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27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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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영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소장 민주화운동 자료 기증식
등록번호 : 00832753
날짜 : 2003.04.0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박용길
요약설명 : 이문영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소장 민주화운동 자료 기증식 순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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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지지론'의 선거 투쟁 평가서-고려대학교 총학생회 발제
등록번호 : 00873869
날짜 : 1988.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선경식
요약설명 : 87년 6월 항쟁으로 만들어진 대통령직선제 선거 정국에서 청년학생을 분열시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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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시간강사협의회 창립취지문
등록번호 : 00057714
날짜 : 1988.07.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박한용
요약설명 : 고려대학교시간강사협의회준비위원회 관련 문서 경과보고 및 창립대회 일정 등
사진사료 15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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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제13기 언론대학원 최고위언론과정 졸업사진앨범]
등록번호 : 00928611
날짜 : 1999.00.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1999년 고려대학교 제13기 언론대학원 최고위언론과정 졸업앨범으로 제13기 언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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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제13기 언론대학원 최고위언론과정 김근태 졸업사진]
등록번호 : 00928612
날짜 : 1999.00.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1999년 고려대학교 제13기 언론대학원 최고위언론과정 김근태 졸업사진으로 박사학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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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깡패의 급습으로 쓰러져 있는 고려대학교 학생들
등록번호 : 00700205
날짜 : 1960.04.18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중단하고 학교로 돌아가던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을지로 4가에서 종로 4가 중간지점까...
영상사료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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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당 김대중 후보 강연 녹음(고려대학교 1987년 10월 26일)
등록번호 : 00973318
날짜 :
구분 : 문서류 > 음성
기증자 : 김영춘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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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춘 마지막]
등록번호 : 00548935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음성
기증자 : 한국YMCA전국연맹
요약설명 : 양춘: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한국사회계급,청소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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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고려대 강연 영상 1
등록번호 : 00972841
날짜 : 2009.07.09
구분 : 문서류 > 영상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한반도재단 이사장 재임 당시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한 강연의 연사로 참석한 영상
박물사료 1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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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의 고려대학교 대학원 최고위언론·출판과정 수료패
등록번호 : 00929665
날짜 : 1999.08.14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14일 고려대학교 언론·출판대학원 원장 언론·출판학 박사 오택섭이 김근태에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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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의 고려대학교 교우회 국회의원 당선 축하패
등록번호 : 00929677
날짜 : 2000.05.26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26일 고려대학교 교우회 회장 구두회가 김근태에게 수여한 축하패로 본 교우님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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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의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15대 국회의원 당선 축하패
등록번호 : 00929701
날짜 : 1996.04.30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고려대학원 노동대학원 원장 김호진과 고려대학교 총장 홍일식이 김근태에게 수여한...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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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문으로 본 4.19혁명
요약설명 : 있음을 명심하여 총궐기하자. 단기4293년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일동 1960년 4월 16일, 이날은 고려대생들의 신입생환영회가 계획된 날이었다. 마산 2차시위에 고무된 고대생들은 이날 시위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낌새를 챈 형사들이 학교로 들이닥치는 바람에 신입생환영회와 시위계획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18일 아침 이들은 학교 안으로 몰래 숨어들어가 점심시간 사이렌이 울리면 학생들을 교정에 있는 인촌 동상 앞으로 모이도록 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동태를 알아챈 학교 측은 사이렌을 울리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학생들은“인촌 동상 앞으로”라고 외쳤다. 순식간에 3,000여 명이 교정에 모여들었다. 학생들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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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9호를 농락한 3인방
요약설명 : 짐작할 수 있다. “각하 지시로 너 잡으러 다녔다.” 도심 시위와 도망자의 존재는 학교 안팎의 민주화운동에 강한 자극을 주었다. 철옹성 같은 긴급조치 9호도 약점을 파고들면 약화시키고 균열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때를 기다리며 은인자중하던 학생운동 진영에 퍼지기 시작했다. ‘지하’에서 힘을 기르던 이들이 서서히 ‘지상전’을 위한 연대에 들어갔다. 1978년 9월 13일 일어난 ‘서울대 3차 시위’는 그런 기류를 반영한 일격이었다. 3차 시위란 연초 김수천을 수장으로 하는 서울대 학생운동 언더그룹이 연중 네 차례 계획한 시위 가운데 세 번째라는 뜻이다. 경찰은 물론 학생들도 깜짝 놀랐다. 양민호가 준비한 이 시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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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을 아시나요? - 4.19 혁명
요약설명 : 부득이 국법에 의해 엄중 처리할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전국 각급 학교에 등교 중지령을 내리고, 반공검사인 오제도와 조인구 치안국장, 하갑청 육군 특무부대장 3인으로 이른바 ‘대공 3부 합동수사위원화’를 구성하여 마산에 상주하면서 “적색분자의 준동 혐의를 과학적으로 수사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과학적인 수사 방침’에 따라 대대적인 검거 선풍이 벌어졌다. 얼마나 잡아들였는지 경찰서에 모두 수용할 수 없어 마산역 화물칸에 까지 수용해야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의 좌익 폭동 몰아가기가 그렇게 순조롭지 만은 않았다. 이미 속으로 곪을대로 곪은 이승만 자유당 정권에 환멸을 느낀 국민들의 저항은 마산을 넘어...
구술 컬렉션 5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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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동
면담자 : 이정은, 이주봉
일자/장소: 2010년 7월 8일/서울 구술자의 사무실
요약설명 :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2010. 고려대출판부. 『고려대학교 100년사- 고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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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정
면담자 : 이정은
일자/장소: 2010년 8월31일/한국성서대학교 총장실
요약설명 :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2010. 고려대출판부. 『고려대학교 100년사- 고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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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노
면담자 : 배병욱
일자/장소: 2021.9.14. / 서울시 송파구 회의실
요약설명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1972년 12월 2일 정진영·박영환과 구술자가 만나 거사를...
일지사료 18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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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선거추진전국학생위원회 등,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공명선거 촉구 삐라 ...
일자 : 1960.3.1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살포자가 고려대학교 학생 3명이라고 밝혔다.『 동아일보』1960. 3. 2 조3면, 1960. 3. 3 조3면 이날 뿌려진 삐라 내용은 다음과 같다.3·1절 기념식에서 뿌려진 삐라 내용•3월 15일의 선거는 우리 조국이 민주주의를 살리느냐 매장하느냐가 증명되는 날이다. 어느 누가 선거에 이기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오직 이 땅에서 국민의 주권행사가 공명정대하게 이루어지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선거가 공명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곧 선열 앞에 죄 짓는 것이요 민주우방을 배신하는 결과가 된다. •우리 학도는 결코 고립되어 있지 않다. •우리의 교수, 우리의 총장들이 어떤 정파의 앞잡이가 되었을망정 공명정대한 선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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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대학생학술연구회, 이승만·이기붕 지지 호소문 발표
일자 : 1960.3.10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사회·문화
요약설명 : 독립항일투쟁을 위하여 80 평생을 이 나라에 바친 영웅적 지도자이시며 또한 세계적 반공지도자이신 리승만 박사를 우리의 영원한 국부로서 추대하고 신인용지(信仁勇智)를 겸비한 덕의 정치인 리기붕 선생을 리승만 박사의 보필로 제5대 부통령에 받들고 통일의 그날이 올 때까지 겨레와 민족을 위하여 투쟁할 것을 결의하고 만천하 전국청년학도에게 선언하는 바이다. 결의문一. 우리는 항일반공으로 국론을 통일하자! 一. 우리는 중·고등학교의 정치도구화를 방지하자! 一. 우리는 민족정기에 위배되는 일절의 행위를 규탄하자!이석환 외 학생 서울대, 경희대, 고려대, 성균관대, 동국대, 숙명여대, 덕성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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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학생시위가 있기까지
일자 : 1960.4.18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학생들의 시위로 전국의 학생들은 동요되고 있었다. 고려대학교학생대부분도마찬가지였다. 『고대신보』는 연달아 젊은이들의 봉기를 촉구하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고대신보』의 사설 중 1960년 3월 26일자 “낡은 사회에 신선한 피를 수혈하라”와 4월 2일 자 “우리는 행동성이 결여된 기형적 지식인을 거부한다”는 많은 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렸다.『고대신문』축쇄판 2(1957년부터 1960년까지), 431. 435쪽4월 3일, 5개 단과대학 운영위원장들은 밤 7시 경 종로2가에 있는 수정모밀국수 집의 뒷방에 모여 사태를 논의하며 시위 문제를 토론하였다. 그러나 별다른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학생자치위원회 운영위원장들은 이후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