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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생 보석 석방

1973년 10월 2일 서울대학교 문리대 시위 사건으로 많은 학생들이 연행되는 등 처벌을 받은 이후인 10월 4일에는 법대생 200여 명이 교문을 나가 문리대 앞까지 진출하려다 기동경찰에 의해 해산되었고, 5일에는 상대생 300여 명이 "자유민주주의 확립은 우리의 살 길이며 지상과제다"라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동맹휴학을 결의한 후 농성에 돌입하는 등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이 3개 단과대학의 데모로 나병식, 강영원, 김병곤, 정문화, 김병만 등 총 30명의 서울대생이 구속되고, 다수의 학생이 구류처분을 받는 한편 제적, 정학 등 대대적인 학생들의 처벌이 뒤따랐다.10월 10일 민관식 문교부장관은 세 차례의 시위에서 215명이 연행되어 120명은 훈방되고 95명이 구속, 불구속 입건되거나 즉심에 넘겨졌다고 밝혔다. 10월 11일 서울대학교는 23명을 제명하고 18명이 자퇴, 56명이 무기정학 처분하는 등 모두 97명의 학생을 징계했다.
이들은 곧 처벌에서 해제되고 보석 등으로 풀려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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