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52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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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시장 노동자를 위한 기도회
등록번호 : 00834611
날짜 : 1977.12.23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평화시장 노동자 인권 문제 협의회'에서 주최한 기도회. 평화시장 노동자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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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의문[평화시장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 대책]
등록번호 : 00834628
날짜 : 1977.07.2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개방과 평화시장 근로자가 경찰에 의해 구타, 폭행을 중지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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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문[평화시장 노동인권 탄압]
등록번호 : 00839896
날짜 : 1978.02.17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대한 호소문, 평화시장 노동교실에 대한 경찰의 탈취와 고문에 대한 간곡한 호소
사진사료 15건
더 보기박물사료 1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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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피복노조 노동교실 탄압사건
요약설명 : ‘평화시장’ 조건으로 총 94건 중 관련사료 38건, ‘한국노동인권헌장’ 조건으로 총 1건이 검색되었다. 평화시장사건대핵위원회 명의의 <어머니와 노동교실을 찾자> (등록번호 : 443635), 평화시장근로자인권문제협의회 명의의 성명서 <성명서 [노동운동 탄압, 노동교실 탄압 반대, 이소선 여사 비롯한 구속자 석방 등]> (등록번호 : 91838), 평화시장노동자일동 명의의 <(청계피복노조의) 9.9 결사선언>(등록번호 : 484352), 한국기독교장로회청년회산업분과의 <9.9결사투쟁사건경위보고서[청계피복노조]> (등록번호 : 105256), 기장청년전국연합회의 성명 <(청계피복노조의 9.9결사 투쟁사건에 대한)우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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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피복노동조합결성투쟁
요약설명 : 청계피복노조와 관련하여 366건이 소장되어 있다. 청계천 일대 평화시장 등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는 피복업계 노동자들의 임금실태 보고서 <시장상가 피복제품업체 근로자의 임금실태 조사결과> (등록번호 : 512069), 윤보선, 함석헌 등 15인의 사회 각계 인사들이 청계피복노조 탄압에 항의하여 발표한 <국민에게 드리는 글> (등록번호 : 528466), 1981년 서울시의 청계노조 해산명령에 대하여 명령철회를 요구하며 발표한 <성명서> (등록번호 : 333357), 전태일 죽음 이전부터 청계노조 20주년의 역사를 기록한 <청계노조 20년 투쟁사> (등록번호 : 441463), 1984년 청계피복노조를 복구하여 정상화시킬 것임을 주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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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분신
요약설명 : 전태일 관련 561건이 소장되어있다. 대부분의 사료들은 전태일 죽음 직후부터 2000년대까지 생산된 전태일 추모, 기념사업,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노동운동 관련 사료이며 전태일기념사업회 정간물 『사람세상』, 기념식 관련 자료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전태일의 일기 중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 형식으로 쓴 글 <대통령각하> (등록번호 : 445053), 전태일 사후 장례식 조건 타결 후 운구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 <오열하는 사람들과 운구하는 사람들> (등록번호 : 733459), 1981년 청계피복노조 해산과정에서(추정) 계엄포고령 및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된 이소선 지원 및 전태일...
사료 콘텐츠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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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요약설명 : 전태일의 뜻을 잊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소선은 목이 메었다. 며칠 뒤, 40여 명의 평화시장 노동조합원들이 노동청 사무소를 찾아갔다. 그들은 천막을 치고 집에도 돌아가지 않은 채 노동자들의 요구를 외쳤다.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절대 자리를 떠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여덟 시간 근로 기준 시간을 지켜라!” “살인적인 다락방을 쳘폐하라!” 태일이 죽은 뒤에도 노동조합만 결성됐을 뿐 평화시장의 노동자들은 한 층을 둘로 나눠 허리조차 펼 수 없는 열악한 공간에서 하루 열두 시간씩 일하고 있었다. 신문과 방송이 일제히 이 일을 보도하자 노동청에서도 평화시장에서 노동법이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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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살 시다 - 신순애 이야기
요약설명 : 버텼어요.” 8시 퇴근의 기억 평화시장의 노동자들은 퇴근 시간이 각기 달랐다. 평화시장에서 가까운 창신동이나 신당동에 사는 사람은 밤 열한 시 사십 분까지 일을 했고, 이문동이나 중랑교에 사는 사람은 열한 시 이십 분쯤 회사를 나섰다. 평화시장 앞에 막차가 서는 시간이 바로 그들의 퇴근시간이었던 것이다. 장시간 노동에 따른 문제야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당시 신순애와 동료들에게는 노동교실에 갈 시간이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우리도 제 시간에 퇴근하자. 지금은 노동교실에 오고 싶어도 못 온다.’ 노동교실에 모인 노동자들이 그렇게 외치기 시작했고,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농성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신순애의 기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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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이념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전사 시인 김남주
요약설명 : 검정고시를 거쳐 전남대학교 문리대 영문과에 입학한 그는 1970년 11월 13일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피복공장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라고 외치며 온몸에 휘발유를 붓고 분신한 사건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이 사건은 노동자를 착취하여 소수의 부유층을 살찌게 했던 박정희 정권의 추악함에 맞선 거대한 항거의 씨앗이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지식인과 노동자가 연대하여 투쟁해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된 김남주는 한일회담 반대와 교련반대운동, 3선개헌저지투쟁, 노동삼권 보장운동 등에 앞장섰다. 1972년에 김남주는 친구 이강과 더불어 유신헌법...
구술 컬렉션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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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면담자 : 이영재,정호기
일자/장소: 2018. 6. 24/4.9통일평화재단
요약설명 : 평화시장 노동자가 되었던 배경과 노동환경 실태, 전태일에 대한 첫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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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희
면담자 : 이영재, 정호기
일자/장소: 2018. 6. 22/4.9통일평화재단
요약설명 : 평화시장 노동자가 되었던 배경과 노동환경 실태, 전태일에 대한 첫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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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모임(Monday Night Group)
면담자 : 진영종
일자/장소: 2003. 9. 22./아카데미하우스
요약설명 : 동일방직, 평화시장, 민청학련, 한국 상황 및 정보의 해외 반출, TK생 편지 전달,...
일지사료 5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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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자유당, 내부적으로 선거 공약 결정
일자 : 1960.2.9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철도통신 등 공공시설을 확충, 강화한다, ③차관 및 외자도입을 추진한다, ④과학기술의 진흥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도모한다. 3. 농어촌의 진흥 : ①농협에 고공품(高工品), 비료 및 양곡 등 업무를 취급케 한다, ②농산물 가격 유지법을 제정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 가격안정을 기한다, ③제3 비료공장 건설을 촉진하여 비료 국내 수요를 충족한다, ④어업협동조합을 건립한다, ⑤농촌 및 수산금융의 원활을 기한다. 4. 중소기업의 육성 : ①상공업조합법을 제정하여 업자간의 조직을 강화하고 그 권익을 보호한다, ②중소기업금융제도를 조정 강화한다, ③국산품의 군납추진, 밀수방지, 수공업품의 해외시장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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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고등학교 학생 1천여 명, 학원의 자유 외치며 시위
일자 : 1960.3.8
분류 : 시위 상황 > 대전
요약설명 : 중앙시장을 거쳐 중교(中橋)를 건너 대전서여고 앞으로 행진하였다. 이들은 버스 합동주차장에서 경찰과 잠시 충돌 하였지만 자신의 주장을 관철해 줄 것을 요구하고 학교로 돌아갔다. 다른 한 무리는 돌을 던지며 경찰에 저항하다가 목척교(木斥橋) 맞은편 신도극장사 잇길(현 목척교를 중심으로 중동방면의 천변도로)로 빠져 다른 학교와 합세할 목적으로 보문고등학교로 달려갔다. 그러나 보문고 교문은 이미 닫혀있어 선화교(현 영교)를 건너 시청(현 중앙로 네거리 동양백화점(갤러리아) 맞은편 삼성건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칠대로 지친 학생들 주위로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왔다. 학생들은 경찰에 의해 해산되었는데 경찰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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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원들 시위행진
일자 : 1960.3.15
분류 : 시위 상황 > 마산
요약설명 : 시내를 행진하였다. 평화적인 시위행진은 불종거리 창동의 번화가를 거쳐 남성동파출소를 돌아 부림시장을 거쳐 다시 당사 앞으로 돌아왔다. 이때까지 경찰은 시위대를 제지하지 않았다. 약 30분 후 군중들이이 시위대열에 호응하면서, 시위대를 따르는 군중이 수 천 명에 이르렀다. 약 1시간 반 동안 마산 시내 일대가 혼란에 빠지자 비로소 경찰이 출동하여 민주당 간부 6명(도의원 정남규, 부위원장 강경술, 상무위원 황칠규, 감찰위원장 정경도, 당원 정진철, 박주복)을 스리쿼터 트럭으로 강제 연행하였다. 군중들은 “선거까지 포기한 사람들을 잡아간다는 것은 지나치지 않느냐”고 분개하기도 했다. 뒤를 따르던 군중들과 연행되는 시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