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 콘텐츠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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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법난을 증언한다
요약설명 : 1980년 10월 27일 새벽, 광주학살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신군부는 계엄사령부에 합동수사본부 합동수사단을 설치하고, '45계획' 작전을 실행했다. 이 작전의 목표는 불교계 정화였다. 작전의 주요 내용은 보안사와 경찰력을 동원해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을 비롯해 전국 사찰을 일시에 급습하고, 승려와 불교계 인사를 연행한 것이었다. 합동수사단은 먼저 10월 27일 조계종 총무원장 월주스님 등 153명을 연행했다. 이어서 전국의 사찰·암자 5,731개를 일제 수색해 1,076명을 무차별 연행·고문했다. ‘10.27법난’이었다. 10.27법난은 신군부가 종교부문, 특히 불교계에 이른바 정화조치를 실시한 것이다. 정화조치란 전두환 집권 후 실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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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사와 민간인 사찰
요약설명 : 위해 군사독재정권에 맞서며 감옥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민주화운동 인사들에게도 피하고 싶은 장소가 있었다. 남산, 남영동, 서빙고, 송파로 불렸던 곳이다. 중앙정보부(안기부), 치안본부, 보안사(기무사)의 대공분실. 이곳에서 민주화운동 인사뿐만 아니라 정권의 눈에 거슬리거나 정권유지를 위한 먹잇감이 된 사회각계인사들과 일반 서민들이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좌익사범이나 간첩으로 둔갑하곤 했다. 일반 경찰서에서도 고문은 일상적으로 행해졌지만, 이 네 곳의 고문은 악랄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중 “서빙고호텔”로도 불렸던 보안사 서빙고 분실의 고문은 가장 무지막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는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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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 또 다른 이름 쿠데타
요약설명 : 계엄령은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저격되면서 10월 27일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으로 확대되었으며, 1980년 5월 17일에는 제주도까지 확대되어 456일 동안 지속되다가 1981년 1월 24일 해제되었다. 2016년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다시 떠오르는 일제 예비검속의 기억 2016년 초겨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전 국민이 “이게 나라냐”라며 거센 분노를 쏟아내고 있을 때, 제1야당 대표가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가 돌고있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야당 대표의 이야기를 언론을 통해 접하며 맨 처음 떠오르는 생각은 1980년 5월 17일의 일제 예비검속의 기억과 함께 1990년 폭로된 보안사 민간인 사찰사건의 기억이다. “설마”와...
구술 컬렉션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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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면담자 : 송철원
일자/장소: 2018. 8. 16/현대사기록연구원 회의실
요약설명 : 1군계엄사령부 보통군법회의검찰부, 인권유린, 고문, 폭행, 만기출소, 새마을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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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각
면담자 : 민족문제연구소(김민철)
일자/장소: 2010년 10월 28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회의실
요약설명 : 계엄군이 진입할 수가 없어 실태 파악이 불가능하자, 당시 계엄사령부 출입기자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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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
면담자 : 민족문제연구소(이준식, 조세열, 강동민)
일자/장소: 2010년 7월 20일, 9월 27일/구술자의 사무실
요약설명 : 1만 2천명의 병력이 경복궁에 주둔했다. 4) 경무대와 계엄사령부의 시위 수습...
일지사료 1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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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신문보도 검열 실시
일자 : 1960.4.19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군
요약설명 : 19일 밤 8시 송요찬계엄사령관은 계엄법 13조에 의거해 언론 및 출판에 대한 조치를 발표하였다. 또한 검열제가 실시되기 전의 신문을 지방에 일절 발송치 못하게 하는조치를 취하였다. 군 당국은 밤 9시부터 신문보도에 대한 검열을 시작하였다. 원고검열은 19일 오후 9시부터 육군본부 보도국 분실에서 한다고 발표하였다.『동아일보』1960. 4. 20 석1·3면 ; 출처 :『부산일보』1960. 4. 20 조3면 『조선일보』1960. 4. 20 조1면 ; 현역일선기자동인 편, 171-173쪽통신사에 시달된 취재 및 편집상의 요주의 사항이 검열지침은 계엄사령부 검열관 김원섭 중령이 4월 19일 밤 각 보도기관에 내린 것이다(학민사 편집실 편, 82쪽).一. 데모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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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 서울 입성
일자 : 1960.4.19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군
요약설명 : 비상계엄이 선포됨과 동시에 군은 서울지구에 있는 육군공병대 병력을 무장시키고, 탱크 일개 중대를 선두로 한 예비병력인 현역 1개 사단을 서울을 향해 진격시켰다.오후 8시 40분 경, 송요찬계엄사령관의 지휘로 약 000명의 병력을 보유한 육군 15사단 소속부대가 가평 방면에서 서울로 출동한 것이다. 한편, 탱크 00대, GMC트럭 00대도 함께 진입하여 시내요소에 배치되었고, 일부 해병대원도 동원되어 사단이 서울에 진주할 때까지의 경비를 담당케 하였다.『한국일보』1960. 4. 20 조1면. (○은 검열 삭제 ; 편집자)서울로 진주한 사단은 밤 10시를 기해 탱크부 대를 선두로 시내에 진출하여 시위대원들을 해산시켰다.부대가 이동하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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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요찬 계엄사령관 포고문 발표
일자 : 1960.4.19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군
요약설명 : 322-323쪽. 계엄사령부와 사단장이 엄달한 위의 4가지 사항은 시골에서 소집되어 입대한 후 총 쏘는 것 밖에는 배운 것이 없는 이들이 선동에 휩쓸려 총을 쏘거나 하여 일을 저지르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인한 것이었다고 한다. 또한 긴급출동으로 사병들을 교육할 시간이 없던 장교들은 시위대의 진압법, 가령 “집단을 중점적으로 해산시키고 착검하여 (형으로 헤치고 들어간다. 약간 상하는 것은 괜찮지만 쏘아서는 안된다”는 교육을 이동하는 트럭 안에서 시켰다고 한다(육군본부군사감실 편,38쪽).서울지구 계엄사령관 포고문 제1호현하 북한 괴뢰는 남침의 기회만을 노리고 호시탐탐하는 차제에 근간 서울 시내의 공공질서는 극단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