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사료 2건
더 보기 -
긴급조치 7호 발표와 함께 휴교령이 내려진 고려대학교 정문 앞을 군인들이 총을 들고 봉쇄한...등록번호 : 00742867
날짜 : 1975.04.1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1975년 4월 8일 17시를 기하여 고려대학교에 대하여 휴교를 명한다. 2. 동교 내에서...
-
휴교령이 내려진 고려대 정문 앞에 출동한 군인들등록번호 : 00742868
날짜 : 1975.04.1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1975년 4월 8일 17시를 기하여 고려대학교에 대하여 휴교를 명한다. 2. 동교 내에서...
사료 콘텐츠 11건
더 보기-
김상진 열사의 양심선언문 낭독 육성요약설명 : 있다. (중략) 학우여! 아는가! 민주주의는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 투쟁의 결과라는 것을(후략)" 1975년은 유신헌법 선포 이후 유신철폐, 민주회복 국민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펼쳐진 해였다. 1975년 4월 11일 서울대에서 3차 시국성토대회가 열렸다. 대회 전날 농대생 김상진은 '대통령에게 드리는 공개장'과 '양심선언'을 작성하였다. 시국성토대회의 세 번째 연사로 나온 김상진은 유신의 위법성과 독재정권의 허위성을 고발하는 양심선언문을 읽던 중 칼로 자신의 왼쪽 복부를 찔렀다. 두 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다음날 서울대병으로 이송 중 앰뷸런스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김상진의 나이 만 25세였다. 유신이라는 시대 상황에서 청년은...
-
시노트 신부의 간절한 외침 - 조작이다! 조작이다!요약설명 : 중심으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결성되던 날인 1974년 9월 26일은 마침 한국순교자대축일이었다. 그날 ‘순교자 찬미기도회’를 마친 사제와 수도자, 신자 1천여 명은 “유신헌법 철폐하라” “민주헌정 회복하라” “구속자를 석방하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구호를 외치며 명동성당에서 명동파출소 앞까지 거리시위를 벌였다. 그때 시위자들의 무리 속에 있던 시노트 신부는 커다란 덩치를 이용하여 경찰들을 밀치고 그들이 머리에 쓴 보호장구를 벗기며 진압에 대항했다. 그는 온통 미제 장비로 중무장한 전경들과 마주치면서 순간 자신의 나라 미국에 대한 분노와 함께 부끄러움이 일었다. 1974년 봄부터 1975년 4월 30일 강제추방...
-
김대중납치사건-유신체제를 뒤흔든 뇌관요약설명 : 월 15일과 23일에 유신반대 성명과 양심선언을 발표해 반유신운동의 초석을 놓았다. 언론인과 지식인들이 유신체제의 폭력 앞에 침묵할 때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발표한 양심선언은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중앙정보부는 민주화운동 세력을 더욱 와해시키기 위해 ‘민청학련사건’을 발표했다. 박 정권은 민청학련의 배후에 ‘인혁당’이 존재한다는 흑색선전으로 공포정치를 펴나갔다. 1975년 4월 9일, 사법 당국은 인혁당 관련자 8명을 사형판결이 확정된 지 18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사형을 집행했다. 이 사건은 세간을 거대한 충격 속에 빠뜨렸다. 국제법학자회는 이 사형집행을 ‘사법살인’이라고 칭하고 이날을 ‘사법사상...
구술 컬렉션 11건
더 보기-
박우섭
면담자 : 정호기,이영재
일자/장소: 2025년 6월 24일,25일/민주화운동기념관 교육실
요약설명 : 년 4월 3일 시위로 연행되었다가 40일 만에 훈방으로 석방되었다. 1975년 민청학련...
-
장수원
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일자/장소: 2023.7.21./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상강원지부 사무실
요약설명 : 경북 영양 일대의 상황 - 중학교 3학년 때 가족 전체가 경북 안동으로 이사, 2년 후...
-
박명규
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일자/장소: 2023.7.3./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상강원지부 사무실
요약설명 : - 1973년 12월 2일, 경북대 시위, 1970년대 경북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여학생들 -...
일지사료 8건
더 보기-
도예종·김정강학생데모 배후로 수배
일자 : 1964.7.6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64년 초에는 정부의 등록금 인상조처 반대를 표면적인 명분으로 국가전복투쟁을 시도, 김중태 등을 배후에서 움직여 3·24 이후 학생 데모를 계속 일으켜 북괴의 적화통일에 합류하기 위해 책동했다. ▶도예종(전 민자통조사위원장, 전 민족민주청년동맹 경북도연맹 간사장) 5·16 후 민자통 등 반국가단체에 가입 활동한 혐의로 수배되자 도주, 김정강의 상부선으로 그를 배후에서 조종했다.『경향신문』 1964.7.7 석3면불꽃회 사건1964년 7월 6일 정부는 “학생 데모를 공산 세력이 배후에서 조종한 증거 문건을 압수하고, 도예종(당시 41세, 1975년 2차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과 김정강(서울대 정치학과 3년)을 국가보안법 위반 및 내란 소요...
-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사건 발생
일자 : 1974.4.3
분류 : 민주화운동 > 학생
요약설명 : 통해 선고된 형량만 1,650여 년에 이른다. 인혁당재건위 관련자 여정남 등 8명은 1975년 4월 9일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된 지 20시간도 되기 전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전격적으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러나 이철 등은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형이 집행되지 않았다. 1974년 7월 15일 일본인 다치카와 마사키와 하야카와 오시하루도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유신정권 타도를 내걸고 박정희 체제에 정면으로 맞섰던 민청학련사건은 몇 가지 점에서 운동사적인 의의를 갖고 있다. 첫째, 이 사건을 통해 형성된 진보적 학생운동세력이 1970년대 중반 이래 민주화투쟁의 중간지도부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민청학련세대 가운데 상당수는 출옥 후...
-
비상군법회의 검찰부, 민청학련 관련 이철 등 54명 구속 기소, 745명 훈방
일자 : 1974.5.27
분류 : 민주화운동 > 학생
요약설명 : 기각되자 항의계속, 재판장은 퇴장명령 -1974년 9월 6일 민청학련사건 주모자급 48명, 일본인 2명 등 50명 선고 공판, 27명 중 여정남 사형, 3명 무기, 23명 징역 20~12년, 자격정지 15~12년, 일본인 2명 징역 20년, 자격정지 15년 선고 -1974년 9월 19일~21일 세계교회협의회(WCC) 사절단 내한, 민청학련사건 조사하고 정부측과도 면담 -1974년 11월 11일 민청학련 구속자 가족 50여 명, 밤 9시부터 명동 가톨릭여학생회관서 ‘내 아들, 내 남편 석방, 구속 민주인사 석방‘을 요구하며 단식농성 -1974년 11월 14일 오전 8시 반경 ‘내 아들 석방하라, 내 남편 석방하라, 구속민주인사 석방’ 등 휘장 두르고 종로 3가까지 1.5km 가두시위, 경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