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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피의 화요일

4월 19일, 3.15정부통령선거의 부정을 규탄하고 마산사건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학생, 시민 시위가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 지방에서 발생하였다. 이날의 시위는 가장 규모가 크고 격렬하여 4월혁명의 정점이 되었다. 서울에서는 오전부터 각 대학별로 시위가 일어났다. 개학 이후 시위를 추진해오던 여러 대학들이 4월 18일 고려대 시위대가 깡패들의 습격을 받은 것에 격분하여 총궐기한 것이다. 

수십만명의 시위 군중은 시내 중앙으로 진출,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는 의사당 앞을 거쳐 경무대 쪽, 대법원 쪽, 이기붕의 집 쪽, 내무부 쪽, 이렇게 크게 네 갈래로 나누어졌다. 세종로 광장은 화신백화점(현 종로타워), 서대문, 안국동, 시청 쪽에서 수천명씩 떼를 지어 오고가는 학생시위의 교차점이 되었고, 쉴 새 없이 합류되는 수만 학생들과 응원 군중들로 말미암아 교통이 완전히 마비 되었다. 

시위가 점점 격렬해지자 정부는 서울과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대도시에 계엄경을 선포하였다. 경찰은 요소요소에서 이들을 제지하려고 최루탄을 수없이 발사했으며, 경무대 앞과 내무부 앞, 이기붕 집 앞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경찰이 발사한 총에 수십명이 사상을 당하였다. 격렬한 시위가 발행했던 광주와 부산에서도 사상자가 속출하였고, 대구와 인천, 청주에서도 시위가 있었다. 언론들은 이 날을 '피의 화요일'로 명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