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813건
더 보기 -
[전두환 군사정권의 장기집권야욕을 분쇄하자!!]
등록번호 : 00518886
날짜 : 1986.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이재현
요약설명 : 전두환 군사정권의 장기집권 야욕을 분쇄합시다!!직선제 개헌을 쟁취하여 민주주의 ...
-
전두환 군사정권의 장기집권 야욕을 분쇄하자!등록번호 : 00870118
날짜 : 1986.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지선
요약설명 : 군사정권의 장기집권 야욕을 분쇄합시다!!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여 민주주의 정부를...
-
조사분석자료 1982-2:군사 정권과 민주화 경험등록번호 : 00838639
날짜 : 1982.12.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군사독재 속에 민주화투쟁을 전개한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타일랜드 4개국의...
사진사료 23건
더 보기 -
[피켓시위,선전전-군사정권의 희생양 양심선언 군.경 수배자를 즉각 수배해제하라!!!]
등록번호 : 00432455
날짜 : 1993.06.23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김미화
요약설명 : 국방부 앞에서
-
민불련 현판식에서 종교탄압을 일삼는 군사정권을 질타하는 백기완 서민통 의장등록번호 : 00700428
날짜 : 1985.05.11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
이한열 추모제 장소 주위 게시판에 나붙은 군사정권 항의 문구등록번호 : 00701478
날짜 : 1987.07.0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영상사료 1건
더 보기 박물사료 3건
더 보기 -
군사독재 물리치고 민주헌법 쟁취하자-개값보다 못한 소값 수입정권 몰아내자 떨어지는 농산물값...
등록번호 : 00315020
날짜 : 198*.00.00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한국가톨릭농민회
요약설명 :
-
[그림선전물]잠정조치 23년등록번호 : 00304866
날짜 : 198*.00.00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한국가톨릭농민회
요약설명 : 5.16군사 정권 잠정조치 23년.
-
김근태의 진실의 힘 인권상
등록번호 : 00929686
날짜 : 2012.06.26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당신은 군사독재정권의 고문의 실상을 용기있게 알려냄으로써 고문이 반인도적 범죄행...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5건
더 보기-
6ㆍ10항쟁
요약설명 : : 429721), 박용수 선생이 기증한 사진사료 <상공회의소 국기하강식 애국가 방송을 신호로 시작된 6월항쟁>(등록번호: 701102)가 다수 소장되어 있으며, 단행본으로 엮은 국민운동본부 평가서(등록번호 : 78467), 국민운동본부의 각종 성명서(등록번호 : 151233 외)와 <조직실태와 문제점, 실천조직 건설에 대하여>(등록번호 : 193777)와 같은 내부 문건, 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과 관련한 국민결의본 친필본 초안도 보존되어 있다(등록번호 : 429570). 노태우의 6.29선언과 관련해서도 역시 초안 형태의 친필본<결의문( 6.29선언 이후 군사독재정권의 결정적 퇴진 및 완전한 민주혁명 성공을 위한 결의) >(등록번호 : 429579)가 있다.
-
광주대단지 사건
요약설명 : <廣州大團地>(등록번호 : 47022)는『신동아』에 실린 르뽀 기사로, 당시 광주대단지 사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광주대단지사건이 당시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빈민문제에 대해 많은 충격을 주고 관심을 갖게 했음은 광주대단지사건 두 달 후 생산된 <廣州大團地 貧民實態調査 報告書>(등록번호 : 115687)와, 10여년이 지난 1985년 목동, 신정동 철거민 문제와 관련된 사료 <14년전 광주대단지 민권투쟁을 상기하자!, 반 민중적 군사독재정권은 물러가라!>(등록번호 : 89545)를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10건의 사진 중 <개울가에서 모여 있는 광주대단지 사람들>(등록번호 : 713724), <경찰과 대치 중인 광주대단지 주민들>(등록번호 :...
-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점거농성사건
요약설명 : 있는 사료이다. 이에 따르면 군사독재정권의 퇴진과 군사파쇼 헌법의 즉각 철폐 외에 광주원흉 5적(전두환, 노태우, 박준병, 권정달, 위컴)의 즉각 처단, 민중이 주체되는 통일논의 보장, 매판독점 자본 해체, 무분별한 외채도입 중지, 새마을운동 중앙본부, 일해산업 등 전두환정권 친정세력의 권력형 부조리 공개 및 책임자 처단, 언론기본법과 보도지침 등 언론에 대한 통제 철폐와 그 온상인 KBS 해체 등 사회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내용을 담았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등의 지지성명 < 군사독재정권의 퇴진과 민주헌법제정은 온 국민의 뜻이다-민정당 중앙정치 연수원 점거농성 시 밝힌 학생들의 주장을 적극 지지하면서>(등록번호...
사료 콘텐츠 80건
더 보기-
총무님, 총무님, 우리들의 총무님_ 김한림요약설명 : 사이였다. 윤보선은 박정희가 주도한 5·16군사 쿠데타로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 정권이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맺으려 하자 한림은 윤보선을 설득해 한일회담반대투쟁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한림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당시 한일회담반대투쟁의 주도 인물이었던 장준하와 백기완 정도만 한림에 대해 아는 정도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림을 교사려니 생각했다. 한림은 앞에 나서지 않은 채 사람이 필요하면 사람을 구해오고 돈이 필요하면 돈을 구해오는, 말 그대로 민주화운동에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우리나라가 반드시 민주화되어야 한다고 믿는 한림이지만 딸...
-
아름다운 동행_ 이희호요약설명 : 절대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는 대쪽 같은 사람이었다. 1980년 9월, 김대중은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김대중과 함께 민주화운동에 앞장 섰던 수많은 사람들도 감옥에 갇혔다. 이희호는 남편이 사형선고를 받는 법정에도 나가지 못했다. 경찰들이 지키고 있어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김대중이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는 뉴스는 전 세계로 전해졌다. 미국과 유럽 등지의 정치지도자들로부터 응원과 성금이 쏟아졌다. 어느 날, 이희호는 미국 교회여성연합회 총무 도로시 와그너 여사로부터 국제전화를 받았다. “당신은 외롭지 않다. 미국 교회의 여성들이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이...
-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곳_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요약설명 : 있었다. “이곳은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6년 당시 내무부 장관 김치열의 의뢰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하여 지어져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 1983년에 다시 7층으로 증축되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죠.” 안내를 맡은 해설사가 그들을 맞이하여 여기저기 둘러보며 자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곳을 둘러보는 동안 동혁의 가슴은 자기도 모르게 먹먹한 추억에 잠겼다. “잘 지어졌죠? 천재의 작품이라니까, 당시에도 아주 고급스러운 건물이었을 거예요.” 해설사가 약간 빈정거리는 듯한 투로 말했다. 건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동혁의 눈에도 무척 잘 지어진 건물이란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까만 벽돌 벽이며 철제와 초록색...
구술 컬렉션 12건
더 보기일지사료 107건
더 보기-
자유당, 민주당의 선거공약 반박
일자 : 1960.3.2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평균 15%나 곡가의 저락을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계속되는 풍작과 우리가 군사적으로 사상적으로 공산진영과 최극단에서 대척하고 있어서 막강한 군사력의 유지가 필요한 것이므로 이에 소요되는 국방비를 조달하기 위한 외곡도입이 국내 곡가에 악영향을 미치기 되고 있다. 그러므로 정부와 우리 당은 만난을 극복하여 미곡증보융자제도와 미곡매상제를 실시하여서 곡가안정에 성의껏 노력을 하였고 앞으로는 미곡거래소를 설치하여 ○급의 원○과 곡가의 계절적 파동을 억제하고저 하며 또 일방으로는 농산물의 적정가격 유지를 위한 법제정을 촉진할 예정이다. 또 우리는 농업협동조합을 육성하기 위하여 노력한 결과 리·동 조...
-
미 국무성, 한국의 공명선거 주시
일자 : 1960.4.26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국제관계 및 해외보도
요약설명 : 보인다. 한 관리는 지난번의 부정선거실시에 대한 한국민들의 불만이 매우 크므로, 이 대통령이 공명선거에서 승리할 가능 성은 적다고 말하였다. 미국 소식통들은 세계 제4위인 한국군의 압력이 대통령의 굴복의 요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시 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군은 이승만 정부의 안정세력이 되어왔으며, 미국은 아직은 그러한 안정성이 현재와 앞으로 있을 선거와의 사이에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만약 이 대통령이 선거일 또는 그 전후하여 자신의 사임을 발효시 킨다면 군부의 정권 접수 또는 선거운동기간 동안의 과도적 군사정권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조선일보』1960. 4. 27...
-
시위 군중 대표, 대통령 사퇴 성명 발표 전 이승만 면담
일자 : 1960.4.26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청년은 “하야하신다면 누구에게 정권을 넘기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심지어 한 청년은 “저희들 생각으로는 송장군에게 정권을 인계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라고 말도 되지 않는 발언을 하기도했다”고 기록하였다(허정, 『허정회고록: 내일을 위한 증언』, 샘터사, 1979, 219-220쪽). 대표들은 경무대를 나오면서 “여·야 정객은 모두 믿을 수 없으니 군정을 포고해 달라”고 요청하였는데, 이 자리에서 송 사령관은 “헌법을 존중하고 정치체제 밑에서 질서를 바로잡겠다”고 하면서 “군정은 절대로 안될 말”이라고 했다고 한다.『한국일보』1960. 4. 26 석1면. •당시 동아일보 기자 최원각의 글에서도 “(대표들이) 경무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