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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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t Sheet #7 THE DEATH PENALTY FOR KOREAN YOUTH[민...등록번호 : 00471746
날짜 : 1974.05.1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Jones, Linda Huffman
요약설명 : 민청학련 사건의 배경. Japan Christianity Activity News의 관련 기사. 1974년 4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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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문[민청학련 사건 관련]등록번호 : 00835975
날짜 : 1978.04.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긴급조치4호 자체가 지닌 부당성입니다. 반공법 적용에 관한 문제입니다. 등 19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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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t Sheet #7. The Death Penalty for Korean Youth등록번호 : 00913607
날짜 : 1974.05.1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Jones, Linda Huffman
요약설명 : - 1974년 4월 3일, 최대 사형까지 내릴 수 있는 긴급조치 4호 선포. 4월 25일...
사진사료 2건
더 보기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2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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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님, 총무님, 우리들의 총무님_ 김한림요약설명 : 달 만에 군사 법정에서 만난 것이다. 학생들의 시위가 예년보다 심해지자 박정희 정권은 1974년 4월 3일, 유신헌법 비판에 대해 최고 15년 형을 내릴 수 있는 이전의 긴급조치와 달리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 긴급조치 4호를 선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4월 3일을 기해 전국적으로 시위를 전개하기로 했고, 미리 이 상황을 파악한 박정권은 학생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민청학련사건이었다. 박정권은 학생들이 공산정권 수립을 위해 폭력혁명을 일으킨 것이라 주장했지만 사실 학생들은 유신헌법을 반대하고 민주주의의 회복을 주장했을 뿐이었다. 민청학련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었지만 사실 학생들은 제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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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도 떨어뜨린다_ 공포정치의 산실 중앙정보부요약설명 : 1974년에는 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중정은 유신체제를 부정하는 학생들의 조직인 이른바 ‘민청학련’의 배후로 ‘인혁당재건위사건’을 만들어 냈다. 도예종, 이수병, 여정남 등의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어 국가 전복을 위해서 대학생을 조직하고 간첩 활동을 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거짓이었다. 거짓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자비한 폭력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라는 중앙정보부의 슬로건은 차라리 ‘없는 간첩도 만들어 내어라!’가 더 맞았을지 모른다. 잠 안 재우기, 인간성을 부정하는 쌍욕, 발길질, 주먹질, 몽둥이질, 무릎에 각목을 끼우고 짓밟기는 예사였고, 나중에는 거꾸로 매달아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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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요약설명 : 년 2월 1일 전남 강진군 칠량면 동백리에서 태어나, 광주일고를 거쳐 1971년 늦은 나이에 전남대학교 축산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그해 12월 30일 교련반대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무기정학을 받았다. 이때부터 그에게 끝없는 고난이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이제 공부는 끝이다. 나는 앞으로 목숨 걸고 저놈들과 싸우겠다!”라고 선언한 그는 전남대 학생 동아리인 민족사연구회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후배 정상용 등과 더불어 사회과학 공부와 학생운동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1974년 4월 들어 윤한봉은 민청학련사건으로 유신헌법반대시위를 벌이다 체포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죄, 내란예비음모죄, 긴급조치 1호, 4호 위반죄...
구술 컬렉션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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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섭
면담자 : 정호기,이영재
일자/장소: 2025년 6월 24일,25일/민주화운동기념관 교육실
요약설명 : 활동했다. 1974년 4월 3일 시위로 연행되었다가 40일 만에 훈방으로 석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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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일자/장소: 2123.6.13./전주시 기접놀이전수관
요약설명 : 민주화운동 - 1974년 전북대 원예학과 입학, 1970년대 전반기 전주고 학생들의 항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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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규
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일자/장소: 2023.7.3./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상강원지부 사무실
요약설명 : 농사를 짓다가, 1973년 경북대학교 입학 - 1973년 경북대 민주화운동의 지형, 1974년,...
일지사료 1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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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사건 발생
일자 : 1974.4.3
분류 : 민주화운동 > 학생
요약설명 : 경제청산과 자립경제체제 확립. 이의 관철 위해 최후일인, 최후일각까지 투쟁선언. 행동사항은 “서울시내 전학생, 시민은 오후 2시 시청 앞 광장, 청계천 4~5가에 집결할 것.”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1974년 4월 3일 민청학련이 북한의 사주에 의하여 정부전복을 기도하였다며 긴급조치 4호를 밤 10시를 기해 선포했다. 이후 학생을 중심으로 1,024명이 연행되어 253명이 군법회의에 송치되고 그중 169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조선일보』 1974.04.04. 1면; 『경향신문』 1974.04.04. 1면; 『동아일보』 1974.04.04. 1면; 『매일경제』 1974.04.04. 1면; 『중앙일보』 1974.04.04. 1면;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1983. 『1970년대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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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 민청학련 배후에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가 있다고 발표
일자 : 1974.4.25
분류 : 정치·국제관계 > 정부·여당
요약설명 : 기각된 지 20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사형집행을 당했다. 즉 2차 인혁당사건은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건이었다. 2002년 9월 12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인혁당사건이 중앙정보부의 조작사건이라고 발표하였다. 2005년 12월 27일 재판부는 2차 인혁당사건(인혁당재건위사건)에 대한 재심 소를 받아들였다. 2007년 1월 23일, 서울 중앙지법에서 인혁당재건위사건 관련자 8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했다. 또한 2007년 8월 21일 인혁당재건위사건 희생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의 소에서 서울지방법원은 국가가 총 637억여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사건 일지-1974년 4월 3일 : 민청학련사건 발생 -1974년 4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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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군법회의 검찰부, 민청학련 관련 이철 등 54명 구속 기소, 745명 훈방
일자 : 1974.5.27
분류 : 민주화운동 > 학생
요약설명 : 1974.05.27. 1면; 『부산일보』 1974.05.27. 1면;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1983. 『1970년대 민주화 운동과 기독교』, 278쪽; 『조선일보』 1974.05.28. 3-4면민청학련사건 일지-1974년 4월 3일 각 대학에 ‘민청학련’ 명의의 선언문이 배포, 긴급조치 4호 선포 -1974년 4월 9일 민청학련 관련자 자진신고 마감(4월 8일)까지 총 261명 자수했다고 정부 발표. 그중 194명 훈방, 67명 조사 중 -1974년 4월 13일 민청학련 관련 서울대생 이철, 강구철, 유인태에게 현상금 200만원 걸어 전국에 지명수배 -1974년 4월 25일 민청학련 수사결과 발표. 240명 조사, 배후에 인혁당재건위, 조총련, 일본공산당 복합작용, 청와대 점거 획책 -1974년 5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