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3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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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山事件被害者에게 알리는 말씀
등록번호 : 00434354
날짜 : 1960.03.2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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審判의날 기다리자[자유당 마산시당부 발표 성명서에 대한 민주당 마산사건 대책회의 반박성명서...
등록번호 : 00434361
날짜 : 1960.03.2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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聲明書[3.15부정선거의 규탄시위에 대한 경찰의 불법 과잉 진압의 실태를 조사하고 문제를 ...
등록번호 : 00434362
날짜 : 1960.03.2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사진사료 7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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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의거 진상조사 기자회견에서 마산사건 배후에 불순분자 개입을 주장하는 조인구 치안국장
등록번호 : 00700187
날짜 : 1960.04.14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마산에 출장, 현지 상황을 살펴본 조인구 치안국장이 4월 14일 기자회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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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하는 홍진기 내무부 장관
등록번호 : 00700188
날짜 : 1960.03.24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마산으로 내려가 현지조사를 벌였다. 3월 24일 마산경찰서에서 기자들에게 마산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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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의거 사건의 수습 및 전모를 알기위해 마산경찰서를 방문한 마산지구특무대장(김창희 중령...
등록번호 : 00577825
날짜 : 1960.04.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 3.15 사건을 알기위해 마산경찰서를 방문한 마산지구특무대장(김창희 중령), 자유당...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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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
요약설명 : 대부분 1980~90년대에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생산한 것으로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추진 및 기념행사 관련 사료들이다. 부마항쟁을 기점으로 부마항쟁기념일이 거듭될수록 기념의 축 혹은 관심은 부마항쟁 자체에 대한 분석, 평가, 기념에서 부산지역 운동사에 대한 관심으로,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고민으로 옮아가는 과정이 눈에 띈다. 부마사건 군법회의 재판기록 7권(1980년 육군고등군법회의 작성, 마산지역)의 영인본이 부마민중항쟁기념사업회에 의해 2007년 기증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부마민중항쟁기념사업회의 공동기획으로 2008년 3월 경남대 이은진 교수가 『1979년 마산의 부마민중항쟁』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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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ㆍ8월 노동자 대투쟁
요약설명 : 조건으로 총 168 건, ‘권용목’ 조건 중 7,8월 노동자대투쟁 관련 총 13 건, ‘마산창원지역조건 중 7,8월노동자대투쟁 관련 총 6건이 검색되었다. 상황일지(등록번호 : 639664)와 자료집(등록번호 : 537947), 이상수 변호사가 작성한 <이석규 열사 사건 진상보고서>(등록번호 : 151030)를 비롯하여 <고 이석규 열사를 추모하며 조문하는 노동자들>(등록번호 : 701877) 등 박용수씨가 생산한 각종 사진사료와 <이석규 씨 운구행렬 차량 옆에 모인 사람들>(등록번호 : 739276) 등 경향신문사의 사진사료 및 국민운동본부(등록번호 : 43602 등), 민통련(등록번호 : 95164), 노조(등록번호 : 126914) 등의 각종 성명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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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ㆍ15 마산시위 (3ㆍ15의거)
요약설명 : 3·15 마산시위 관련 총 170건의 사료 가운데 3·15의거기념사업회가 기증한 <3·15 1차의거 마산발포사건 공판 장면>(등록번호 : 700238)을 비롯한 다수의 관련 사진들, <1주년 “3·15의거 제전” 프로그램 인쇄물>(등록번호 : 700263), 구속자 명단(등록번호 : 700037)을 비롯하여 경향신문사가 생산한 3·15 관련 사진 등이 소장되어 있다.
사료 콘텐츠 1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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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통같은 유신체제를 무너뜨린 부마민주항쟁
요약설명 : 하는 과정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건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박 정권은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영삼 총재의 손발을 묶어놓기 위해 총재직 정지 가처분을 내렸고, 이어서 의원직 박탈이라는 철퇴를 휘둘렀다. 정적을 절대로 가만두고 보지 않는 박정희식의 초강수였다. 거기에다 ‘경제 안정화 정책’이라는 명분으로 일반 서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해 가난한 공장 노동자들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신발 공장과 합판공장 등 저부가 가치의 제조업이 많은 부산에서는 젊은 노동자들이 점점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임계점에 이른 물이 끓어넘치듯, 부산대학교에서 시작된 대학생 시위가 일반 시민의 가슴에 불을 댕겼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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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는 양심을 낳고, 양심은 정의로운 사회를 낳는다_ 부산 양서협동조합
요약설명 : 모여서 모여 대열을 짓고 나서자!” “유신헌법 철폐하라! 학원사찰 중지하라!” 마침내 부산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거센 불길이 타올랐다. 그동안 양서조합을 중심으로 역량을 키워왔던 많은 학생과 시민이 항쟁의 불길 중심에 선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자 호시탐탐 <양서협동조합>을 감시하고 있던 당국의 손길이 맨 먼저 조합 관계자들을 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보안사에 끌려간 중부교회 최성묵 목사를 비롯해 김광일 변호사, 김형기, 박상도 등은 지독한 고문을 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 후 뜻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 박정희 대통령이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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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
요약설명 : 해외운동의 거점인 민족학교를 설립하려는 원대한 포부를 펼쳐 나가기 위해 윤한봉은 마산 부두에서 김은경을 비롯한 동지들로부터 받은 3천 달러를 사무실 운영비로 내놓고 미국 내 동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민족학교는 재미동포 1, 2세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국인이라는 민족의식을 고취하여 미국 사회에서 긍지를 지니며 살아가게 하고 조국과 민족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곳입니다.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보급하고 동포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을 하려고 하오니 도와주십시오.” 이듬해인 1983년 2월 5일, 민족학교 설립식이 열렸다. 치과의사 최진환을 이사장으로 내세우고 전진호는 교장에 앉힌 뒤 윤한봉은 학교의 청...
구술 컬렉션 22건
더 보기일지사료 43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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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천 공보실장, 마산사건 보도와 관련해 우려 표명
일자 : 1960.3.15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전성천공보실장은 15일 국무회의에서 마산사건을 검토하고 있는 중에 “선거와 관련된 불미스러운 풍문이 많은 만큼 신문·통신은 내무부, 공보실 및 중앙선위가 확인하여 공식발표한 것을 보도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언명하였다. 그는 미확인된 내용을 보도하면 곤란하다고 말하면서 선거보도에 있어 사실보다 과장된 것이 많다고 지적하였다.『동아일보』1960. 3. 16 석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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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기 법무장관, 마산사건 조종자 엄중조사 지시
일자 : 1960.3.15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홍진기법무장관은 마산 사건과 관련하여 조종자에 대해 엄중 조사할 것을 15일 현지검찰에 지시하였다. 대검 보고 요지는 다음과 같다.15일 오후 7시 경 마산시내에서 시위하던 1천여 명의 군중이 서울신문사 마산총국, 남선 전기주식회사 등을 반파시킨 후 자유당 시당부를 전파시키고 시청을 포위하여 소요를 일으켰는데 이로 인하여 사망 4명, 중상 10명, 경상 43명이다.『동아일보』1960. 3. 16 석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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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사건 긴급수습책 협의 위해 군·경·검 연석회의 개최
일자 : 1960.3.15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최인규내무장관은 마산사건이 내무부에 보고된 후 15일 밤 10시 10분 경 송요찬육군참모총장을 내무부에 초청하여 내무차관, 치안국장 등과 함께 회의했다. 밤 11시 10분 경에는 오제도 대검검사가, 11시 35분 경에는 이존화자유당 조직위원장 등이 참석하여 연석회의를 하였는데 마산사건을 검토하고 이에 대한 긴급수습책을 협의했다. 최 내무장관은 15일 밤부터 16일 새벽에 걸쳐 열린 임시국무회의에서 마산사건에 관해 보고하였다.『동아일보』1960. 3. 16 석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