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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은 장면과 경쟁하는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정치공작과 부정선거를 전국에 걸쳐 대대적으로 실시한다.
마산지역에서는 58년에 실시된 제4대 민의원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의 허윤수가 당선되었는데, 자유당에 매수당하여 3.15 선거를 2달 정도 앞두고 민주당을 탈당한 뒤 자유당에 입당하여 마산 시민들을 분노케 했다.
그리고 3월 15일 선거에서는 야당 참관인을 쫓아내고, 완장을 두른 사람들을 투입하여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였으며, 40% 정도를 사전투표를 통해 이기붕을 찍은 표를 투입하였으며, 대리투표와 공개투표를 자행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민주당 마산시지부는 오전 10시 반에 선거 포기를 선언하고, 선거 무효를 주장하는 가두방송을 실시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마산시당 간부 30여 명이 시위를 벌였으며 순식간에 시민 600여 명이 합세하여 대규모 시위로 발전하였고, 오후 6시 반경에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시내에서 경찰과 투석전을 전개하였다.
저녁 8시 10분에는 마산시청과 남성동 파출소 앞에서 경찰이 시민들에게 카빈소총을 무차별 난사하여 김영호, 김효덕, 김영준 군이 목숨을 잃는다. 이어서 9시에도 경찰의 무차별 발사로 8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분노한 시위대는 허윤수 의원의 집을 파괴하기도 하였다.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시위가 일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무렵인 4월 11일에 3.15시위에서 실종되었던 마산상고 1학년 김주열 군의 시신이 바다에 떠올랐다. 한 어부에 의해 발견된 김주열 군은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마산시민은 물론 경상남도 일대에 대대적인 시위가 발생했다. 이어서 전국에서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이승만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그치질 않았다.
이 사건은 결국 4.19혁명의 기폭제가 되어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