.16
분류 : 분류없음 > 재야·야당·지식인·종교인
요약설명 : 신민당 충남 제9구지구당(홍성, 청양) 위원장 복진풍 씨 등 100여 신민당원은 16일 오후 1시쯤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충남 제9구지역구 선관위사무실에 몰려와 2시간 동안 항의농성을 벌였다. 신민당에 따르면, 선관위 측의 잘못으로 16일 오전 홍성우시장 강연이 합동강연과 17일 청양시장 강연이 공화당 측 강연과 그리고 19일 오전 광천우시장 강연과 22일의 청양시장 강연도 합동강연 및 공화당 강연과 중복되었다. 이들은 선관위 측이 이를 시정하겠다는 각서를 써준 끝에 해산했다.『동아일보』 1971.5.17.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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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검에서 고려대 구속학생 3인 보석을 허가
일자 : 1971.5.31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31일 서울형사지법홍성우 판사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려대 총학생회장 김병수 군과 학생 오흥진, 유정인 군 등 세 피고인에 대해 보석을 허가했다. 이들은 이번 학생데모에 관련 구속기소된 학생 중에서 처음으로 풀려나게 된 것으로, 보석금은 각 1만 원, 주거는 자택으로 제한되었다.『동아일보』 1971.5.31. 7면; 『경향신문』 1971.5.31. 7면; 『중앙일보』 1971.5.31. 7면; 『한국일보』 1971.6.1.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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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생 3명, 교련반대 데모 사실심리 마쳐
일자 : 1971.7.9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9일, 서울형사지법홍성우 판사는 고려대교련반대 데모사건과 관련 기소된 고려대 총학생회장 김병수(29, 심리학과 4학년), 오흥진(22, 정치외교학과 3학년), 유정인(22, 철학과 3학년) 등 3명에 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사건 첫 공판을 열고 사실심리를 모두 마쳤다. 변호인 측은 데모 당시와 사정이 많이 변했음을 들어 검찰 측의 공소취하를 요청했으나 관여 최상엽 검사는 이를 거절했다. 이들은 지난 5월 14일 오후 8시 서울운동장에서 있은 고·연전 야구경기를 마치고 고대생 1백 여 명을 이끌고 안암동로터리까지 교련반대 데모를 주동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가 재판부의 보석결정으로 풀려났었다. 다음 공판은 23일 2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