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56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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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기념사업회 소식 제1호
등록번호 : 00551364
날짜 : 1989.07.00
구분 : 문서류 > 정간물
기증자 : 한국YMCA전국연맹
요약설명 : -(가칭)부마항쟁기념사업회 발기인대회 준비위원회 발족 -취지문:(가칭)부마민주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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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칭)부마항쟁기념사업회 발기인대회
등록번호 : 00112869
날짜 : 1989.07.2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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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기념사업회 소식 제3호
등록번호 : 00221367
날짜 : 1989.10.12
구분 : 문서류 > 정간물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영상사료 9건
더 보기박물사료 2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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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8민주화운동
요약설명 : 10건, ‘5.18민주화운동’ 조건으로 3건이 검색되었다. 항쟁 주체의 기록으로는 김성용 신부가 자필 작성한 <광주사태보고서>(등록번호: 415992)가 주목할 만하다. 항쟁 당시 수습위 대변인으로 4개항 수습안을 갖고 계엄군과 협상을 맡기도 했던 광주교구 소속 김 신부는 9차례의 삼엄한 검문을 뚫고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 광주의 참상을 알렸으며 그에게 보내고자 작성한 일지 형식의 이 글은 ‘분노보다 슬픔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체포되어 내란주요임무종사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관련하여 군법회의 법정에서 1980년 10월 23일 했던 <김성용(프란치스꼬)신부 최후진술>(등록번호: 309326)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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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
요약설명 : 1980~90년대에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생산한 것으로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추진 및 기념행사 관련 사료들이다. 부마항쟁을 기점으로 부마항쟁기념일이 거듭될수록 기념의 축 혹은 관심은 부마항쟁 자체에 대한 분석, 평가, 기념에서 부산지역 운동사에 대한 관심으로,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고민으로 옮아가는 과정이 눈에 띈다. 부마사건 군법회의 재판기록 7권(1980년 육군고등군법회의 작성, 마산지역)의 영인본이 부마민중항쟁기념사업회에 의해 2007년 기증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부마민중항쟁기념사업회의 공동기획으로 2008년 3월 경남대 이은진 교수가 『1979년 마산의 부마민중항쟁』이란 단행본을...
사료 콘텐츠 1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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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
요약설명 : 1. 공포를 넘어, 죽음을 넘어 아무도 시위를 해본 사람이 없었다.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은 자꾸만 늘어나고 있었지만 아무도 앞에 나서는 이가 없었다. 1979년 10월 18일 오후, 마산의 경남대학교 교정이었다. ‘선동하기로 약속한 과대표들은 다들 어디로 도망간 거야? 나 혼자 어떻게 하라고.’ 정인권은 초조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에 형사들이 깔려 부지런히 무전을 주고받았다. 두려웠다. ‘잡히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물고문이나 전기고문을 당하겠지? 아니, 아무도 모르게 죽여서 묻어버릴 거야. 연좌제로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되겠지?’ 두 달 전 야당 신민당사에서 YH무역 여공들이 생존권을 요구하며 농성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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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통같은 유신체제를 무너뜨린 부마민주항쟁
요약설명 : 부마항쟁의 강제적 진압을 반대하고, 피의 대학살만은 피해야 한다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그의 충직했던 경호실장 차지철과 함께... 그리고 그 놀라운 소식과 함께 한동안 부산과 마산을 뒤흔들었던 투쟁의 불길도 일시 소강상태에 빠져들었다. 이듬해 5월, 광주에서 다시 불타오르기 전까지... 글 김영현(소설가) 1984년 창작과비평사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로 등단, 소설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해남 가는 길>, <내 마음의 망명정부>, 장편 <풋사랑>, 시집 <겨울 바다>, <남해 엽서>등이 있다. 제23회 한국창작문학상 수상, 실천문학사 편집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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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 관련 사료 소장 현황
요약설명 : 구술 발췌- 사료관은 문서기록 이외에도 ‘기억의 역사를 기록의 역사로’ 남길 수 있는 중요한 작업으로서 부마민주항쟁 당사자들의 증언을 그대로 기록한 구술사료를 수집했다. ‘부마항쟁’과 ‘부산지역학생운동과 부마항쟁’을 주제로 총 9명의 구술을 수집하여 오픈아카이브에서 서비스하고 있다. https://archives.kdemo.or.kr/oral-archives/main (구술아카이브) 부마민주항쟁 관련 구술 목록 부마민주항쟁 콘텐츠 제작 오픈아카이브에서는 문서 등의 1차사료 외에 1차 사료를 가공하여 제작한 콘텐츠 서비스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콘텐츠는 오픈아카이브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사료를 이용하여 제작되고 있으나, 문서기록과...
구술 컬렉션 2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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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훈
면담자 : 이광욱
일자/장소: 2019. 7. 21/거제시 구술자 사무실
요약설명 : 사건, 부마항쟁, 광주항쟁과 신군부와의 싸움, 부림사건으로 잡혀가다, 출옥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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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
면담자 : 이광욱
일자/장소: 2019. 7. 14/부산양서협동조합 문화공간 인
요약설명 : 앞장서다, 부마항쟁과 광주항쟁 그리고 야학활동, 부림사건 피의자로 연루되다, 출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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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곤
면담자 : 이광욱
일자/장소: 2019. 7. 14/부산 구술자 사무실
요약설명 : 부마항쟁과 10.26, 서울의 봄과 광주항쟁, 신군부에 대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일지사료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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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학교 당국, 휴교령 결정
일자 : 1979.10.18
분류 : 민주화운동 > 학생
요약설명 : 10월 18일 새벽 경남대학교 당국이 정상수업을 하기로 결정하고 오전 11시경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면서 주동자 정인권과 학생집회 책임 행동대원 한양수가 학과 대표들과 만나 오후 1시 30분경 경남대학교 노인당(고목나무 정자) 앞 잔디밭에 집결하여 시위 분위기를 조성했다. 오후 2시경 학생 약 7~800여명이 모여들었다. 오후 2시 15분경 학교 측에서는 긴급 교수회의를 열고 그 결과 학교 휴교령을 결정하고 학교 방송으로 휴교 결정을 알렸다. 경남산업전문대학교도 오후 2시부터 무기한 휴교에 들어갔다. 이은진, 『1979년 마산의 부마민주항쟁 육군고등군법회의 자료를 중심으로』, 불휘, 2008, 133~143쪽.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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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시민들, 마산 시내 가두시위 전개
일자 : 1979.10.18
분류 : 민주화운동 > 빈민·일반
요약설명 : 오후 6시~7시 사이에 투석이 시작되면서 시위는 폭력적인 양상으로 발전했다. 시위는 3·15의거탑, 창동 네거리, 남성동 파출소, 북마산, 오동교 자유시장, 어시장, 자산동과 시청 방면, 공화당사, 회원파출소, 산호파출소, 양덕파출소, 문화방송국 및 전신전화국, 마산소방서, 마산경찰서 및 마산우체국, 마산지방법원 및 마산 지청 등 시내 전역에 방화와 투석전을 벌이는 등 폭력적인 시위가 전개되었다. 18일의 시위는 19일 오전 2시에 역전파출소 앞에서 종결되었다. 시위자 300여명이 연행되었으며 경찰도 막대한 소실 피해를 입었다. 이은진, 『1979년 마산의 부마민주항쟁 육군고등군법회의 자료를 중심으로』, 불휘, 2008, 165~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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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학교 학생 1,000여명, 교내 반정부 집회 개최, 시내로 확산
일자 : 1979.10.18
분류 : 민주화운동 > 학생
요약설명 : 통행이 통제되어 오후 4시~4시 30분경 시위를 종료하고 오후 5시~5시 30분경 3·15의거탑 앞에서 모이기로 통고한 후 해산되었다. 경남대학교 학생들은 오후 4시 20분경부터 5시 30분까지 3·15의거탑에 모여들었다. 마산대학생들과 일부 시민들의 합세로 약 500여명이 모인 시위대는 언론자유보장과 민주회복 등을 요구하며 전투경찰대와 대치 상태에 있었다. 오후 5시 30분~6시 30분경 마산시 창동 대진백화점 앞에서 약 200여명의 시위대가 모여 경찰대와 대치했으며, 오후 5시 40분~50분까지 서성동 무학당 앞 노상에서도 시위가 있었다. 이은진, 『1979년 마산의 부마민주항쟁 육군고등군법회의 자료를 중심으로』, 불휘, 2008, 143~163쪽.