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4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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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사단, 27사단 내 사고 관련-첨부2 부상자 명단(8명)]
등록번호 : 00887958
날짜 : 198*.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김연성 부상일시, 장소 81.6.20.21:00 5사단 36연대 전투지원중대 감호분소 연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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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단 연구자료 87-1 한국농업과 농민운동(5차 개정판)
등록번호 : 00091240
날짜 : 1987.06.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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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제5회 기록문화시민아카데미
등록번호 : 00154765
날짜 : 2000.11.3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사진사료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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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때 북한군을 맞아 처음 분전한 곳인 죽미령에 세운 유엔군초전기념비
등록번호 : 00719894
날짜 : 1974.11.16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1950년 7월 5일 미 제24보병사단 소속 스미스 전투부대가 북한군과 최초의 전투를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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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단체교섭 5차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악수 나누고 있는 이준 한국통신사장과 최병훈 한통노...
등록번호 : 00710508
날짜 : 1995.06.14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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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신 노사단체 교섭 5차 회의에서 사측의 입장을 발표하는 임원
등록번호 : 00738753
날짜 : 1995.06.13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영상사료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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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광주! - 광주비디오 제작이야기
요약설명 : 당시 미국 대통령과 국무부 장차관, 주한미국대사 등은 1980년 5월 21일에 계엄군이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발포를 감행한 뒤 긴급국가안보회의를 열어 후속조처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은 이에 앞서 공수특전단의 광주 투입을 사전에 알았으며, 진압군으로 광주에 투입된 국군 20사단의 이동을 승인했던 것이다. 당시 미국 정부의 이런 입장을 당연히 모르고 있던 많은 이들은 미국의 태도에 실망했다. 그러한 정황 속에 제네바에서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WCC) 활동을 하다가 때마침 뉴욕으로 온 박상증 목사는 광주항쟁에 대한 사실을 제대로 알리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객관적이고도 효과적으로 광주를 알리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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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불교운동연합 창립-반독재민주화 기치 내건 불교사회운동
요약설명 : 여기서도 여익구는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여익구는 스님들과 함께 대학생불교연합 전국법사단을 조직했다. 이 같은 흐름 속에 각 도시마다 도심포교당이 활발히 개설되었다. 여래사 운동은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래사 운동은 불교사회주의운동이다.” 1982년 초에 이르러 신군부는 여래사 운동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문 스님과 돈연 스님은 신군부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1983년 7월 부산 범어사에서 ‘전국청년불교도 연합대회’를 개최했다. 1981년, 그는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불교 대중화와 불교 민주화를 주도해나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불교는 그동안 침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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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실천문인협의회 - 표현의 자유를 온 몸으로 외친 문인들
요약설명 : 잠시 정지되었지만, 자실 문인들은 1984년 개편 총회를 거쳐 1987년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 5공 정권과 맞서 싸웠다. 1987년 9월 17일 민족문학작가회의(민작)로 확대 개편한 뒤 1996년 6월 5일 자실과 민작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문학의 발전에 기여할 목적으로 사단법인으로 등록했으며, 2007년 12월 8일 한국작가회의로 거듭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엄혹했던 유신의 한복판,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문학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외친 유일한 문인 단체로서 겨울공화국의 폭압성을 들부수는 ‘광야에 외치는 소리’였다. 당시 문인들이 보여준 불굴의 정신은 탁하고 질식할 것만 같은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한 줄기 샘물, 청량한 바람이었다....
구술 컬렉션 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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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원
면담자 : 이영재, 정호기
일자/장소: 2020.7.9. / 한양대 연구소 회의실
요약설명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이윤성 사망사건 직후 보안부대로 끌려가 조사받은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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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보
면담자 : 이영재, 정호기
일자/장소: 2020.7.9. / 서울시 구술자 사무실
요약설명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군복무 중 사신(편지)사건으로 보안사령부로 연행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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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규
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일자/장소: 2023.7.3./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상강원지부 사무실
요약설명 : 맡았다. 5월 중순 남부경찰서로 연행되었고 계엄사를 걸쳐 50사단 헌병대에 수감되...
일지사료 1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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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 모의투표용지는 훈련용이라 주장
일자 : 1960.3.9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증거는 포착하지 못했으나 세인의 의혹을 살 우려가 있기 때문에 사용을 삼가라고 자유당 경주시당에 시달하였다. 또한 중앙선거위원회의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투표용지를 경주시 개표구 선위에 보관 할 것을 결정했으나, 9일 밤까지도 투표용지는 경주시 선거위원회에 보내지지 않고 자유당 경주시당에서 전량 보관하였다.『동아일보』1960. 3. 10 조3면, 1960.3. 11 조3면 한편 중앙선거위원회는 9일 오후, 민주당이 제기한 강원도 화천군 선거위원회에서 준비하였다는 투명투표용지설과 전남 광주시 상무대 및 제31사단의 영내 투표소 설치와 일반인 참관거부에 관해 조사한 결과 사실과 다르다고 판명하였다.『동아일보』196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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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예비사단이 경찰에 연막탄 33발 제공
일자 : 1960.3.26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국회
요약설명 : 국회마산사건조사반은 26일 오후 조사에서 시장, 특무대장, 39사단장을 비롯한관 계증인을 심문하고, 마산사건 진압에 사용된 연막탄이 39예비사단에서 제공된 사실을 밝혔다. 이 사실은 마산 특무대장김창희 중령의 증언및 39예비사단장 김희덕 준장에 의하여 증명되었다. 김희덕 준장의 증언에 의하면 15일 밤 10시 경 사단 참모장으로부터 경찰에서 최루탄을 빌려달라는 연락을 받고 이를 지시하였는데, 사무착오로 연막탄으로 잘못 주었으나곧 회수하였다고 한다. 이때 빌려준 연막탄은 33발로 그중 5발 을 경찰이 사용하고 나머지 28발을 회수했다고 증언하였다.『조선일보』1960. 3. 27 조1면 ;『동아일보』1960. 3. 27 조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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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로 모인 시위대, 계엄군과 조우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했다. 그러나 투항하는 사람은 없었다.『고대신보』, 1960. 5. 3 2면 ;『조선일보』1960. 4. 20 조1면, 석3면 ;『동아일보』1960. 4. 20 조1·3면, 석3면 ; 현역일선기자동인 편, 105쪽. 고려대로 들어간 시위대 숫자에 대해 조선일보에서는 “약 1,200여 명”, 연행자 숫자는 “40여 명”이라고 보도하였으며(『조선일보』1960. 4. 20 조1면), 육군본부 기록에는 “1,500명 이상”으로 되어있다(육군본부군사감실편, 39쪽). 4월 25일 교수시위 주도자 중 하나인 이상은 교수는 이튿날 나가보았더니 시위군중이 하룻밤을 세운 고려대 강당(서관교사)는 유리창 하나 파손되지않았다고 한다(이상은, 「교수단 데모에 이르기까지」, 이강현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